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구매는 고등학생

by 수요일

내가 처음으로 새것이 아닌 물건을 사 본 경험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한창 쇼미더머니 5와 6가 유행했다. 친구의 추천으로 힙합이라는 새로운 노래 장르에 눈을 뜨고 딘, 페노메코, DPR LIVE, 팔로알토 등 멋진 가수들을 알게 되었다. 빠르고 깊게 빠져드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 당시 원래 크고 넉넉한 사이즈의 겉옷을 주로 입었었는데 힙합에 빠져 더욱 스포티하고 브랜드 로고가 큼직하게 박힌 집업, 바람막이, 스카잔, 항공점퍼 등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던 중 같은 반 남자아이가 흔하지 않은 디자인의 예쁜 겉옷을 입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이였는데 옷을 어디에서 샀는지 물었고, 구체적인 가게 몇 개도 추천받았다. 고등학교를 본가와 매우 먼 곳으로 다녀 3년 간 꼼짝없이 기숙사 생활을 했었다. 귀가하던 금요일,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긴 여정이었지만 일주일의 빨래와 짐이 가득 담긴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추천받은 한 빈티지 가게를 찾았다.


가게의 이름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인적이 별로 없는 거리 한복판에 작게 위치해 있었고 날이 참 흐렸었다. 들어가니 가게 중앙에는 난로가 하나 서 있었고 가게 벽과 행거에 옷들이 빽빽하게 걸려 있었다. 느즈막하고 애매한 저녁 시간, 손님은 나 혼자였다. 어색했지만 예쁜 옷을 '건져 보고' 싶었던 나는 캐리어를 구석에 세워 두고 옆으로 잘 치워지지도 않게 가득 걸려 있는 옷들을 열심히 뒤적였다.


이게 예쁜 건가, 이게 괜찮은 건가. 그 친구는 잘만 골랐던데. 어둡고 조용한 가게에서 쭈뼛거렸지만 이것저것 골라보고 입어보며 내 옷을 찾았다.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이 퓨마 바람막이였다. 몸통 부분은 검은색이었고 팔은 아이보리에 검정 빨강 검정 선이 길게 들어가 있었다. 딱 봐도 올드하고 빈티지스러운 디자인이었고 등판에는 원하던 퓨마 로고가 큼직하게 박혀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전체적으로 낡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자세히 보면 소매 부분이 터져 있고 팔에는 실밥이 풀려 있는 곳도 있었다. 솔직히 상태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 퓨마 바람막이의 기억하는 가격은 4만 원이었다. 분명한 것은 용돈 받아 쓰는 고등학생에게 작은 돈은 아니었던 가격. 하지만 여기까지 왔고, 뭐라도 건져 가고 싶고, 집에는 얼른 돌아가고 싶고... 가격 흥정 한 번 하지 않고 결국 그걸 샀다.


집에 도착해 엄마에게 그 옷을 보여 줬을 때, 엄마는 이렇게 소매가 터지고 실밥이 풀린 남이 입던 옷을 4만 원이나 주고 사 오느라 이렇게 늦었냐며 여러모로 기막혀하셨다. 하지만 멀리서 이미 사 온 옷을 어떻게 할 수는 없고 그저 철없는 딸의 소매 터진 옷을 꿰매 주셨다.


하지만 다음 주에 그 옷을 입고 학교에 갔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좋았다. 예쁘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고 몇 번은 빌려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긴 일이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샀던 퓨마 바람막이는 이후 내내 잘 입었고 대학교 입학 후 1학년 때 잠깐 입다가 처분하였다.


아마 그런 옷을 사는 일은 다시 없을 것 같은데, 어쨌든 즐거운 추억과 기억이었다는 것은 인정이다. 어리숙한 고등학생의 웃기는 일화였다는 것 또한 인정.

매거진의 이전글첫 중고판매는 중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