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진짜 의미
초딩 조카 3호가 강화에 산다.
명절 때마다 만나는데,
매번 키가 커진 조카를 보면서 놀라곤 한다.
더 놀라운 건 조카의 말이 부쩍 자란다는 것이었다.
뇌겠지.
몇 해 전 추석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니 다시 친밀도가 초기화 되었다.
메멘토 감정선이다.
7세 조카와 그리기 놀이를 하며 반나절을 보냈다.
그제서야 외숙모에게 마음이 열린 조카가
한결 친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외숙모 우리 산책이나 할래?"
"어 좋지!"
동네산책을 놀이삼는 어린이라니.
현관을 나서는데, 내가 이 동네 지리를
잘 모른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고작 일 년에 한두 번 오는 시댁이었다.
"외숙모는 이 동네 지리를 잘 모르니까,
니가 길 안내를 좀 해줄래?"
그런데 앞서 걷던 조카가 말했다.
"외숙모, 산책은 길을 알고 가는 게 아니야
그냥 걸으면서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돌멩이도 보고 하는 거야."
그러곤 돌담을 무심하게 쓸었다.
"아..... 그러네. 외숙모가 산책을 잘 몰랐네."
"으이그, 어른이 그런것도 몰라"
그날 이후, 나에게 '산책'의 정의는 바뀌었다.
제주도에 살면서는 모르는 길을 자주 걸어본다.
가면서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돌멩이도 본다.
그때마다 7세 조카의 돌담 만지던
귀여운 손이 생각난다.
그런 것도 모르는 어른으로 오래 살았다.
아는 길만 다녔다.
땅에 난 길보다 지도앱 속 길을 보는게 편했다.
조카에게 '산책의 의미'를 배우고서야
제대로 산책을 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강화도의 조카 3호는 올해 초3이 되었고,
여전히 외숙모의 머리 꼭대기에서 놀고,
여전히 만날 때마다
'어른' 외숙모가 놓치고 사는 것들을
무심하게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