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싸주셨던 보온도시락
- 따뜻한 오이장아찌
초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1990년도부터 나는 어머니가 싸주셨던 보온도시락을 싸들고 다녔다.
아침에 등교를 하면 내가 했었던 일은, 작디작은 책상 서랍 안에 수업 시간표대로 교과서를 넣어놓고,
책상 옆에 있는 갈고리에 보온도시락을 걸어놓았다.
책상 앞에 적혀있는 알림판을 보고 숙제를 가져왔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08시 20분부터 09시까지 명상의 시간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앞에 있는 시간표 속 체육시간을 확인하면서 주말이 오기를 기다렸다.
- 3교시부터 설레었다.
아침에 해주셨던 쇠고기 뭇국과 내가 싫어했던 콩밥을 두 숟가락 떠먹으며, 빨리 등교를 하려 하면 '한 숟가락 더 떠먹고 가'라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외치셨던 어머니의 말이 언제였는지, 나는 3교시부터 뱃속에서 '꼬르륵'거렸었다. 그리고 보온도시락이 잘 있는지, 왼쪽 무릎으로 통통 튀겨보면서, '음. 잘 있군'이라고 생각하며, 옆에 친구한테 '너 오늘 뭐 쌓왔어?'라고 물어보면, '잠깐만'하며, 책상밑으로 숨어 도시락 반찬을 확인하면서, 선생님 수업을 뒷전으로 점심시간을 기다렸던것 같다.
- 점심시간에 피어나는 화개장터
매일의 점심시간마다 '3,2,1, 땡'을 외치는 친구를 시작으로 여지없이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다. 어떤 날은 앞에 있는 친구가 돌아앉아주었고, 그러면 다음날은 내가 뒤돌아서 먹으면서, 그러면서 반찬은 하나씩 공유하며 나눠 먹었었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반찬은 총 3개에 국 하나였다. 소시지나 돈가스, 아니면 불고기가 주였고, 항상 김치나 오이무침, 오이장아찌, 아니면 파김치 등등이 밑반찬으로 등장했다. 반찬 뚜껑에는 어느샌가 7~8개의 친구들의 반찬이 소복이 쌓여있다. 친구들이 내 반찬통에 있는 호박전을 먹고 '야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라고 말하면, 내 기분이 덩달아 좋아졌고, 나도 친구 반찬통 속의 볶음김치를 먹으면서 '나 이거 또 줘'하며, 서로 우정도 자연스레 쌓였었던 것 같다.
어떤 날은 국통에 카레나 짜장이 있으면 환호하면서 밥에 조금씩 덜어주는 날도 있었고, 그렇게 해서 먹고 자랐던 나의 한식은, 친구들과 나눠먹었던 10년간의 보온 도시락 속의 기억과 추억으로 가득하다.
- 情없으니 한 숟가락 더
어머니께서 밥이나 국을 덜어주실 때에 입버릇처럼 항상 하던 말이셨는데, 요즘은 언젠가부터 그 말을 하시는 걸 잊어버리신 건지 들은 적이 오래돼서 가끔 내가 말을 해드리려 하곤 한다.
또 요새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에게 식사를 차려 드릴 일이 많은데, 건강에 좋은 식재료들을 찾아 식단을 꾸리곤 하면, 부모님 두 분 모두 내가 한 음식 중에 밑반찬을 엄청 선호하진 않으신다.
미역국이든, 곰국이든 국을 끓여드릴 때도 팔팔 끓여드리지 않으면 다시 해오라고 하시면, 나도 사람인지라 기분이 상할 때가 조금 있다. 그러면 그걸 눈치채셨는지 어머니는 국도 다시 직접 끓여 드신다.
사실 나도 부모님께 좀 더 짜임새있는 식단에 맞게 챙겨드리려고 건강에 좋은 브로콜리, 토마토부터 시작해서 강황, 그리고 생마늘과 양파와 함께 입맛을 돋아줄 수 있는 수육 등을 직접 차려드리곤 하지만 녹록지가 않다.
- 어머니들의 음식
며칠 후 이사를 하기 위해 짐 정리를 하던 중, 항아리에 담겨 있는 묵은 된장이 있어서, 버리려고 하는 중에 어머니가 항아리는 버리지 말라고 하셨다. 깔끔하게 세척을 하고, 그리고 거기에 또 오이장아찌를 하셨다. 오이에 소금을 절여 놓고, 간장과 식초, 물 등을 넣어서 돌멩이로 고정하고, 하루를 묵히시더니 그 물을 냄비에 옮겨 팔팔 끓여서 다시 항아리에 넣어 또 묵히시고, 그 과정을 거의 일주일 넘게 하셨다. 내가 어머니께 물었다. '엄마, 꼭 그렇게 해서까지 먹어야 해요?' 했더니, 어머니가 답하셨다. '그래야 맛있어~'하면서, 정말 내가 해드린 밥과 함께 맛있게 드셨다.
대체 어떤 맛이길래 궁금해서 장아찌를 하나 먹어봤는데, 간은 짜지도 않으면서 담백하며 감칠맛이 났는데, 말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어렸을 때 내 반찬통 속에 묵묵히 언제나 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보온도시락 속의 오이장아찌의 그 맛이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내가 어렸을 적, 추억 속의 보온 도시락 속에서 그냥 묵묵히 봐왔던 오이장아찌였고, 그래도 오이를 좋아하는 나이기에 맛있게 먹었는데, 항상 느꼈던 것은, 뚜껑을 열자마자 먹은 반찬들은, 그리고 오이장아찌는 언제나 따뜻했던 것 같다.
지금 어느정도 그동안 배우고 느꼈던 것 들을 실행해야 하는 나이에도 인생을 살면서 어려운 것들이 참 많은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래도 이 정도면 노력하는 것 아닐까'라고 스스로 위안하는 내게, 다시 새로운 것들이 마구 쏟아져 나와 또 한 번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 같다.
어머니가 아침에 따뜻한 밥께 함께 팔팔 끓인 국을 넣어서,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밥과 국을 먹었으면 하는 바람이 오이장아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지금 내가 부모님의 건강을 위해, 정성과 마음으로 준비하고는 있지 않은 건지,
반찬통 속 한켠에 묵묵히 자리 잡혀 있는 따뜻한 오이장아찌처럼, 내 스스로가 묵묵히 부모님께 내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건지를,
어렸을 적 명절이 되면 잡채, 갈비찜, 각종 전을, 대보름이 되면 잡곡밥과 나물들을, 생일이 되면 미역국을 매순간마다 준비해주시며 사랑 가득한 추억을 자리 잡게 해 주신 내게, 희미하게 놓치고 사는 것들은 없는 건지를, 나는 어머니의 음식을 통해, 추억 속의 어머니들의 음식을 통해 깨닫는다.
아버지께서 오늘 툭 하고 내던지신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엄마의 정성이 부족한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