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의 미세조정이 필요하다
내 생일이다. 7년 만에 한국에서 생일을 맞는다. 어제는 남편의 생일이었다. 하루 차이라 매년 생파를 같이 했는데 이번엔 상하이, 제주도에서 각각이다. 당장은 선물을 줄 수 없어도 갖고 싶은걸 이야기하라고 했더니 대뜸, 자기.라고 했다. 매번 '없어.'라고 대답하는 사람인데 떨어져 산 일 년 동안 많은 반성을 했나 보다. 닭살 돋을 새 없이 위챗 머니로 00위안을 보냈다. 선물이야. 1초 전에 나를 갖고 싶다던 남편은 빛의 속도로 오호~하며 냉큼 돈을 받았다. 에라이.
남편과 근황 토크도 했다. 그는 요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유튜버들의 영상을 많이 본다고 했다. 자신이 구독하는 유튜버 여러 명이 제주나 강원도에 내려가 정착했다는 이야기도. 또 오랫동안 지켜봐 왔던 해외의 유튜버가 위암 4기 판정을 받고 한국의 고향집으로 돌아갔다고도 했다. '건강을 잃으면 돈이든 뭐든 뭐가 중요하겠느냐. 우리는 욕심도, 스트레스도 줄이고 '소소하게 행복 찾으면서 건강하게 살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대화를 틈틈이 한다. 발을 맞춰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인생 방향의 미세조정. 오늘 나눈 작은 대화가훗날 우리를 어떤 지점으로 보내 줄 것이다. 결혼 전의, 결혼 후의 많은 사소한 대화들이 우리 인생을 현재의 지점으로 보낸 것처럼.
우리가 상하이로 떠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내가 여전히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살고, 팀장이 되었고, 남편이 여전히 회사에 다니고, 우리 둘 다 위를 향해, 좁아터진 사다리에서, 간신히 한 손으로 그것을 부여잡고, 야망인지 생계인지 구별되지 않는 버티기를 하며 그렇게 서울에 살고 있다면 어땠을까.
그때 내가 번아웃을 참아내며 계속 조직생활을 했다면 어땠을까. '회사에 쓰는 내 에너지가,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던 남편을 기어이 회사에 눌러 앉히고 따박따박 월급을 받아냈다면 어땠을까. 각자의 스트레스로 서로를 할퀴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지금 장담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대화로 인생 방향의 '미세조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다만 그것에 감사하고 살겠다. 조금씩 조정된 방향으로, 훗날 그저 어쩌다 보니 그와 함께 어느 평온한 지점에 닿아 있었다. 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삶이 어디로 어떻게 흐르는지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매 순간 내게 어떤 선택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고, 그것은 신이 아니라 오랫동안 미세 조정된 '방향'의 목소리라는 것은 안다. 그 목소리를 따라 사는 것도 괜찮다. 후회 없이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을 누리고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을 믿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남편과 나의 생일을 축하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