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바꾸고 글쓰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키보드가 더 작아졌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오타가 많이 나서 간신히 써오고 있었는데 지금의 폰으로 바꾼 뒤론 글을 더욱 멀리하게 됐다. 그렇다고 나빠졌느냐 라고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 전화기로 바꾸기 이전부터 이미 글쓰기를 멀리 하는 중이었는데 오히려 마음이 더욱 가벼워졌달까. 내려놓게 되었달까. 전화기가 작고 가벼워 손에 잡히는 그립감도 휴대성도 좋아졌다. 키보드가 불편하니 뭘 그다지 하지 않는다. 덕분에 멍하니 있는 시간도 많아졌다. 바야흐로 전화기가 전화기의 기능만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놀아도 되나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작업이 들어오지 않은지 꽤 되었고 작업실에는 제주북페어를 다녀온 뒤 정리하지 않은 상자가 아직도 쌓여 있다. (북페어에 책을 3종 합해 75권 가져갔고 3분의 2 넘게 다시 돌아왔다.) 일도 없는데 글도 안 쓰고 그림도 안 그리니 백수가 따로 없다. 죄책감에 알바라도 해볼까 하고 구직 어플도 깔고 프리랜서 고용 어플도 깔아보았다. 역시나 나를 끝없이 소개하고 증명해야 하는 경쟁지옥, 소개지옥은 심장에 좋지 않다. 얼굴도 모르는 이와의 소통 또한 과도한 심장 두근거림을 유발한다. 아직 나는 시장에 나갈 준비가 안되었다는 사실만을 확인했을 따름이다.
쿠팡을 열어 아이패드용 키보드를 검색했다. 기계 문명에 둔한 편이라 장비발을 세우는 타입은 아니지만 왠지 키보드가 있으면 글도 더 쓸 것만 같고 아이패드를 자주 갖고 다니게 되어 그림도 더 자주 그리게 될 것만 같다. 커피값 점심값 아끼려고 과일이며 채소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는 내게 기계값 5만 원은 큰 돈이다. 정말로 키보드가 있으면 글을 더 쓰게 되는 것이 맞나? 5만 원의 투자 가치와 효용이 있을까? 놀고 있다는 기분을 덜게 될까? 지금의 죄책감이 줄어들 수 있을까...
꼬리를 무는 물음표를 뒤로 하고 가전제품 매장에 가보기로 한다. 인터넷으로 보는 것보다 실물을 확인하면 이 물건에 대한 나의 간절함 정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새 휴대폰(새것은 아니고 남편이 쓰던 폰을 물려받은 것이다.)으로 이 글을 쓰는 동안 초반에는 많은 오타가 있었는데 지금은 적응이 되었는지 예전의 속도가 나오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메모장에 적은 글들을 모아 두 권의 책을 냈다. 글 쓰는데 이 작은 기계면 충분한 걸까. 다시 물음표.
오늘은 바나나와 두유를 도시락으로 싸갖고 나왔지만 홧김에 카페에 앉았다. 돈이 없고 일이 없다는 사실에 짓눌리고 싶지 않다. 가난은 자발적일 때 좋은 것이다. 정말로 너무 없을 땐, 비참한 기분을 피하기 위한 작은 소비(혹은 낭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제법 굵은 봄비가 내린다. 비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좋다. 비겁한 것이 아니다. 어둡고 컴컴한 기분 속에 나를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