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형태의 글을 읽으면 회의감과 무력감과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과 마주해야 한다. 그렇다고 읽지 않으면 외면했다는 죄책감이 밀려온다. 탐사보도형 신문기사도 나는 종종 처음엔 외면하다 두 번째 마주했을 때엔 죄책감을 '해치워버리자'는 마음으로 읽는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을 친구 집 책꽂이에서 발견하고 친구에게 겉표지만 봐도 화가 나서 읽기 싫다고 했었다. 그리고 오늘 잠시 머리를 식히러 들어간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하릴없이 집어 들어 서점 구석에서 읽기 시작했다. 나는 딱 요만큼의 알량한 양심을 갖고 있다.
비참한 현실과 부조리한 사회구조, 말도 안 되는 사건을 꽤 담담하게, 객관적으로 썼음에도 밀려드는 환멸감은 어쩔 수 없었다. 중반까지 책장을 쉬이 넘길 수 없어 읽다 쉬다를 반복했다. 그러나 이 책의 진의를 넘겨짚었던 것임을 이내 깨달았다. 유죄판결을 받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고통스러웠는지 기술하는 것보다 저자는 자신과 연대해 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인류애와 연대감이 느껴졌다. 동시에 그의 글에서 묻어 나오는 강인한 정신력과 의지는 나를 다시 한번 부끄럽게 했다. 나 또한 '피해자 다움'의 프레임에 갇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자를 보고 있었다. 정신적으로 매우 쇠약해진 채로, 분노에 휩싸여 현실을 고발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글일 것이라 넘겨짚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왜 '김지은입니다'인 지도 그제야 깨달았다. 신변이 모두 공개되고, 2차 피해의 고통 속에 자신의 이름 석자가 적힌 약봉지 조차 무서웠다던 그가 이제는 당당하게 '김지은입니다'라고 세상에 대해 외치는 글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