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 글쓰기
고등학교 2학년, 한밤중 불이 꺼진 학교에 잠입한 적이 있었다. 아침 7시 30분까지 등교해서 밤 11시, 12시까지 종일 공부를 하고나서도 집에 들어가기 싫었던 날들이 있었다. 밤이 되어 공기가 가라앉은 서늘한 거리를 친구와 함께 걷고 또 걷다보면, 편의점에 들러서 컵라면이며 토스트며 먹다보면 그제서야 마음 속 빈 곳이 채워지곤 했고 채우지 못한 날에는 밤길을 한참 서성였다. 깜깜한 밤 걷는 사람 없는 하굣길에서, 친구는 특별실에 두고 온 게 있다며 다시 학교로 돌아가자고 했다. 자주 어울리는 친구 그룹은 따로 있었지만 1년에 한 번씩 단짝이 바뀌곤 했다. 유독 내 이야기에 크게 웃고 나를 편해 하는, 친한 친구는 아니지만 쉬는 시간에도 자습시간에도 하교 시간에도 같이 있는 단짝. 그런 아이들은 내성적인 나를 툭툭 건드리며 먼저 다가왔고 한동안 머물렀다가 떠났다. 이 친구도 그런 친구 중에 한 명이었다. 내 흔해빠진 이름과 같은 이름을 하고 있어서 더 금방 친해졌던 것 같다.
학교 동쪽 1층에 위치한 특별실에 잠겨 있지 않은 창문을 알고 있었다. 불을 밝혀줄 핸드폰도 없던 시절, 창문을 열고 들어가 깜깜한 교실을 더듬어가며 잊고 온 물건을 찾아 재빨리 나왔다. 1층 치고 창문이 참 높았는데 내가 들어갔었는지 친구가 들어갔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기억이 나는 건 곧바로 세콤의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친구와 정신없이 학교를 빠져나왔다. 사이렌 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중간부터는 세콤의 사이렌 소리인건지, 학교 앞 소방서의 소방차 소리인건지, 앰뷸런스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무서웠다. 긴장이 풀리고 급하던 걸음이 느려질 쯤에 친구에게 “나 이 소리가 싫어.”라고 말했고 친구는 옆에 붙어서 내 귀를 양손으로 막아주었다. 그러고 또 한참을 걸었다. 우리는 학교는 어떻게 되는 건지, 오늘 밤의 일은 결국 들키는 것인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왜인지 그때 엄마와 별 것 아닌 일로 싸운 상태였다는 게 생각났고, 친구에게 내가 먼저 엄마한테 사과해야 할까?라고 물었고, 친구는 그래야 한다고 대답했다. 집에 돌아와서 교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자고 있는 엄마 옆에 다가가 울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꾹꾹 참아온 울음이 그때 터진 것 같았다. 한 번도 밤의 학교를 무섭다고, 한 번도 사이렌 소리를 무섭다고 생각한 적이 없고 지금도 그런데, 그날 밤은 사이렌 소리도, 엄마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모든 게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