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공부하는 이유
대학 신입생 때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캠퍼스 생활에 신이 나 있었는데, 저는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어요. 원인을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나의 사춘기는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조금 늦게 찾아온 방황이었죠.
학교 수업은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그 시간에 저는 강변으로 갔어요. 하루 종일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곤 했죠. 때로는 기차를 탔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타고 가다가, 쓸쓸한 바닷가에 내려서는 혼자 걸었어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모래사장을 걷는데, 왜 그렇게 마음이 공허했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왜 사는 걸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다들 즐거워 보이는데, 저만 이상한 건가 싶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어요. 그 고독이 참 깊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도서관에서 집어든 책 한 권이 있었어요. 사르트르의 책이었는데,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이런 문장을 만났습니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그 문장이 가슴에 박혔어요.
그날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니체를 읽었고, 까뮈를 읽었고, 다시 사르트르를 읽었어요. 철학자들의 문장 하나하나가 방황하는 저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들도 똑같이 고민했더라고요. 삶의 의미를, 존재의 이유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까뮈는 말했습니다. "진정으로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자살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충격적이었어요. 하지만 곧 이해했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것,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이라는 것을요.
니체는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했어요. 저는 그 이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그냥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살고 싶어서 사는 것. 그 차이를 알고 싶었어요.
그렇게 20대를 보냈습니다. 철학 책을 읽으며 조금씩 답을 찾아갔어요. 아니, 답을 찾았다기보다는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요.
가치관도 달라졌습니다. 남들이 좋다는 것을 따라가는 대신,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묻게 되었어요. 성공의 기준도, 행복의 의미도 스스로 정의하게 되었죠. 철학은 제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지금은 도서관에서 "수학쌤의 인문학 북콘서트"를 진행하면서 학생들과 성인들을 만납니다. 상담하다 보면 20대의 저처럼 방황하는 학생들이 보여요. "선생님, 저는 왜 이렇게 공허할까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요?" 그럴 때마다 그 시절의 제가 떠오릅니다.
저는 그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그 질문이 당연하다고, 방황하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고. 오히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진지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요. 그리고 슬쩍 철학 책 한 권을 권해줍니다.
가끔 누군가 묻습니다. "왜 철학을 공부하세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살고 싶어서요."
단순히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살고 싶어서. 의미 있게 살고 싶어서. 내가 선택한 삶을 살고 싶어서. 철학은 제게 그런 힘을 주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여전히 철학 책을 읽습니다. 여전히 질문하고, 여전히 답을 찾아갑니다. 완벽한 답은 없다는 걸 알지만, 그 과정 자체가 삶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강변에서 강물을 바라보던 그 청년에게 지금의 제가 말해주고 싶습니다. 괜찮다고, 그 방황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그 고민 속에서 당신은 진짜 삶을 시작하는 거라고.
그러니 방황해도 괜찮습니다. 질문해도 괜찮습니다. 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살고 싶다는 마음, 진지하게 살고 싶다는 그 간절함이니까요.
그것이 제가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