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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Apr 30. 2024

구직 그리고 봄날의 백수


구직을 하고 있다. 평일 낮, 그러니까 아이가 학교에 다녀올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거다. 소위 ‘학원비’ 벌러 나간다는 경력단절여성의 행보와 유사하다. 물론 나의 경우 아이의 사교육에 욕심도 관심도 없고, 여성양육자의 경제활동을 부차적인 것으로(+양육이 우선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시선 또한 동의할 수 없지만. 아무튼 프리랜서 형태의 1인 자영업자 신분이 갖는 경제적 불안정성을 버티기가 어렵다. 특히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주로 공공기관, 단체 위주였던 나의 거래처가 국내 정세에 따라 눈뜨면 하나씩 사라져 갔고, 이제는 가느다란 동아줄 정도로 버티는 수준이 되었다.) 고정비가 필요하다.


상황은 급박하지만 봄도 왔고 여전히 노는 게 좋아서 소극적으로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동네 서빙 알바부터, 프리랜서들에게 고객을 연결해 주는 중개앱, 친구들이 소개해주는 글쓰기 관련 알바까지. 하지만 내키지 않는 마음에 딱 차는 일자리란 없을 것이다. 음식점은 요즘 배달서비스도 많은데 느릿한 성향인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 프리랜서 중개 어플의 경우 고객들에게 견적서를 보내며 계속해서 문을 두드려야 하는데 그만큼의 에너지는 내게 없고. 글쓰기 알바는 왠지 숨이 막히고.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 하다 보니 딱 맞는 자리는 오지 않았다. 원래 하던 디자인 일을 쉬려는 것은 아니니, 추가적인 일자리는 머리보다는 몸을 쓰고, 집에서 혼자 하기보단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자면 음식점 서빙이 딱인데, 내가 원하는 시간대와 거리 조건이 알맞은 곳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물이 턱밑까지 차오른 만큼 이제 이것저것 따지고 가릴 처지는 아닌 것 같다. 거리와 시간의 폭을 넓혀 당근 알바 목록을 뒤지고 또 뒤진다. 지치고 멀미가 나지만 열심히 찾다 보면 이 한 몸 써줄 업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지난 경험들을 돌아보면 구직을 하는 기간에는 어쩐지 자기 자신이 쪼그라들고 나약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넓은 세상에 내 두 발 디딜 곳이 없는 것 같은 느낌. 나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닌 걸로 안다. 마치 앙상한 전세보증금을 들고 이사 갈 집을 찾아 부동산과 인터넷 매물 속을 헤매는 때의 심정과 같겠지. 내 집이 없으면 2년에 한 번 꼴로, 천직을 만나지 못하면 몇 년에 한 번 꼴로 이런 상태를 감당해야 한다. 그때마다 삶의 지반이 흔들리는 취약함에 몸서리가 쳐지지만… 지진도 언젠가는 멈추고 무너진 잔해를 딛고도 삶은 계속된다. 결국 언젠가는 나의 자리를 만나게 될 거라고 믿는다. 비록 볕도 덜 들고 눅눅한, 완벽히 나와 꼭 맞는 자리가 아니라 해도 말이다.


무엇보다 우울해지지 않으려고 한다. 봄날의 백수는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직업이다. 내게는 어디든 들고나가 글을 쓸 수 있는 아이패드와 키보드가 있고, (이전 글 참조) 과일과 빵과 샐러드 도시락, 텀블러에 담은 커피만 있으면 돈도 들지 않는다. 시립 도서관의 아담한 휴게실도, 음식 냄새로 가득한 대형 쇼핑몰의 푸드코드도 마음만 먹으면 아지트로 삼을 수 있다. 일자리는 단번에 구해지지 않을 것이다. 최근 나와 비슷한 일자리를 알아보다 결국 모 비영리재단의 전일제 직원이 되었다는 친구가 전화를 해왔다. 맞는 일자리는 언젠가 올 테지만 시간이 걸릴 거라고 한다. 아마도 두세 달, 그 기간을 버틸 체력과 마음 상태가 필요하다.


날이 좋으면 빨래와 집안일을 하고 백팔배 운동을 한다. 날이 궃고 흐려 마음이 꿀꿀할 것 같은 날엔 도시락과 아이패드를 챙겨서 밖으로 나온다. 요즘에는 남편의 출근용 오토바이 뒷자리에 매달려 서울로 나가곤 한다. 팔당댐 품은 한강을 지나는 45번 국도를 따라 달리면 다양한 레이어의 연두와 초록빛 산세가 황홀하다. 구직의 우울함을 털고 이 좋은 봄날을 누린다. 이 시간을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어디든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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