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디 Jan 01. 2024

집짓기 시작, 1주 차

매일 좋은 집

공사명 : 망원동 제2종근린생활시설, 단독주택

착공허가 : 2023.10.26. 10:39:11

착공허가 완료 (국토부, 건축행정시스템 세움터)


드디어 착공허가가 완료되었다. 설계를 시작한 지 8개월, 철거를 마무리하고도 2개월이 다되어서. 폭염에 건물을 뜯어내면서 더위를 탓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서늘해진 아침 공기에 마음까지 무거워지는 때가 되었다. 있던 집을 안전하게 허물고 어떻게 집을 지을지 설계도면을 내면 될 거라 생각한 절차는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모든 신고와 허가는 해당구청 건축과에서 하게 되는데, 신축 건수가 많은 지역이기도 하고 9월부터 추석명절로 연휴가 길어지면서 착공허가까지 족히 한 달은 더 걸린 거 같다. 그동안 매일 아침 날씨를 확인하며 전전긍긍.


공사 전까지 필요한 절차

철거신고 > 철거허가 > 철거확인 > 대지측량(LX), 인접건물조사(업체), 굴토심조사(업체) > 건축신고 > 건축허가 > 굴토심의 (대지 컨디션) > 결과확인 > 착공신고 > 착공허가

갑자기 올라버린 건축비에 '이게 잘하는 일이 맞나' 몇 번을 자문했는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달까...

(설계와 시공사 선정과정은 각각 하나의 에픽이라 따로 쓸 예정인데, 한 마디로 말하자면 설계는 판타지, 시공사 선정은 호러, 자금마련은 다큐...)


자, 이제 시작!

사전준비

2023. 10. 24. 한전에 공사현장의 임시전기 신청 및 보증금 납부 (45만원 / 10kw)

임시계량기 설치 공사비 납부 (3-4일 후 설치, 167,370원)


1일 차 2023년 10월 30일

1. 토공사. 15톤 덤프 5대 장비자리 평탄화 작업용 흙반입
2. 전기.설비 업체 현장 시작 전 미팅
3. 경사계 및 지내력 업체 현장방문

명일

1. 철근반입. 장비투입 지반평탄화

토공사. 기존건물 미철거된 기초 바닥철거 오거장비 자리 평탄화 작업용.

2.CIP용 철근. 시멘트 자재반입


오거(auger) 장비는 지반을 뚫는 스크루 같은 걸 말한다. 대지 깊숙이 철근을 심는 작업(CIP)을 위해 타공이 필요하고, 땅을 파려면 대지가 지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지하층이 파져 있던 대지를 다시 메우고 작업 후 다시 파낸다고 한다.


근처 공사장에서 흙을 가져올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 CIP 후에 다시 파낼 것이므로.
주변건물 계측기 설치 (건물 간 이격이 좁고 오래된 주택이 많은 서울에선 필수)

레퍼런스를 보면서 공간을 상상하고, 도면 위에 아이디어를 보태던 시간은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침 일찍 예정대로 시작한 공사장비의 소음에 잠을 깼다. 시공이 시작되니 모든 것이 현실이네. '이렇게 작은 땅에 이렇게 큰 비용을 들여서 잘하는 건가?'라는 걱정이 엄습한다. 다 지어지고 난 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는 건 아닌 지 두렵기까지 하다. 너무 작으면?, 계단이 너무 많으면?, 중간에 자금이 경색되면?... 머 이런 걱정이다. 몇 달 후, 기우였음을 안도하며 기쁘기만 할까?

코 앞에 닥칠 추운 날씨도 걱정, 대지경계까지 바짝 지어진 이웃집의 민원도 걱정...


도면이 몇 번 변경되면서 뒷집과의 거리가 더 멀어진 걸 놓쳤다. 당초 간격으로 좀 더 붙일 수 없을지 빨리 물어봐야겠다. 3층 거실과 2, 4층 방의 크기를 평수로 전환해서 가늠해 보고 현장에서 거리를 재보기도 했다. 한 층이 16평 정도 되는 듯하다. 작은 집이다.

건물선에 따라 CIP공사를 한다고 하니 이게 끝나면 틀은 이제 바꿀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어쨌든, 시작이다.


가까이 있는 건물은 추후 발생할지 모를 민원을 대비하여 인접건물 조사를 해두었고, 공사 전 주변 건물 모두에 계측기를 달아 공사로 인한 피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2일 차 2023년 10월 31일

1. 토공사. 기존건물 미철거된 기초 바닥철거 오거장비자리 평탄화 작업용.
2. CIP용 철근., 시멘트 자재반입

명일 : 오거장비투입 CIP시작 (CIP용 기둥철근 가공조립,  내일부터 오거 천공시작 예정)


CIP (Cast-in-place Pile) 흙막이 공사(기초공사)로 건물 외곽을 따라 대지에 구멍을 깊게 뚫고 철근과 콘크리트를 주입하는 공사. 설계사의 설명으로는 흙막이 공사 중 소음이 적은 형태라고 한다. 구멍은 큰 것과 작은 것이 섞여서 건물선을 따라 벽체를 만들고 중간중간 H빔이 들어간다. (2주 차에 사진이 있다)

CIP 공사도면
철거시 이웃건물에 영향을 덜주기 위해 남겨두었던 잔해를 조심조심 철거하고 CIP 자재 반입

오늘도 공사장에서 나는 소리에 눈을 떴다. 요 며칠은 새벽에 잠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일찍 일어나게 된다. 오늘은 퇴근하고 나니 자재가 잔뜩 쌓여있고 펜스가 쳐진 게 이제 본격적인 공사가 실감이 난다. CIP 기둥에 쓰일 철근이 파이프처럼 만들어져 있다, 내일부터는 바닥을 뚫고 7m 깊이로 기둥을 심기 시작한다. 소음이 꽤 있겠다. 은행대출은 예정대로 잘 나오는지 내일 다시 한번 점검해야겠다. 은행이 어떻게 이렇게 연락이 없지? 거의 폰뱅킹 수준이고, 내가 항상 먼저 전화를 해서 물어봐야 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

설계소장님과 통화해서 옆집과의 간격을 조정할 수 있는지 문의하니 건물 전체를 약간 미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대지가 작다 보니 지하로 지나다닐 배관들을 잡기가 어렵고 작업공간도 협소한 게 문제인 모양이다. 요청한 대로 도면을 살펴보겠다고 한다. 약 300mm가량 조정하니 당초 잡았던 폭이다. CIP 기둥들이 건물벽을 따라 죽 꽂힌다고 생각하니 불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빨리 반영이 되어 다행이다.

작은 집은 10cm도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된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그게 5cm 이든, 10cm 든 최대한 확보해야 마음이 놓인다. 설계소장님이 내 걱정을 잘 이해해 주셔서, 또 현장에서 잘 반영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


3일 차 2023년 11월 01일

1. 토공사. 흙막이 시작 오거장비 + 굴삭기. 천공 후 시멘트+잡석밀크 주입
2. 안전. 기술지도업체 현장방문

명일 : 흙막이 CIP

직접 보지 못했지만, 휘어진 철근에 직선 철근을 넣어서 CIP용 기둥(Pile)을 직접 만드신 듯
대지에 구멍을 뚫는 오거장비

일이 진행된다. 조금씩 설레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은행에 연락해서 착공허가를 받았고 공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잘 처리되었다 하고, 공사비 발생/지급시점을 알려주면 때맞춰 시공사 계좌로 입금해준다고 한다.


4일 차 2023년 11월 02일 (주간싱크업)

1. 토공사. 흙막이 이틀째
오거장비+굴삭기. 천공 후 시멘트+잡석밀크주입 어제 84공 중 10공 작업
2. 지내력* 테스트 (*지반이 건물의 하중을 견디는 능력)
[이슈] 이웃민원. 현재는 참을 수 있을 정도라 하는데 향후 걱정됨.

명일 : 흙막이 CIP


CIP공사를 시작하니 소음과 진동이 있다. 옆집에서 힘드신지 현장에 민원을 넣은 모양이다. 동네분들이라 좋게 얘기는 하고 있지만, 얼마나 참으실지 알 수는 없다.

다행히 날씨가 따뜻하다. 올 겨울은 덜 추우려나;;; 가을이 기-일-게 지속되면 좋겠다.

첫 번째 주간미팅을 하고, 창호별 형태를 점검했다. 대부분은 그대로 유지하고 Turn & Tilt 창과 프로젝트 창, 추가적인 divide가 필요하진 않은 지 위주로 보았다. 공간 속에서 일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가정하고, 평면, 입면도를 통해 창의 위치와 개폐형태를 골랐다. 차주에 근처에 있는 이건창호 쇼룸을 가보기로 했다.


5일 차 2023년 11월 03일

1. 토공사. 흙막이 3일째
오거장비+굴삭기. 천공 후 시멘트+잡석밀크주입 전일 작업량 84공 중 21공 작업
금일 15공 해서 10+11+15 해서 36공 시공완료
2. 자재반입. 시멘트. 골재. 지주 H-BEAM
민원발생 :
공사현장의 옆집으로부터 소음에 대한 피해보상을 시공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지 질문이 들어옴. 철거 및 공사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담장과 주차장, 출입문에 대한 대응계획을 확인하면서 약간의 갈등.
감리 소장님 :
CIP 토목작업은 다음 주 중에 비가 안 온다면 금요일엔  완료될 예정이라, 큰 작업차량 소음영향은 다음 주말까지로 예상. 안전 등 금주처럼 조심히 공사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예상.
시공사 대표님 :
기초공사가 끝나면, 약 9주 동안 1주 1회씩 하루 약 2시간 정도의 콘크리트 타설로 인한 소음이 발생한다. 오후 1시-3시 사이 정해진 시간에 진행하려고 하고 두 달가량이면 잠잠해질 것.

명일 : 토(민원대비). 일요일 휴일 / 월요일 흙막이

9m 가까이 되는 빔이 건물벽을 따라 심겨졌다. (일부는 양생 후 뽑아서 제거)

제법 공사장 느낌이 든다. 작은 땅 위에 가득 찬 포클레인을 보니 헛웃음이 난다. 옆집에서 드디어(?) 현장 민원이 들어왔다. 이제 고작 5일째인 걸…

철거와 공사하면서 부서진 문과 담장, 주차장까지 옆집 입장에서는 마음에 걸릴 수 있겠다. 소음과 진동도 가장 가까이서 듣게 되고 종일 건물에 있다 보니 조심스럽다. 친분이 있는 분이라 직접 만나서 얘기해 보기로.


주말 2023년 11월 06일

첫 주말(토요일)은 공사를 쉬기로 했다. 휴일인 분들이 민원을 재기할까 우려가 되서이다. 좋은 날씨였는데 아쉽지만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는 나으니 쉬어가기로 한다.


실시설계 도면을 보면서, 평면도와 입면도, 창호설명을 보면서 수정할 것이 없는지 확인해 보고, 스위치 위치도 점검하였다. 가능하면 공간이 시작되는 지점에 스위치를 두기 위해 4층을 조금 조정했다.

전기아웃렛은 설계단계에서 넉넉하게 잡아두기도 했고, 가구배치 등이 된 후 고민해야 할 거 같다. 도면으로 보니 복잡하기도 하고 평면에서는 공간감이 없어 피드백이 어렵다.

스마트스위치도 샘플로 구매해 보았다. 현관입구, 계단 등은 스마트스위치가 편리할 거 같고, 층이 많다 보니 전체적으로 설치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일단 샘플을 가지고 의논해 보아야겠다.


민원으로 알게 된 소음유발 공정

CIP는 구멍을 파서 철근 파이프를 심고 시멘트를 주입하는 방식이라 거대나사 같은 기계로 지면을 뚫을 때, 자재를 주입할 때 소음이 있다. 이것 때문에 불편을 호소한 모양이다. 다만, 맞은편에 사는 입장에선 집안에서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의 소음이고 길게 지속되는 건 아니라 참아야 하는 정도는 아니긴 하다.


흙막이 공사는 날씨만 괜찮으면 다음 주 중에 마무리될 거라고 한다. 그럼 소음이 나는 공사는 1차 마무리되고, 다음에는 건물을 올릴 때 1주에 하루, 한 번에 2-3시간 정도 시멘트를 주입하면서 압력으로 인한 큰 소음이 9주 동안 생긴다고 한다. 그다음은 망치소리라고.

다음주가 지나고 나면 민원걱정도 좀 줄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옆집에도 이런 얘기를 해두었다.


Ep.

주말에 밥 먹으러 나가다가 공원길에서 다른 옆집의 어르신을 만났다. 시끄러워서 어쩌냐고 죄송하다 하니 어쩌겠냐고 웃으면서 답하신다. 어르신들이 많은 게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세상이 많이 변한 게 맞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