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북소리

헨리데이비드 소로의『월든』을 읽고

by 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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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로의 『월든』에서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스물아홉 초임 교사였습니다.

그때는 그냥 '멋있는 말'이구나 하고 넘어갔어요.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불안한 일인지 아직 몰랐으니까요.


초임 시절, 저는 수학교사였지만 인문학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어요. 교무실에서 점심시간에 플라톤을 읽고 있으면 선배 교사들이 물었죠. "수학 선생님이 왜 그런 책을 읽어?" 농담처럼 들렸지만, 은근히 마음이 쓰였습니다. 수학 문제집이나 더 연구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주변 동료들은 학원 강사로 이직하거나 교육청 장학사 시험을 준비하는데, 저만 고전 읽기에 빠져있으니까요.


하지만 50대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틈틈이, 지역 도서관이나 평생교육원에서 인문학 강연을 하게 되었거든요. 피타고라스 정리를 가르치다가 저녁에는 공자의 논어를 이야기하는 거죠. 처음엔 '이게 맞나'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전혀 어색하지 않더라고요. 수학의 논리와 철학의 사유가 생각보다 닮아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그때 비로소 알았습니다. 제가 듣고 있던 북소리는 다른 것이었구나.


몇 달 전 아침, 등교길 학교 화단에서 작은 발견이 하나 있었어요. 같은 시기에 심은 장미인데, 어떤 꽃은 벌써 활짝 피어 화려한데, 어떤 꽃은 아직도 꽃망울이 단단하게 닫혀있는 거예요. 같은 종류의 꽃인데도 저마다의 속도가 다르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소로의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요즘은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수학만 열심히 가르쳤다면 어땠을까 하고요. 아마 지금처럼 브런치에 글도 쓰지 않았을 것 같고, 인문학 강연도 하지 않았겠죠. 수학교사이면서 인문학을 이야기한다는 게 어정쩡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게 바로 저만의 북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저는 제 속도로 걸어갑니다. 낮에는 수학을, 저녁에는 고전과 철학을 이야기하면서요. 그게 조금 독특하고 남들과 달라 보여도, 그것이 바로 제가 듣는 음악이니까요.


#월든#고전#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