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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돌 Sep 28. 2020

경단모

주말은 여자의 집에 가는 날이다. 마트에 들러 철 이른 수박 한 통과 참외를 샀다. 서두르면 교외로 드라이브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라디오에선 진행자의 달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칸 영화제에서 우리나라 영화가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단다. 제목은 ‘기생충’. 몇 마디 설명이 이어졌지만 제대로 듣진 못했다. 이태 전 생경한 느낌이 뱃속을 훑고 지나간 탓이다. 장이 꼬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여자는 미동이 없었다. 다가가자 돋보기를 걸친 콧잔등이 보였다. 손가락 마디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기 어디에 머리카락이 꼽힌 것 같은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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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꽤 오랫동안 동네에서 미장원을 했다. 내가 막 뒤집기를 시작할 때부터 내 딸이 뒤집기를 할 때까지. 그래서 우리 가족의 옷이며 속옷, 양말엔 늘 머리카락이 꽂혀있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짧은 털들은 씨실과 날실 사이에 숨어 있다가 브래지어 끈이나 허리께처럼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예사롭게 발견됐다. 집에서 가장 눈이 밝고 손가락이 가는 나는 자주 엄마의 살갗을 파고든 머리카락을 떼어줬다. 그러다 고등학생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으니 집을 나온 지 17년이 지난 셈이다. 그동안 엄마는 어떻게 머리카락을 뺐을까. 그게, 17년 만에 궁금해졌다.
 
여느 촌 동네 어른이 그렇듯 엄마는 내가 공무원이 되길 바랐다. 그리고 난 여느 자식처럼 부모 말을 듣지 않았다. 큰소릴 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계약직을 전전하다 적지 않은 나이로 겨우 고향 근처 주류 회사에 들어갔다. 연봉과 처우가 아쉬웠지만, 나중에 보니 그게 내가 그 자리를 꿰찬 이유 같았다.
 
겨우 일이 손에 익었을 때 덜컥 임신이 됐다. 꿈에서 매일 다른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더는 남은 해고 사유를 상상하기 어렵게 됐을 때 아이가 나왔다. 몸이 풀리기 전이었지만 서둘러 복직했다. 정말로 경단녀가 돼선 안 됐다. 젖먹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출근하던 날, 세상은 귀순한 북한 병사 얘기로 시끄러웠다. 뉴스 앵커는 그의 배에서 27센티미터에 달하는 기생충이 나왔다고 했다. 불현듯 모자이크 너머 그 희고 긴 것이 아이가 빠져나간 자리에서 꿈틀대는 것 같았다.
 
엄마가 내 딸의 엄마가 되어준 덕에 사표를 면했다. 승진에서 밀려나고 허드렛일이 맡겨졌지만, 아무렴, 월급이 나오는 게 중요했다. 회사에서 엄마와 딸의 시간을 자주 상상했다. 딸아이는 포대기에 싸여 미장원 소파에서 칭얼댔겠지. 그럼 바쁜 엄마를 대신해 손님들이 능숙하게 달랬을 테다. 그러나 엄마는 내가 아기였을 때보다 늙고 약했다. 그래서 스스로 경력을 끊었다. 30여 년 역사를 뒤로하고 헤어매직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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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헤어매직 원장이 아닌 여자의 손을 건네받았다. 염색약에 절어 나무껍데기 같은 손. 거기에 꽂혔을 무수한 머리카락을 생각하자 자꾸만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중 가장 깊숙이 파고들어 자그마치 34년 동안 꽂혀있는 머리카락은, 나일지 몰랐다.
 
경단모. 딸의 경력단절을 막으려고 부엌에 들어가는 여자를 그렇게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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