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 이후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집에 있는 내 방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었다. 주말마다 자고 가는 공간, 소중한 내 짐들을 보관해 주는 공간 정도였다. 우여곡절의 고등학교 3년이 지나고 졸업 후 내 방에 돌아왔을 때 나는 대대적인 방 정리를 시작했다. 이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공간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또한 무엇보다 주인 없는 방에 방치된 목적을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쌓여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작은 방 구석구석 여러 짐이 많이도 있었다. 벽걸이 옷걸이에는 옷과 가방을 비롯해 작은 인형도 걸려 있었고, 이제는 쓰지 않는 아주 오래된 스펀지밥 크로스백도 걸려 있었다. 바로 옆 책장은 더욱 빽빽했다. 책장 위의 공간과 맨 아래 칸에는 큰 상자들과 바구니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책장에는 책뿐만 아니라 작은 인형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전신 거울이 달린 기다란 서랍장도 위아래 할 것 없이 방치된 물건들로 가득했다. 역시나 이곳에도 작은 인형들부터 시작해 예쁜 유리병, 포장지, 어디선가 받았던 우비나 지압기 같은 것들이 연관성을 알 수 없게 어지러이 모여 있었다.
그래서 일단, 버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기능을 잃고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들은 버린다. 구석구석의 쓰레기들을 비롯해, 어딘가 고장이 나 수명을 다한 것, 너무 오래되어 두꺼운 먼지가 쌓이고 빛이 바래 닦아내도 사용이 불가능한 것들을 버렸다. 기숙사 소등시간 이후면 쓰던 작은 접이식 스탠드 램프. 불빛이 희미해져 램프의 기능을 하지 못해 버렸다. 오래된 스펀지밥 크로스백. 이제는 키 180을 훌쩍 넘기는 동생이 유아기에 쓰던 것으로 가방 안쪽에 동생의 이름이 적혀 있고 스펀지밥의 얼굴도 바래서 버렸다. 이후 물감이 딱딱하게 굳어서 열리지도 않는 팔레트, 페이지가 거의 삭아가는 두꺼운 영영사전 등을 과감하게 쓰레기봉투에 털썩털썩 넣었다.
다음은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다.
우비나 지압기 같은 물건들은 상태가 멀쩡하지만 내 서랍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신발장 안의 서랍으로 갔다. 포장지와 리본 같은 포장 용품, 색지 등은 그런 것들을 모아두는 상자에 그러모아 정리했다. 한동안 주인 없는 공간이었던 터라 이리저리 흘러 들어온 가족들의 물건도 각자의 방과 서랍으로 옮겼다. 자주 사용해 방 안에 있어야 하는 것과 부피가 크고 어쩌다 쓰는 것을 구분해 후자는 베란다 창고에 넣었다.
한차례 대량 버리기와 제자리 찾기로 방은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진짜는 이제부터였다.
딱 봐도 버릴만한 물건을 버리는 것은 쉬웠다. 애정과 미련이 없기 때문이다. 물건의 자리를 찾아주는 것 또한 물건의 위치만 바뀔 뿐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적 갈등이란 게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두 단계를 끝내고 남은 깨끗하고, 멀쩡하고, 애정과 집착이 가득한, 하지만 유용하게 쓰지는 않고 옛날부터 그저 한가득 안고만 있는 물건들. 진짜는 이제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