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그리면

by 수담

강연이 끝나고 한 분이 다가왔습니다. 60대쯤 되어 보이는 분이었어요. "선생님, 그리움이 너무 깊어서 잠을 못 자겠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돌아가신 남편 이야기였습니다. 3년이 지났는데도 저녁만 되면 그분이 앉아있던 소파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고, 빈 식탁 앞에 앉아서 밥을 먹다가도 눈물이 난다고 하셨어요.


무슨 말을 해드려야 할지 몰라 한참 망설이다가, 문득 옛 시인의 시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당나라 시인 맹교가 쓴 "원시(怨詩)"였어요.


"저와 임의 눈물로 시험해 볼까요 / 서로 있는 곳에서 못에 떨어뜨려 / 바라보다가 연꽃을 따게 되면 / 올해는 누구 눈물로 죽게 될까요"


천 년도 더 된 시인데,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눈물을 흘려 연못에 떨어뜨린다는 상상이 얼마나 애절한가요. 짠 눈물, 통한의 눈물은 오죽할까요. 그 눈물에 연꽃이 죽는다면 그리움에 한 맺힌 눈물 때문이 아닐까요. 그만큼 사랑한다는 절절한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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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시를 읽다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들어요. 연꽃이 필 때까지 눈물을 흘린다는 건, 결국 그때까지는 살아있다는 뜻이잖아요. 죽고 싶을 만큼 그리워하지만, 그 그리움 때문에 살아가는 거예요. 아이러니하지만 그게 그리움의 본질인 것 같습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생각했어요. 그리움이 뭘까. 왜 사람은 그리워할까.


어렸을 때 할머니 댁에서 본 오래된 앨범이 떠올랐습니다. 누렇게 바랜 흑백 사진 속에 젊은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할머니는 그 사진을 보며 "이 사람이 참 미남이었어"라고 하셨죠. 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는데, 할머니는 40년 넘게 그분을 그리워하며 사셨습니다.


대학 시절 헤어진 첫사랑도 생각났어요.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사는지 모르지만, 가끔 그 시절 노래가 들리면 가슴 한편이 시큰해집니다. 20대의 풋풋했던 감정들이 순간적으로 되살아나는 거죠.


작년에 군에 간 아들도 그렇습니다. 저녁 식탁에 앉으면 아직도 빈자리가 어색해요.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아들이 좋아하던 음료수를 사두는 습관도 여전하고요. 휴대폰을 보다가 문득 아들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 지는데, 근무 중이라는 걸 알면서도 통화 연결음을 듣고 싶어 집니다.


그리움은 참 이상한 감정입니다. 아픈데 놓고 싶지 않아요. 슬픈데 잊고 싶지 않습니다. 없는 사람을 마음속에 살려두는 일,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가슴에 간직하는 일. 그게 그리움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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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깨달았습니다.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지만,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라는 것을요. 우리는 그리운 사람을 끊임없이 마음속에 그립니다. 얼굴을, 목소리를, 함께했던 순간들을. 그렇게 그리고 또 그리다 보면 그 사람이 마음속에 살아 움직입니다.


맹교의 시에서 두 사람이 떨어뜨리는 눈물도 결국 그런 게 아닐까요.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운 사람을 마음에 그리는 시간들. 그 그림들이 모여서 눈물이 되고, 그 눈물이 모여서 연못이 되고, 그 연못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거예요.


강연장에서 만난 그분께 이런 이야기를 해드렸어야 했는데, 그때는 미처 생각이 닿지 못했습니다. 그리움이 깊어서 잠을 못 잔다는 건, 그만큼 사랑이 깊다는 뜻이라고. 그 그리움 속에서 돌아가신 남편이 아직도 살아계신 거라고. 마음속에서 만큼은 요.


누구나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맹교가 살던 천 년 전에도, 지금도, 아마 천 년 후에도 사람들은 그리워할 거예요. 각자의 자리에서 눈물을 떨어뜨리며, 마음속에 누군가를 그리며 살아갈 겁니다.


그러니 그리움이 깊다고 너무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그건 자연스러운 거니까요. 사랑했던 증거니까요. 마음에 그린 그 사람이, 오늘도 당신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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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