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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Jul 14. 2024

찬란했던 에피소드를 뒤로 하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어쩌다 마당 일기 최종_최종_최종


이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사 준비를 참으로 요란하게 하고 있다. 거의 6년 만의 이사이기도 하고, 처음으로 월세나 전세가 아닌 내 집으로의 이사이기 때문이기도.


아이는 아직도 이사 갈 집을 탐탁잖아한다. 마당도 없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이라고 툴툴댄다. 그때마다 네 방이 지금보다 두 배는 커질 것이고 2층집에 너른 테라스도 있다고 도닥이지만 실은 아이가 지금 집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 주는 것이 고맙기도 하다. 낡고 춥고 벌레도 많이 나오는 집에서 탈 없이 즐거이 살아준 것이 벅차게 고맙다. 오래된 시골집이라 부끄러워 않고 친구도 데려와 놀고 여름엔 마당에 설치한 수영장에 하루가 멀다 하고 몸을 담갔다. 유치원 졸업반부터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지금까지, 키가 30센티는 훌쩍 자랐을 시간 동안 아이에게 이 집은 어떤 존재였을까. 나이를 먹고 사춘기를 보내고 어른이 되어서는 또 어떤 추억으로 남아 있을까.


일일이 언급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추억을 어떻게 갈무리할지 고민되고 생각할수록 아득하다. 신명 나게 이사 준비를 하던 남편도 일주일이 채 남지 않은 지금은 마음이 뭔가 이상하단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이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이 집과 마당을 거쳐간 지인들을 불러 파티를 하자, 타임캡슐을 묻자, 여러 농담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은 조용히 떠날 듯하다. 담백하게 이 시간들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 개망초 밭이 되어버린 마당 사진을 올렸더니 지인이 댓글을 남겼다. 이 집의 시간들을 절대로 잊지 말라고. 하지만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여름날 허리와 어깨까지 흐드러지게 자란 하얀 개망초 사이를 숨어 다니던 개구리의 노래를. 그릇에 놓은 고양이밥을 몰래 훔쳐먹던 까마귀와 물까치와 개미 떼, 그 개미를 하염없이 쪼아대느라 바쁘던 참세 떼를. 장마에 현관 문턱까지 물이 차오르던, 겨울이면 처마 밑으로 팔뚝만한 고드름이 매달리던,  계절을 늘 정통으로 맞아야 했던 이 집을.


나는 후회가 많은 타입이긴 하지만 지나간 인연해 관해서는 그리 미련을 두는 편은 아니다. 그저 색이 바래 뽀얗게 남은 추억의 잔상들을 예쁘게 간직하는 편. 시간이 지나면 차츰 흐려질 이 집에서의 일들이 그래도 나의 책 한 권으로 남았다. 이 집에서의 우울의 시간들이 모여 첫 책 <오늘의 밥값>이 되고, 그 기운으로 두 번째 책 <어쩌다 마당 일기>가 나왔으니 요즘 말로, 완전 럭키잖아! 집도 우울도 참으로 버릴 것이 없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살아남은 나 자신이 한번 더 대견하다.


이사 갈 집까지 걸어서 15-20분 거리라 자주 걸어 다녔다. 가서 청소도 하고 손볼 곳들을 살피고 하느라 드나드는 동안 여러 감상이 들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초록이다. 시골에서도 더 시골로 들어가는 동네다 보니 마당살이 하던 때보다 더 자연에 가깝다는 기분이 든다. 동네를 걷다 마당에서는 한 번도 못 본 종류의 새를 만났다. 근처 편의점에서는 배를 스스로 까고 눕는 개냥이가 상주하고 있는 걸 확인했다. 새로운 집, 새로운 동네에서의 새로운 인연이 기대되는 순간들이다.


이 글을 며칠에 걸쳐 쓰고 있다.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계속 고민했는데 그냥 이런 정도로 마쳐야 할 것 같다. 안 그러면 결국 마무리하지 못한 채로 새로운 시공간에 휘말려야 할지도. 멋지고 정성스럽기보다는 역시 이별은 담백한 게 좋다. 어차피 어떻게 해도 마음을 다 전할 길은 없으니. 설거지하며 음악을 듣다 눈물바람을 하기도 하지만(가령 이무진의 에피소드) 역시 웃으며 헤어지고 싶다. 우리의 에피소드는 여기까지. 마블 영화의 다음 페이즈처럼 이제 각자 다른 페이지로 넘어가자. 모든 날 모든 순간에 감사했다. 안녕, 나의 집, 나의 마당. 그곳에서의 모든 날들아. 안녕. 고마웠어.


집을 처음 칠하고 고치던 날
삼각대롤 세워 놓고 찍은 이 집과 마당에서의 마지막 가족사진.
잊지 못할 집의 장면들
이 집에서 아이가 이만큼 자랐다.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 어쩌다 마당 일기를 정말로 마칩니다. 최종의 최종의 최종이에요. 그동안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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