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제철이다. 벚꽃만이 아니라 목련, 자목련, 매화, 개나리, 이른 조팝까지 난리가 났다. 추운 건지 더운 건지 봄이 온 건지 만 건지 사람도 헷갈리는 통에 꽃들도 난리 블루스다.
마당에 꽃을 심지 않고 아무런 관리도 해주지 않은 뒤로 꽃은 밖에서 보는 것이 됐다. (그러나 고맙게도 매화, 개나리, 조팝, 그리고 단아하게 올라와 준 수선화를 아침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맞이한다.) 4월이 되고 집보다 밖이 더 따뜻한 낮시간이 되면 샐러드 점심을 차려먹고 몸을 덥히러 밖으로 나온다. 왁자지껄한 점심시간의 운동장을 구경하러 초등학교 앞으로 가는 길. 오밀조밀한 빌라 단지 속 몇 채 안 되는 주택 담장 위로 사과꽃망울과 터질듯한 목련, 자목련을 본다. 멀리 산자락에는 복슬복슬 연둣빛 솜털 같은 새내기 이파리들을 달기 시작한 나무들 사이로 벚꽃 나무들이 콕콕 박혔다. 버스를 타고 내달리는 거리에는 노란 개나리들이 아주 흐드러졌다.
이맘때쯤 나는 생각한다. 봄은 품앗이라고. 나 혼자 보겠다고 심긴 나무도 없고, 저 혼자 잘났다고 피는 꽃들도 없다. 누굴 보라고 심었든, 저 좋아 스스로 자라났든 즐기는 건 모두의 몫이다. 나누어 가질 필요도 없이 다 함께 즐긴다. 내 것을 공짜로 내놓는 일이 드문 교환 경제의 세상에서 봄은, 봄꽃나무들만은 보는 이에게 두루 공평하다. 내 집의 매화도, 옆집의 목련도, 길가의 개나리 민들레도, 그 앞을 지나는 아이와 유모차, 사람들의 느린 걸음이 한 데 어우러져 그 아름다움이 배로 폭발한다. 일 더하기 일은 이가 아닌 무한대가 되는 이상한 경제다.
2024/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