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낭 Aug 26. 2020

일상의 여유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되다

2018 스웨덴 6박 8일 교육 연수 소감


6박 8일 동안 스웨덴에 머물며 감라스탄, 한인성당, 스톡홀름 시청사, 바사박물관, 스칸센, Tallbaka, 유니바켄, 웁살라 대학, 시그투나, 시립도서관, 문화회관 등을 다녀왔다.

장장 14시간의 고된 비행을 하고 중간에 이스탄불을 경유하며 겨우 도착한 스톡홀름에서 제일 인상 깊게 남았던 것은 도심 곳곳의 ‘여백’이었다. 스톡홀름은 스웨덴의 수도이자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도 제일 유명한 큰 도시이다. 아래로는 발트 해와 수많은 섬을 끼고 있는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는 약 8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며, 매년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고 수많은 여행자들이 방문한다. 그러나 이런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바쁜 군중들,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조명이나 큰 간판, 고층 건물, 여행객을 이끄는 광고 같은 것들은 전혀 볼 수 없었다. 스톡홀름의 명성에 기대해 상상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조용하고 수수하기만 했다. 우리가 여행 성수기를 살짝 비껴 9월 초반에 갔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관광 도시라기에는 휑할 정도로 빈 곳이 많아보였다. 그리고 이 여백들은 그 누구에게도 채워지지 않고 그대로 스웨덴의 풍경 중 일부를 구성하고 있었다.


광고 하나 없는 지하철. 원격 의료 관련 광고 딱 하나 본 것 같다.


스웨덴은 오랫동안 사회민주당이 집권하고 있으며, 복지로 유명한 북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특히 복지 구축이 잘 되어 있는 나라이다. 보육, 교육, 의료 등을 국가가 거의 무상으로 제공하며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촘촘하게 구비되어 있다. 물론 스웨덴이 전쟁 피해를 겪지 않은 선진국이라서 이런 모범적인 복지국가를 이룩했을 수도 있지만, 이런 복지 정책이 성공적으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회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가 깔려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언젠가 나에게, 내가 아니면 나의 자식들에게, 자식이 없다면 나의 이웃에게 꼭 돌아갈 거라는 이해가 있어야 높은 누진세를 저항 없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과 배려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Tallbaka 로비에 있던 작품. 학생들이 자기 출신 국가의 국기를 나뭇잎 모양으로 그려 함께 완성했다고 한다.


Tallbaka에 갔을 때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를 직접 안내해준 키키 선생님이 60대셨고, 굉장히 활기차고 친절한 분이었던 것이었다. 만약에 우리나라 학교를 방문했다면 어떤 선생님이 학교를 소개해주었을까? 아마도 그 학교의 교장 선생님과 교장실에서 잠깐 인사를 나눈 다음, 제일 연차가 적은 젊은 교사가 학교를 소개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Tallbaka에서는 그런 형식적인 인사도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 선생님이 앞장서서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셨다. 그리고 또 인상 깊었던 것은 학교에서도 곳곳에 빈 곳이 많다는 것이었다. 널찍한 학교 중간마다 학생들이 놀거나 쉴 수 있는 장소가 있었다. 학교에서 제일 큰 로비에도 학생들이 쉴 수 있도록 벤치나 소파, TV를 가져다 놓았다. 복도에는 그 흔한 학생들의 대회 작품이나 수상 실적 같은 것도 걸려있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었는지 학생들이 교실에서 우르르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학생들이 웃고 떠들며 학생 휴게실로 삼삼오오 몰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스웨덴의 여유가 너무 부러웠다. 거리 곳곳을 무언가를 팔기 위한 광고로 꼬박 채워 넣지 않아도 되는 것, 그 학교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제일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것, 학교 곳곳이나 공원 곳곳에 아이들이 마음껏 쉬고 뛰어놀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는 것…. 이렇게 공간에서 보이는 여유가 사람들의 마음에도 여유를 만들고 있는 듯 했다. 내 마음에 빈 곳이 생기고 여유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관대해지기 마련이다. 스웨덴 사람들은 대놓고 살갑거나 잘 웃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에는 자연스러운 여유와 배려가 넘쳐보였다. 스웨덴에는‘FIKA’라는 것이 있는데, 정오가 좀 지나고 일하는 중간에 사람들과 커피나 다과를 먹으며 수다를 나누는 시간이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런 단어가 특별히 있다는 것만으로 스웨덴 사람들은 참 여유를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스웨덴의 성평등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스웨덴의 높은 성평등 지수에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 공부를 하러 갔다. 하지만 스웨덴의 성평등 교육이 특별한 교수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스웨덴 사회 곳곳에 전반적으로 평등의식이 있고, 그것이 성평등으로까지 연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스웨덴이 평등에 대해 높은 시민 의식을 공유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일상에서의 여유를 간직하고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