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밤 세대

별이 빛나는 밤에

by 수담

프랑크 푸르셀 악단의 "Merci Chérie"가 흘러나오면, 밤은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의 시그널 뮤직. 우리는 그 프로그램을 줄여서 그냥 "별밤"이라고 불렀어요.


학창 시절 제 꿈은 라디오 PD였습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로 누군가의 밤을 위로하고, 음악으로 세상을 연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밤이면 어김없이 라디오 앞에 앉았습니다. 별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들과 음악들을 들으며, 세상과 조심스럽게 소통했어요.


방 안의 작은 라디오는 제게 창문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제 이야기 같았고, 때로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았어요. 하지만 모두 별처럼 반짝이며 아름다웠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밤하늘의 별처럼 누군가에게 빛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인생이란 참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더라고요. 꿈은 꿈으로만 남았고,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어요. 육아에 모든 시간을 쏟다 보니 어느새 청년은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라디오를 듣지 않게 되었어요. 밤은 더 이상 꿈꾸는 시간이 아니라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는 시간이 되었고, 별밤의 시그널 뮤직은 가슴 깊은 곳으로 밀려나 점점 바래져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불쑥 물었습니다. "아빠, 별밤 세대야?"

순간,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이 제 가슴속에서도 스쳐 지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 나에게도 별이 빛나는 밤이 있었구나. 잊은 줄 알았는데.


아이에게도 분명 별밤이 있을 거예요. 아이만의 방식으로, 아이만의 꿈으로 가득한. 그런데 예전에는 저의 별밤, 우리들의 별밤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잊고 살아왔던 거였어요.


그 순간 느껴지는 먹먹함이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그 시절이 있었다는 것 자체에 대한 감사함이 더 컸어요. 라디오 PD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 꿈을 꾸던 시간들이 저를 지금의 제가 되게 했으니까요. 별밤의 사연들이 주는 따뜻함을 알았기에, 지금도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아이의 질문은 제게 선물이었습니다. 잊고 있던 별밤을 다시 기억하게 해 준. 그리고 깨닫게 해 준 거예요. 별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만 우리가 보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인생을 살다 보면 꿈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하게 되고, 어느새 소중했던 것들을 잊고 지내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이 무의미한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그때의 경험들이 우리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준 거죠.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꿈꾸던 시간이 헛된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오늘 밤, 오랜만에 라디오를 켜볼까 합니다. 혹시 아직도 별밤이 있는지,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별밤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서요. "Merci Chérie"의 멜로디가 다시 들려온다면, 그때는 아이와 함께 들어보고 싶어요. 아빠에게도 별이 빛나던 밤이 있었다고, 그리고 지금도 그 별들이 가슴속에서 반짝이고 있다고 말해주면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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