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화된 가게의 모습
가게 준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 중 가장 즐거웠던 시간을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 인테리어 작업을 할 때다.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는 공간을 원하는 분위기, 스타일, 기능의 공간으로 만들어나가는 그 과정이 어떤 뿌듯함을 안겨주었다고 해야 하나? 하녀가 신데렐라로 변하고, 낡은 집이 아름다운 집으로 변하는 모습은 누구나 열광하는 순간일 것이다. 그 변화의 과정에 직접 참여했던 게 더 큰 의미를 준 것 같다. 물론 잡음 없이 순조롭게 진행된 시간은 아니었지만.
작은 가게를 오픈하며 셀프 인테리어로 진행하는 사람이 많다. 우린 그게 불가능했다. 원래 음식점을 하던 곳이 아니라 각종 패브릭 소품을 파는 가게였기 때문에 음식점에 필요한 설비가 아예 없었던 것이다. 너무 좁은 공간이라 천정도 다 들어내야 했고, 음식점에 맞게 전기도 증설해야 했고, 도시가스도 새로 설치하고 천정형 에어컨도 새로 달아야 했다. 게다가 시간도 많지 않았다. 영업 전 공사할 때 까지는 월세를 내지 않는 걸로 주인과 협의를 보기도 하지만, 우린 숫기가 없어서 그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사실 잘 몰라서). 최대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빨리 오픈을 하는 게 맞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인테리어 공사 또한 아는 분이 계셔서(당시 우리에게는 행운에 행운이 넘쳐났던 것 같다) 저렴한 비용으로, 누구보다 꼼꼼하게 공사를 해주셨다. 음식점에 필요한 설비가 어떤 게 있는지 세세하게 알지 못했던 우리가 빼먹은 부분들도 알아서 다 챙겨주신 거면 얼마나 큰 도움을 받은 건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원하는 공간의 스타일을 이미지화시켜서 드렸다. 상상했던 실내 공간을 대강 스케치와 함께 설명해드리고 원하는 스타일은 자료 사진을 찾아서 계속 보내드렸다. 가게 외부는 실제 사진에 합성을 해서 보여드렸다. 도면도 그려서 드렸다. 캐드로 도면을 친 건 아니고, 비전문가도 간편하게 도면을 그릴 수 있는 플로어플래너(floorplanner.com)라는 사이트를 통해 작업했다. 정해진 크기 안에 주방과 홀이 어느 정도의 비율로 나뉘고, 홀에 테이블이 몇 개 들어갈지, 주방의 기기들은 어떤 식으로 배치를 해야 할지, 과연 냉장고가 그곳에 들어갈지 모두 도면을 그려보며 가늠했다.
작은 가게인 건 알았지만 막상 공간을 분할하며 구상해보니 정말로 작았다. 9.8평! 홀에 테이블과 의자가 들어가면 사람들이 지나다닐 길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홀에 손님을 최대한 많이 받으려면 주방을 최대한 줄여야 했는데 실제로 주방이 작아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작은 주방이 그렇게 많은 음식을 만들어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냉장고나 개수대, 작업대 등은 인테리어 공사와는 별개로 구입해야 했다. 보통은 주방 설비 전문 업자에게 맡겨서 공간에 딱 맞게 제작하는데, 대충 견적을 물어보니 너무 비쌌다. 우린 정말 돈이 없어서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라 중고를 구입하기로 했다. 봉일천 쪽 넓은 터에 크게 자리하고 있는 중고 업소용 주방기기 매장을 찾았다. 중고인데 새것처럼 보이는 괜찮은 물건들이 많았다. 주방 도면 그려놓은 걸 참고해서 하나하나 사이즈 측정하며 주방에 딱 맞게 들어가는지 따져보다가, 만족스러워서 이 매장에서 필요한 걸 한꺼번에 다 사기로 했다. 그쪽에는 여기저기 비교해보고 온 거라고 말했지만 사실 아무 곳과도 비교하지 않았다. 우린 끌리면 고 하는 타입이었던가? 비교하기가 귀찮았던 것일까? 반 이상 예산을 절약했다! 아싸.
플레이팅을 고민하며 주문한 그릇들이 인테리어 공사가 거의 끝난 가게로 속속 도착했다. 그릇은 황학동 주방 거리나 업소용 주방 기구들을 파는 큰 매장에 가서 한꺼번에 구입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정성껏 준비해서 대접받는 식사, 집에 초대되어 누군가 잘 차려주는 식사처럼 느껴지기를 상상했고, 그에는 도자기 소재의 그릇이 적합하다 생각했다. 대부분의 기성 식당에서 많이 사용하는 멜라민 소재의 그릇은 피하기로 했다. 여러 디자인의 도자기 그릇을 한꺼번에 모아서 파는 매장은 찾기가 어려웠고, 가격도 최대한 비교해서 사야겠기에(자금난에 허덕여서. 흑.) 다양한 사이트를 수없이 넘나들며 그릇을 주문했다.
도자기 그릇의 최대 단점은 잘 깨진다는 것이다.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배송 과정 중에 깨진 그릇도 몇 개 있었다. 사용해보니 특히 설거지를 하다 그릇끼리 서로 부딪히며 이가 나가는 경우가 많다. 요즘 말로 가성비가 좋지 않다. 싸지 않고 잘 깨진다니! 하지만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생각을 부여잡고 몇 번씩 재주문을 하며 유지했다. (이가 약간 나간 그릇이 너무 아까워서 바로 버리지 못하고 좀 더 사용하기도 했다...)
빈 그릇들을 세팅해보며 잘 어울리는지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해봐도 뭔가 허전했다. 음식! 음식이 없는 그릇은 비어있는 캔버스와 마찬가지다. 비어있는 그릇만 살피기보다 우린 빈 그릇에 맛있게 만든 음식을 담아내는 연습을 해야 했다. 그래서 오픈 전 두 번, 실전 같은 경험을 해볼 기회를 만들었다. 오픈 하기 며칠 전 가족들을 모셨고, 오픈 바로 전 날은 지인들에게만 알리고 가오픈이라는 걸 했다. 나는 그 날 양배추 채를 썰다가 새끼손가락 끝이 함께 썰렸다. 후드득 떨어지는 야채와 함께 작은 살 덩어리가 한가득 쌓인 가느다란 양배추채 더미로 쑥 들어갔다. 악. 짧은 비명과 함께 손가락을 쳐다보고 있으니 금세 방울방울 피가 맺히며 흘러내렸다. 썰어놓은 양배추 채는? 썰려나간 살 덩어리를 찾아낼 수 없어서 다 버렸다. 채칼도 익숙지 않은 주방 왕초보가 식당이라니.
사실 난 W와 함께 오픈 준비를 한 후, 다른 일을 병행하며 조금씩 식당 일을 도와주는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을 했다. 전업으로 이 일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상황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이나 일본 드라마 <빵과 수프 그리고 고양이가 함께하면 좋은 날> 같은 걸 좋아했다. 막연히 그런 가게를 상상했다. 손님이 오면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고, 손님이 오지 않는 시간에는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한적한 동네의 따뜻하고 여유로운 식당... 나는 오픈 전까지 정말 몰랐다. 그 영상들은 힘겹게 노동하는 대부분의 시간들이 편집된 장면들의 모음, 아름다운 모습만을 그려낸 환상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