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비 온 후 자연은 아름답다

[제주도 한달살기 시즌1] 태풍 쿵레이를 집어삼킨 울음소리

by 일상라빛

*2018년 작가의 제주도 한달살기 이야기를 시즌1로 기획하였습니다. 여행안내 책자에나 있을 법한 맛집 정보와 관광지 사진이 없습니다. 철저히 제주도민의 마음으로 살았고 그 시선으로 느낀 것들을 담았습니다.

*등장인물: 알콩(반려자) 달콩(작가) 새콩(똥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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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축제가 열린 지 삼일도 안돼 태풍 소식이 들렸다. 아까운 메밀꽃들이 다 쓰러지면 어쩌나 생각이 들었다. 내 눈과 귀를 비롯해 손과 발이 모두 닿아 있는 흙, 바람, 땅, 하늘, 바다, 빗물 잔디 나무들이 있기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겠지. 이미 이곳에 마음이 빠져버렸다. 창문으로 거센 비바람이 세차게 부딪힌다. 무섭다 보다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이었다. 자연의 이치가 언제나 맑고 밝을 수는 없다. 하나의 비바람도 때로는 견디며 지나가도록 인내하는 것이다. 자연 앞에 인간은 한 낮 작은 점이다. 맞서기보다는 순응하고 자세를 낮추어 경외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태풍 덕분에 몸과 마음 하루 쉬어가는 감사한 마음까지도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지난 새벽 제주도에 상륙한 태풍 ‘쿵레이’는 어마 무시한 강풍을 몰고 왔다. 저녁부터 거세진 비바람에 알콩과 불침번을 서야 하나 의논할 정도였다. 타지에서 처음 접한 태풍의 강도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작게 만들었다. 뒷집 강아지 두 마리는 오롯이 그 비를 맞고 있었고, 무서운지 낑낑거리며 안쓰러운 마음을 자극했다. 새콩도 세찬 바람이 창문을 마구 두드릴 때면 놀다가도 엄마에게로 황급히 뛰어왔다. 흠칫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점점 거세지는 바람만큼이나 알콩 달콩 우리의 눈꺼풀은 점점 내려앉고 있었다. 간 밤 자다 깨다를 반복한 새콩이 덕분에 잠을 설쳤기 때문이었다. 쿵레이 만큼이나 컨디션도 쿵 내려앉았는데, 그보다 더한 태풍과 싸워야 했다. 칭얼대며 우는 강도가 쿵레이 저리 가라였다. 잠자리에 쉽사리 들지 않고 안방과 거실 침대를 계속 오가며 엄마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한 지 이미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목욕을 시킨 것을 무색하게 할 만큼 몸은 이미 땀범벅이었고, 엄마가 눈을 붙이고 먼저 잘라치면 울어대기 시작했다. 이렇게 반복하기를 수도 없이. 거실 침대로 나와 '이번이 마지막이다' 백 번째 외치며 반짝반짝 작은 별 노래까지 낮게 불러주며 친절하게 토닥였다. 그런데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자며 손가락을 가리키는데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태풍은 우리 마음속에도 찾아왔고, 새콩이 울음소리는 쿵레이를 집어삼켰다. 엄마는 여기서 잘 테니 들어가서 아빠랑 자라며 버럭 화를 내고 누웠고, 급기야 아빠까지 호통을 치는 바람에 난 결국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새콩은 오갈 곳 없는 신세로 알콩과 달콩 사이에서 서러운 눈물 콧물을 토해내며 꺽꺽거리다 지쳐서 결국에야 잠이 들었다.


신이시여.

드디어 고요가 찾아온 것인가?


그렇게 시달리다 잠을 청해 보려는데 이 이놈의 바람이 안방에서는 더욱 크게 들리는 것이 아닌가?! 아… 잠이 스르륵 들려는 찰나마다 순간 집채가 날아가는 바람소리에 번번이 램수면에 들지 못하고 밤새 몸을 뒤척여야 했다. 들썩이는 멘털을 부여잡아야 했다. 해년마다 뉴스를 통해 듣는 기상특보가 현타로 찾아온 순간이었다. 무서움과 공포를 넘어 이젠 내가 고질라가 되어 쿵레이 녀석을 무찌를 판이었다. 역대급 태풍에 숙소 사장님도 별채에서 대기 중인지 불이 켜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어디 하나 깨지고 부서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며칠 전 산책하며 본 말들이 꽥꽥 거리며 날아간다 해도 말이다.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 집이 날아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거실에 있는 휴대폰과 이어폰을 챙겨서 네** 뮤직을 틀었다. 잠을 청했다. 그럼에도 강풍은 보란 듯이 내 귀속을 후벼 파고 들어왔다. 강력한 놈이었다. 집이 날아가도 좋으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스르륵 잤으면 원이 없었다. 일본의 쓰나미 지진 당시의 한 일화가 떠올랐다.


대피소식이 전해지고 아수라장이 된 현장. 한 노모가 아들에게 빨리 나오라고 소리쳤다. 아들은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고 꿈쩍하지 않았다. 쓰나미가 코 앞까지 몰려오는 상황에 노모는 자신이라도 급하게 대피장소로 달려갔다. 몇 시간 후… 노모가 있던 학교 운동장 앞으로 집채 하나가 떠내려왔다. 그 안엔 노모의 아들이 있었다. 거대한 쓰나미는 아들을 노모 곁으로 안전하게 옮겨주었다.



어쩌면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할 때가 있다. 제발... 날아가거든 메밀꽃 활짝 핀 그곳으로 옮겨다오... 상상과 함께 눈을 감았다.


‘쿵!’

'응... 도착..한 건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눈을 떴다.

“새콩이, 이리 오세요”


'아.., 아침이구나.'

또 사고를 쳤나보다. 현실로 돌아왔다. 태풍은 언제 그랬냐는 듯 쨍한 햇볕을 선보이며 아침을 밝혔다. 허벅지만 하던 빗줄기는 가느다란 보슬비로 바뀌어 있었다. ‘이런 날씨가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던데…’ 속으로 생각하는 찰나의 순간 “날이 참 희한하네” 알콩이 바깥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심전심.


새콩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엄마~ 맘마!”

“어… 그래… 엄마 얼굴에 맘마라고 쓰여있지요”


밥부터 먹자! 태풍은 그렇게 우리에게 왔다가 갔다. 역대 급 스케일을 자랑하며 착륙했다가 아무 일 없는 듯 지나가버렸다.


“우체통이 날아갔어!”

남편이 놀라 말했다. 창문을 내다보니 집 앞 빨간 우체통이 힘없이 꺾여 바닥에 머리를 콕 박고 있었다. 2층 테라스의 의자가 날아가지는 안을까 밤 사이 남몰래 걱정을 했었는데 우체통만 강타했나 보다. 겨우 우체통 하나였다. 뉴스에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10월에 태풍이 불었다며 10월에 태풍이 올 확률이 높아질 전망으로 내다보았다. 어쨌든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외출을 가는 차 안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늘이 너무 예뻤다. 가장 예쁜 색감의 하늘색 수채화를 뿌린 듯 깨끗한 구름들과 어울려 사진기를 꺼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저 멀리 보이는 한라산은 새 하얀 구름들로 둘러 쌓여 있었다.


멋있다...

‘비 온 후 맑음’ 이란 이럴 때 쓰는 전문용어지. 그렇게 밤 새 울어대던 바람소리가 아침에 잦아들고 햇빛과 함께 맑은 공기 하늘 바람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제주에 온 지 2주. 자연의 흐름과 이치가 조금씩 이해되고 있었다.


비 온 후 자연은 가장 아름답다.
그치지 않을 것 같은 비바람과 강풍은 흔적은 남기지만 언젠가 지나간다. 비 온 후 땅이 굳듯 비록 비가 오는 그 시점에는 시련과 상처가 되어도 반드시 필요한 빗줄기였다. 딸의 기분은 오늘 매우 맑음이었다.




2018년 10월 6일

태풍 쿵레이가 남기고 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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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클립에서 작가의 목소리로 직접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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