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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먹은 빈센트 Jan 13. 2022

냥집간체기

01. 고양이와 웃다.

 인간이 고양이 사연까지 알 수 없겠으나 두 마리 모두 길에서 태어나 어미를 잃은 소위 길냥이 출신이니 이 험한 세상, 그것도 이 첩첩산중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삶이 평탄했을리는 만무하다.

 더위가 막 시작될 무렵 고등어 무늬를 연상케 하는 한 녀석이 길 건너 식당에 구조되었다. 식당주인 내외는 연배는 많으시나 건강하고 활동적인 분들로 개와 고양이를 여럿 키워봤다 하시는 분들이기에 어린 고양이의 적응에 별 문제는 없어보였으나 많은 시골 어르신들이 그러하듯 동물을 대함이 지나치게 담백하여 남은 걸로 먹이고 밖에서 재우며 없으면 걱정하되 있으면 딱히 신경쓰지 않는 타입이라 고양이 아니라 여느 동물이라도 마냥 편하게 지내진 못할 것이란 작은 우려가 마음 한구석 스쳐갔다.

 보호 측면에서 목줄을 하고 지내게 된 어린 짐승은 고양이 특유의 움직임에 과한 제동을 걸어대는 그 물건이 불편했는지 며칠을 꺅꺅대며 울어대더니 어느 순간 그 좁고 갑갑한 삶에 적응한 듯 가끔 목줄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기이한 동작을 시도할 뿐 별다른 불편함을 표현하지 않았다.

 고양이 미모따위 알 리 없으나 주변을 오가는 이들 말로는 꽤나 미묘(美猫)라 했다.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나 지나는 주민들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그래봐야 스치는 연(緣)인지라 고양이용 간식은 고사하고 빵부스러기 하나 던져주는 법도 없이 그저 몇 번 쓰다듬거나 들었다놨다 하곤 아무일 없었다는 듯 돌아서 버릴 뿐이건만, 묶여지내는 입장에서 웃으며 다가오는 존재들이 신기하고 반가웠을 그 작은 짐승은 꼬리를 세우며 반색하다가도 인간들의 빠른 돌아섬에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관계엔 책임이 동반돼야 한다!” 며 겉멋치든 말을 내뱉곤 하던 나는 실상 그리 살지도 못하면서도 남보는 데 체면에 흠가지 않는 만큼은 본인이 한 말을 지키고자 애쓰는 타입이다. 인생 피곤하게 산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어쨌건 그날그날은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고 자부하며 살아간다. 이런 면모를 고양이에게도 들이밀며 ‘돌봐줄 책임감이 없다면 함부로 쓰다듬거나 먹이를 줘선 안 된다’는 말을 내뱉곤 지키고자 했고 이 태도는 무더운 계절을 지나 낙엽이 떨어질 무렵이 될 때까지 무던히(?)도 지켜졌다.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인간은 인간대로 버텨낼만큼의 불편함을 감수한 채 시간을 보내던 중 이번엔 ‘갈치의 무늬’를 연상케 하는 어린 길고양이가 식당에 찾아들었다. 체구는 고등어 무늬보다 작았으나 길에서 ‘살아남은’ 고양이답게 날쌔고 경계심 많던 갈치 무늬는 그 반대의 삶 속에서 살아온 고등어 무늬가 무덤덤하게 자신의 밥그릇을 내어준 이후 자연스레 그 옆자리에 자리잡았고 식당 주인내외는 새로운 고양이에겐 목줄을 이전 고양이에겐 자유를 선물(?)하며 녀석을 새 식구로 받아들였다.


 인간의 구역에서 쉬이 적응하기 어려우리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갈치 무늬는 자신의 밥그릇에 가득 담긴 짬밥 한덩어리에 넘어가 금새 자신의 몸에 닿는 손길까지 받아들였다. 허나 목줄만큼은 견딜 수 없었던지 시도때도 없이 비명같은 울음소리를 토해내는 통에 주인 내외가 진저리치며 풀어주어 이내 자유의 몸이 되었다. 목줄이 없어도 갈치 무늬는 물론 (신입 덕분에 생애 첫 자유를 맛본) 고등어 무늬조차도 딱히 어딘가로 도망찰 기색은 없어보였다. 어느새 두 개가 된 밥그릇에 밥이 쏟아질 때를 제외하곤 길 건너 내가 일하는 건물과 자신의 집 식당 주변만 오가며 자신들의 영역을 만들어 갔을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인간들과의 합의따위 없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늘어놓고 보니 기묘한 일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목줄에 묶여 개마냥 지내온 고등어 무늬와 거친 환경에서 살아남아 성정마저 거칠어졌을 법한 길고양이 출신 갈치 무늬 간의 이토록 어영부영 자연스러워진 조합이라니, 내가 아는 대로 흐르지만은 않는 것이 세상이다, 라는 것을 내 신발보다도 작은 존재들에게 배운 셈이다.

 그쯤되니 냉정한 관계니 책임감이니 하는 쉰소리 접어두고 까짓거 한번쯤 쓰다듬는 것도 나쁘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고집을 지키던 배터리’도 슬슬 닳아가는 것 같다 싶으니 새삼 고양이들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살짝 몽글해졌다.

 그러던 차 겨울을 예고하는 차가움이 고양이와 인간의 공간을 파고 들었고 몇몇의 시도와 제지가 오가며 인간 외 어떤 생물도 실내에는 들일 생각이 없던 주인 내외의 단호함을 알게된 두 고양이는 언젠가부터 우리 건물에서 지내는 시간을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제때 주는 밥만큼은 자기 집에서 먹되 햇살을 즐기고 격투기를 하듯 둘이 뒤엉키는 놀이는 숫제 우리 건물에서 시행된다. 나의 공간은 분명 일터이고 생각이 다른 동료도 있기에 짐승에게 일정 공간 이상은 내어줄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녀석들이 처음 겪을 잔혹한 겨울이 염려되는 것 또한 어찌할 수 없는지라 박스에 옷가지 몇 개 넣고 로비 입구에 두는 정도만 해두었더니 엊그제부터 작은 짐승 두 마리가 마치 태극모양처럼 엉킨 채로 그곳에서 밤을 보내기 시작했다. 우연히 지나다 그 모습을 보니 좀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소리에 잠이 깨어 멍한 눈으로 올려다 보는 녀석들의 머리를 살짝 건드리듯 쓰다듬으니 감촉이 참 부드럽다. 이래서 고양이를 쓰다듬는구나 싶었다.


 나름의 방식으로 애정하며 매일 같은 시간에 밥을 주는 주인이 있고 내 책임감이란 건 아직 새싹 수준일 뿐이기에 유튜브의 흔한 소재인 ‘어느날 문득 집사가 되었느니 어쩌니’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녀석들은 여전히 잠깐 쓰다듬곤 돌아서는 인간들의 뒷모습을 한참 쳐다본다. 어쩌면 나도 그런 무리에 합류한 것일 뿐인지 모르겠다. 뭐, 일단은 이렇게 살아가는 거다. 두 계절 이전의 내가 지금의 나로 변해있듯 상황은 어떻게든 변해간다. 가끔씩 상자가 멀쩡한지 들여다보고 주변에 헌 옷가지가 있는지도 살펴볼 것이며 언젠가 다이소에 갈 일이 있으면 저렴한 고양이 간식 몇 개 정도 집어들어야겠다. 일단은 딱 그 정도로 이 변화에 적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어느 늦은밤 밀린 업무를 하다가 잠깐 쉬러 로비쪽에 가보니 또다시 고등어와 갈치 컬로의 태극무늬가 만들어져 있다. 이 말도 안 되는 비유가 웃겨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자느라 눈을 감은 고양이들 얼굴이 마치 웃는 것처럼 보인다. 그날밤은 고양이들과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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