당신의 삶을 기념하고 기억하기(2)
잊은 줄 알았던 순간들이 있다. 문득 낡은 책갈피에서 풍겨오는 희미한 종이 냄새나, 차창에 부딪히는 빗방울 속에서 그 기억들이 떠오른다. 가끔 유튜브에서 나오는 잊고 있던 노래가 지난 시절을 통째로 현재로 가져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잠시 길을 잃은 사람처럼 멍해진다. 그 순간, 마음속 가장 깊고 조용한 방에 웅크리고 있던 감정이 말을 건넨다. 과거를 떠올리는 작은 울림이 되기도 한다. 나는 요즘 그렇게 흩어진 기억의 파편들을 모으는 중이다. 잃어버린 자기를 되찾기 위해 복원하는 여정이다.
시작은 거창하지 않다. 고요한 밤, 낡은 노트에 글씨로 질문을 적는다. 이게 쌓이면 좋은 점이 있다. 1년만 지나면 ‘작년의 오늘, 나는 어떤 마음으로 어디에 서 있었나’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처음에는 막막함이 앞선다. 특별히 떠올릴 만한 감정의 동요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침묵 속에서 집중하다 보면, 기억을 풀어놓게 된다.
예를 들어, ‘용서를 결심했던 날’을 쓰던 날이 떠오른다. 내가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걸어가게 한 사람이 있다. 미워하는 마음이 주는 기묘한 안정감과 그 마음이 나를 갉아먹는 자각 사이,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했다. 노트 위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손끝은 마침내 ‘그럼에도’라는 단어를 썼다. 그 순간, 단단히 얼어붙었던 무언가가 ‘쨍’하는 소리를 내며 조용히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상대와 화해하는 시간은 아니었다. 다만, 미움의 감옥에서 나를 풀어주기로 한 아주 작고 나만의 해방 선언이었다.
기억은 여러 감정이 뒤엉켜 있다. 시간의 먼지가 쌓여 본래 색을 잃어버린다. 내 바람이 만들어낸 상상이 사실처럼 둔갑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억 복원은 언제나 신중함이 필요하다. 이 과정이 늘 온화하고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다. 어떤 기억은 초대하지 않은 손님처럼 예고 없이 문을 부수고 들어온다. 이미 다 지불했다고 믿었던 감정의 빚을 다시 청구한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실패의 기억, 서툴러서 상처를 주었던 관계의 기억들이 그렇다.
그 기억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은 기념이라기보다 차라리 투쟁에 가깝다. 그날의 무력감과 절망감이 온몸을 다시 훑고 지나갈 때면 누구나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 한다. 애써 외면했던 모습을 직시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오롯이 견뎌야만 한다. 하지만 바로 그 투쟁의 끝에서, 복원이란 과정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있다.
단순히 과거를 되살리는 ‘재생’이 아니다. 현재가 과거에 말을 걸어 기억을 다시 ‘살게’ 하는 ‘소생’의 작업이다. ‘그때 너는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참 많이 힘들었겠다’라고 말을 거는 일이다. 지금이 건네는 이해의 말을 통해, 과거가 위로받는다. 더 이상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파편이 아니라, 나를 안아줄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현재의 언어로 다시 쓰인 기억은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하고 명료해진다. 이제 나는 그 기억을 ‘기념’할 수 있게 된다. ‘기념’이란 단어는 왠지 특별한 날에만 써야 할 것 같아 부담스럽다. 거창한 의무감이 따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기념은 아주 사적이고 소박한 방식이다.
그날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작은 촛불을 켜고, 그 시절의 나에게 노래를 가만히 들려준다. 아니면, 그 시절 나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를 쓸 수 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오직 자기를 위하는 작은 의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
언젠가부터 달력의 빈칸에 나만의 기념일을 조용히 새겨 넣는다. ‘처음으로 자신을 변호했던 날’, ‘오래된 꿈을 놓아주기로 결심한 날’, ‘혼자서도 괜찮다는 걸 깨달은 날’ 등 남들에게는 작지만, 스스로 중요하게 여기는 날들을 기록한다. 그날이 되면 노트를 펴고, 지난날의 자기를 다시 만난다. 잘 버텨주어 고맙다고 안부를 묻고, 수고했다고 어깨를 토닥인다. 이 반복되는 작고 사적인 의식이 세파에 흔들리는 나를 보이지 않는 뿌리처럼 단단히 지탱한다.
우리는 삶의 중요한 순간을 ‘이정표’로 세운다. 졸업·취업·결혼 같은 커다란 표지판만이 인생의 방향을 알려준다고 믿는다. 그러나 진짜 삶은 그런 큰 표지판들 사이에 숨어 있다. 실제로 눈에 잘 띄지 않는 수많은 작은 기억들이 만든다. ‘이듬(Next Stage)’은 그 기억을 연결하는 방법이다. 혼란스럽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좌표를 다시 돌아보게 해주는 일이다.
기억을 복원하고, 기념하고, 나만의 의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흩어진 구슬을 꿰어 하나의 목걸이를 만드는 일과 같다. 그것은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가져와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통합의 과정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어제의 나와 연결해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무심히 지나간 날들을 붙잡고 나를 다시 불러내는 행위는, 나에게 돌아가는 가장 따뜻하고 진실한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