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고등학생 때는 조금 더 다양하게 물건을 샀다. 학용품, 필기도구, 팬시용품을 기본으로 깔고, 옷과 가방으로 점차 범위를 넓혀가며 본격적으로 구매했다.
주로 그런 물건을 샀다. 나를 돋보이게 해 줄 것만 같은 물건들.
그러니까 그런 '환상'을 샀다. 이 옷을 입으면, 이 가방을 메면, 이 펜을 쓰면 내가 더 멋져 보이고 더 괜찮은 사람 같아 보이고 야무져 보이지 않을까 하는.
고등학생 2학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멋진 편집샵을 방문했었다. 당시 막 알게 된 스투시 브랜드가 너무 힙하고 멋져서 스투시 옷이라면 뭐든 하나 사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옷이 필요한지가 아니라 어떤 브랜드라면 뭐든지 사겠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주객전도된 생각이지만. 그래서 마음에 쏙 드는 후드티가 아니라 단순히 등판에 스투시 로고가 크게 들어간 진한 파란색 후드티를 샀다.
근처를 돌다가 이번에는 아디다스 매장에 들어가서 양면 크롭 저지를 샀다. 요즘에는 모든 여성 옷이 크롭으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크롭 기장의 옷이 유행이지만 당시 나에게는 꽤 파격적인 옷이었고 게다가 양면의 한쪽은 호피와 달마시안 그 사이 흰색 패턴의 디자인이었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옷인지, 나에게 어울리는 옷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보기에 멋지고 예쁜 옷을 샀으니 당연하게도 그날 일본에서 야심차게 샀던 옷 두 벌은 몇 번 입은 기억도 없게 옷장 속에 파묻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진짜 내 물건을 사지 못했다. '나'에게 어울리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고 유명 브랜드, 인기가 많은 베스트 아이템, 왠지 독특하고 특이해 보이는 물건. 이런 식으로 물건을 샀다. 물론 그 나이대에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소비였을 수도 있지만, 그랬기 때문에 높은 확률로 그것들은 나와 잘 맞지 않았고 '내 물건'이 되지 못한 채 방 한편에서 깨끗하게 쌓여갔다.
물건은 죄가 없지만 그렇게 실패하여 가득한 구매 결과들을 보고 있으면 후회스럽고 괜히 찜찜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 확 정리해 버릴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그것들을 사려고 내가 얼마나 고민하고 부지런히 움직였는지, 작은 용돈을 모아 얼마를 들여 샀던 것인지를 생각하면 그 시간과 돈이 아까워서 조금 더 품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중고거래를 떠올리고 시작하게 되었다. 필기구, 노트, 파일, 인형, 가방, 티셔츠부터 겉옷까지. 구매했던 원금 회수까지는 아니어도 당시 내 실수와 내 노력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