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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Jun 18. 2022

초라한 밥상에 배가 부르다

먹고사는 일

 당신은 왜 일(노동)을 하는가?라는 물음에 다양한 답이 나올 법도 한데 우리는 매 순간 아무 생각도 없이 자연스레 먹고사는 일을 이야기한다. '일하는 거?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거 아냐?'


 먹고사는 거, 생존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이 부질없어 보인다. 왠지 일의 대가만큼은 먹고사는 일보다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로 연결되어야 할 것 같은데 고작 먹고사는 것이 일의 대가라니. 애써 심신을 고단하게 만든 대가치곤 허무함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다른 이유를 찾아 헤매 봐도 결론이 마찬가지인 것 또한 우습다. 좀 더 거창한 이유를 든다고 자아실현을 얘기해 보지만 이것 역시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니 돌고 돌아도 일의 목적은 결국 먹고사는 일에 귀결됨을 확인한다. 매슬로우가 말한 인간 욕구가 마침내는 먹고사는 일이었고 그것을 해결해주는 매개는 일이었다. 


 그런데 가끔은 목적이 수단에 의해 희생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일을 했는데 일 때문에 먹고사는 것이 싫어지는 때가 그런 경우다. 일하고 집에 들어와 밥을 먹어야 할 때 가끔은 먹는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일까지는 하겠는데 진짜로 먹기 위해 다시 일을 해야 할 때가 그렇다. 시켜 먹을까? 기다리는 시간과 뒤처리가 더 귀찮다.


 '오늘 열심히 일하지 않았잖아, 간단히 먹어'

마음이 꾄다.

 '그렇네. 오늘은 열심히 일하지 않았지. 그럼 대충 먹어야지.'


 남편에게 마음을 얘기한다. 그러자 한다. 남편도 열심히 일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저녁은 간단하게 간장게장에 참기름을 두른 밥만을 먹기로 했다. 다른 반찬 아무것도 꺼내지 말고 딱 그거 한 가지만.


 간장게장을 꺼내 딱지를 떼고 청양고추와 양파를 썰어 섞은 후 식탁 위에 올렸다. 커다란 그릇이 식탁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였다. 웃음이 났다. 아무리 허물없는 사이라도 반찬 하나로는 민망한 식탁이다. 식사하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남편이 아스파라거스를 씻어 스테이크 시즈닝을 뿌리고 볶으니 근사한 고기 향이 난다. 아들이 고기를 굽나 의심할까 두렵다. 아스파라거스를 꺼낸 팬에 달걀 푼 물을 부어 스크램블도 만들었다. 달걀색이 얼룩덜룩 지저분하다. 그럼에도 맛은 좋다. 간장게장에 비벼 먹으면 뚝배기보다 나은 장맛이 날 것 같다. 간단하게 먹으려 했는데, 이제 커다란 그릇 두 개가 놓였다.


 밥을 차려 어머니와 아들을 부르고는 궁색한 변명을 했다. 그냥 간단히 먹으려고 다른 반찬은 꺼내지 않았다고. 아들의 간장게장이 질린다는 말에 반찬을 더 꺼냈다. 잘 익은 갓김치에 꽈리고추 멸치볶음까지. 평소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식탁이 되었다. 두 번을 달여 부어 비리지 않은 게장을 하루 걸러 먹었다. 간장게장이 밥도둑이란 말이 맞는 게 먹은 건 별 것 없는 것 같은데 밥이 자꾸 사라진다는 것이다. 다리 한두 번 쪽쪽 빨고, 국물에 밥 몇 번 쓱쓱 비벼먹다 보면 밥은 이미 사라진 후다. 대충 차린 밥상 앞에서 밥을 잘도 먹었다.


 설거지를 하면서 생각했다.

 '미쳤지. 오늘도 열심히 일한 척 흉내를 냈어.'

 잘 먹고 잘 살기

 왜 일을 하냐고?

 답이 많을 이유가 없었다. 일을 하면 이렇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니까 하는 거지.


 읽다 보니 오늘 글의 방점은 초라한 밥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배부르게 먹었다는 데 있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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