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외면한 그림에는 걸작이 탄생한다.
이상과 현실
대세와 소신
부와 가난
결국 가난한 예술가냐 vs 타협하는 화가냐의 문제다.
인간과 자연을 통해 그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그는 왜 농부의 그림을 그려야만 했는가?
일하는 농부에게서 발견한 뿌리
이도저도 아닌 주류를 위한 변화, 사실주의라 말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습니다.
답은 그것이었다. 나의 길을 계속 가다보면 그것이 주류가 된다는 사실.
브런치는 왜 내글을 조명하지 않는가?
구독자들은 왜 내글에 관심이 없는가?
작가님 글에서 조금은 의연하고 단단해진 모습이 느껴져 저는 좋습니다. 거절 잘 걷어차내셨습니다! 애쓰셨어요~ ^^ 장 프랑수아 밀레도 국가와 권력의 상징을 버리고 누구도 그리지 않던 '농민'을 그렸습니다. 그 뒤를 이은 귀스타브 쿠르베도 고전주의, 낭만주의에 사실주의 현실로 정면 도전했죠. '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다' 전 작가님의 <저는 은행 경비원입니다>가 현대판 자본주의에 도전한 민주주의라 생각합니다. 저는요~ 작가님의 텀블벅과정을 보면서 쿠사마 야요이 설치미술작가가 떠올랐어요. 미술계에선 해마다 비엔나 전시회를 가져요. 전 세계 초대받은 예술가들만이 작품을 걸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지죠. 절대 왕정주의 시대 살롱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쿠사마 야요이는 초대받지도 않았는데 비엔나 전시회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합니다. 그 초대받지 않은 전시를 통해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미술가 반열에 이름을 올립니다. 밀레와 쿠르베에 이어 쿠사마 야요이가 시대가 원하는 그림, 살롱을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린 것이 현세에 큰 의미가 있는 것처럼 히읗작가님의 작품도 그러하리라 생각됩니다. 시대가 원하는 주류가 아닌 시대가 거부하는 비주류 속에 항상 걸작은 탄생하는 법이니까요. 그 거절을 당당히 거절할 용기, 시대를 비판한 작품 그것만으로도 이미 그대는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겁니다. 후세에 길이 남을 그 길을 말이죠. 충분히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저에겐 충분히 위대한 밀레십니다!
위대한 밀레 작가님들이여,
우리는 우리의 글을 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