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것이 졌다가 피는 꽃처럼 계속 반복된다면 내가 원하는 길을 자식이 걸어가도록 강요할 수 있다. 이번 생은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아 봤으니 다음 생은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 봐, 라며 부모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며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란 게 그러질 못하지 않는가. 남을 부러워하기엔 각자의 삶이 너무도 소중하고, 가고 싶지 않은 길을 걷기엔 한 번뿐인 인생이 억울하게도 가엽다. 그러니 누가 뭐라든 각자의 삶을 살다 가는 게 맞다. 그것만이 정답이 없는 인생에서 조금이나마 해답에 가까워지는 길이다.
하지만 그렇게 선택한 길에서도 후회하는 일은 생길 수 있다. 스스로 선택했다 하여 모두가 성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선택 앞에서 쉽게 좌절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내 의지에 의한 것이라는 책임감과 후회조차 선택의 일부라 믿는 의무감 때문이다. 삶의 주인은 스스로를 책임질 줄도, 돌볼 줄도 아는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런데 선택 상황 앞에서 무너져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의 간섭으로 선택권을 잃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강력한 권력을 가진 권위자(부모)에게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의심받으며 선택의 상황 앞에서 한 발짝 물러서야 한다. 운이 좋아 자신의 선택이 권위자(부모)가 원하는 바와 일치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그들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방향으로 말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를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 있다. 꽁꽁 언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로 자식의 미래를 잡고 흔들려는 부모에게 한방을 날리는 책이다. 그림책이라 글밥이 적은 것도 마음에 드는데 그림까지 개성 폭발이다. 원인과 결과가 확실하고, 반전의 묘미가 뚜렷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지만 다시 읽어도 여전히 팔딱거리며 신선하다.
책의 제목은 <<심술쟁이 버럭영감>>으로 전래동화처럼 보이는 창작동화다. 강정연이 글을 쓰고, 김수현이 그림을 그렸다.
이야기는 구구봉이라 불리는 마을에서 시작된다. 구구봉이란 이름은 마을에 산봉우리가 99개나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에는 오랜 전부터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누군가 소원을 빌어 그 소리가 99개의 봉우리를 모두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다.
구구봉 마을에 버럭영감이라는 부자가 살았다. 버럭영감은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단 하나 집안 대대로 벼슬을 한 사람이 없어 그것이 아쉬운 사람이었다. 버럭영감은 그 아쉬움을 하나뿐인 아들을 통해 달래려 한다. 아들이 벼슬길에 올라 자신의 평생소원을 이뤄주길 바란 것이다. 하지만 버럭영감의 아들은 공부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자신은 목수가 되는 게 꿈이라나 뭐라나. 버럭영감으로선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꿈이었다. 아들이 그 일에 재능이 넘친다 해도 말이다. 그러니 공부가 싫은 아들은 결국 핑곗거리를 찾아내고야 만다. 자신이 공부를 못한 것은 마을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마을의 권력자인 버럭영감은 마을에서 들리는 소리를 없애기 시작한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노동요를 불러도, 아낙네들의 빨래터에서 수다를 떨어도 시끄럽다며 얼굴을 붉힌다. 아이들의 명랑한 웃음소리조차 용서할 수 없다. 심지어 부모가 죽어 곡소리를 내는 사람을 찾아가서도 울지 말라고 짜증을 부린다. 버럭영감에게 세상의 소리는 짜증스럽기만 하다. 그에게 소원이 하나 더 생겼다. 아들의 공부를 위해서는 세상의 소리가 사라져야 한다.
소리를 없애러 다니다 지친 버럭영감은 구구봉을 향해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외친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찼던지 구구봉의 모든 봉우리에 울렸다. 그리고 전설이 증명되었다. 세상의 소리가 사라진 것이다. 갑자기 고요해진 세상에 놀란 사람들은 땡그란 눈을 한 채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버럭 영감의 심술로 울려버린 구구봉. 소리가 사라진 마을에서 버럭영감과 그의 아들, 그리고 마을사람들은 어떤 일을 겪게 될까? 과연 버럭영감은 그토록 바라던 벼슬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심술쟁이 버럭영감을 읽고 자녀들의 진로와 직업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더하여 부모의 의견은 어디까지여야 하는지도 생각해 보자.
이 책은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이지만 문학작품(그림책)이 생각거리를 만들어 주고 질문을 이끈다는 점에서 단순히 초등 저학년용을 위한 책으로만 분류할 수 없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는 책으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