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영업 사원이 느끼는
오래전부터 '너 영업하면 진짜 잘 맞겠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무 말 대잔치라도 그럴듯하게 꾸며내는 재주가 영업을 할 때 도움이 된 것은 맞지만 아직도 나는 스스로가 영업에 특화된 사람이라고 확신하지는 않는다. 특히 내 기분과 상관없이 웃으며 미팅을 주도해야 할 때나 이기적인 조건만 들이미는 상대를 존중해야 할 때 엄청난 고통과 회의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쉽게 때려치우고 방향을 틀어버리는 행동파인 내가 아직도 영업을 놓지 못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정말이지 영업할 맛 나게 하는 것들 [1] 이 그 첫 번째이고 오늘은 두 번째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1. 지나친 경쟁이 아닌 짜릿한 팀워크가 원동력이 돼요.
언제나 매출로 말하는 영업 직무는 팀장이나 회사가 직원의 성과를 비교하기 쉬운 직무다. 실제로 연 단위, 월 단위, 주 단위 작게는 일 단위로 영업 사원들의 매출 현황을 뽑아 공유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붙이는 조직도 있다고 들었다. 분명히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겠지만, 적어도 의료 영업 조직은 지나친 경쟁이 독이 되는 곳이자 팀워크를 통한 시너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이 지나친 조직에서는 서로 공유해야 하는 유용한 정보들이 개별 영업 사원의 영업 기밀 수준에 머물게 된다. 다행히 내가 일했던 팀은 각 영업사원이 고객으로부터 수집한 제품 피드백, 학회나 병원의 정치적인 상황까지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함께 대안을 찾는 건강한 조직이었다.
당연히 의료 영업 사원은 본인의 담당하는 제품을 절대 사용해 볼 수 없다. 의료 기기에 대한 공부를 했다고 직접 내시경 검사를 하거나 수술 집도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직 고객으로부터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 그들의 마음을 돌리는 결정타 'Key Message'를 만들어내야 한다.
담당 고객이 채 100명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 명의 영업 사원이 제품이 어떤 수술에 유용한 지, 어떤 점이 불편한지, 새로운 술기 중 어디에 적용해볼 수 있는지, 수술 중 제품 오작동으로 이슈가 있었던 경우는 없는지를 포함한 모든 이야기를 듣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팀원 모두가 유용한 정보를 들으면 팀원들과 공유하고 팀 단위 전략을 함께 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개별 영업 사원이 동료의 매출에 도움이 될까봐 제품과 시장에 대한 정보를 국가 기밀처럼 꽁꽁 숨겨버리면 그 조직은 결코 시장의 판을 뒤집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의료 영업 사원들은 학연, 지연을 포함해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된 고객(의사)들의 인맥을 영업 활동에 활용한다. 만약 우리 회사 제품을 좋아하는 A병원의 a의사와 우리 회사 제품을 싫어하는 B병원의 b의사가 절친한 대학 동창이라면, 내가 영양가 없이 b의사를 100번 방문하는 것보다 절묘하게 a의사를 통해 b의사에게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도록 판을 짜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업 사원이 무턱대고 담당 병원도 아닌 A병원에 찾아가 "b고객님이랑 친구시죠? 저희 제품 좋다고 말 좀 해주세요." 할 수는 없다. 제품 이야기가 돌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이때 절대적으로 a의사와 관계가 있는 A병원 담당자(동료)의 협조가 필요하다.
결국 의료 영업 핵심 중 하나인 인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각 고객을 담당하는 개별 영업 사원들이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경쟁이 과열된 조직이라면 당연히 A병원의 담당자가 나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그 시간에 본인 고객 한 명을 더 만나는 편이 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전체 매출이라는 공동의 목표와 함께 도우며 성장한다는 공감대가 있으면 기꺼이 동료를 도와 잠재 고객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
내가 몸담았던 팀은 언제나 서로 다른 영업 사원을 위해 유용한 상황을 만들어 주고 이를 계기로 팀 매출이 성장하면 진심으로 축하했다. 항상 나를 돕는 팀원이 있었기에 혼자 담당 병원을 지키고 있을 때에도 결코 외롭지 않았고 실질적인 성과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언제나 영업에 대한 짜릿함을 떠올리게 한다.
#2. 팀장님의 신뢰와 응원이 저를 움직여요.
나는 팀원을 신뢰하고 응원하는 팀장님을 만나 더 빠르게 성장했고 그 성취 덕에 영업에 재미를 느꼈다. 당시 회사는 모든 영업 사원이 현지 출, 퇴근을 하던 근태 시스템을 택했지만, 많은 팀장님들이 팀원들이 제시간에 출근을 했는지, 고객을 5명 이상 만났는지, 퇴근은 병원에서 한 게 맞는지(어디로 샌 건 아닌지), 중간에 개인적인 볼 일을 보러 가지는 않았는지 등을 수시로 체크하고 영수증을 검사하는 마이크로 매니징을 고집했다. 해당 팀의 구성원들은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는 것은 기본이고, 팀장이 정한 사소한 규율을 따라야 했다. 그들은 '쓸데없는 보고 때문에' 도무지 영업에 집중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내 상사는 달랐다. 기본적으로 팀원을 신뢰했고 나라는 '사람'을 컨트롤 하기보다 내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그는 내 전화에 언제나 "응~ 숙정!" 항상 따뜻한 목소리로 답하는 사수였다. 한결같은 "응~ 숙정!"이라는 말은 "무슨 일이니? 고객과 어려움이 있다면 내가 같이 동행해줄게." 혹은 "영업 말고도 힘든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 같이 해결해보면 돼."라는 응원이자 격려였다. 결과적으로 그런 팀장이 있어 나는 고객과 제품, 시장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하루는 수술 방에서 한 교수님이 제품에 대해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모든 것을 달달 외우고 들어왔다 생각했는데 전혀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수술방 직원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상황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환자 생명과 연관될 수 있기에 평소처럼 모르는 것을 아는 척 떠들 수는 없었다. "정확히 알지 못하는 부분이라 알아보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며 응대했다. 어이없다는 교수님의 표정과 당황한 수술방 직원들을 뒤로한 채 털레털레 걸어 나왔다. 담당 제품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말해버린 아마추어. 의료 영역에서 고객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를 저지른 것이다. 심지어 그는 나의 핵심 고객이었다. 상사에게 이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 대리님 바쁘세요?
"응~숙정!"
- 교수님이 수술 중에 *** 제품 옵션 모드에 관해 상세히 설명해달라고 하시는데, 제가 이 부분을 몰라서 대답을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처음인데 당연하지 괜찮아. 숙정아 그런데 그거 중요한 거야~ 내가 더 자세히 봐줄걸. 같이 그 부분 한 번 보자! 사무실 언제 들어와? 그리고 또 뭐 힘든 건 없고?"
다그침이라곤 없는, 더 많이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은 영업 활동 내내 나로 하여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 가짐을 가지게 했다. 그는 한결같이 나를 포함한 팀원을 믿어주었고, 모두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다. 고객을 잃을까 초조해하는 담당자와 동행하며 상황을 바로 잡았고,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다며 독려했다.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자 팀원들이 앞으로 비슷한 상황을 만났을 스스로 대처할 수 있도록 본보기를 보여주는 롤모델이었다.
아마 그가 내가 고객과의 소통 과정에서 마주하는 실질적인 어려움보다 출근 시간, 퇴근 시간, 하루에 만나는 평균 고객 수, 한 달 접대 횟수와 비용, 월 단위 자동차 이동 거리(길 수록 많은 병원을 왔다 갔다 했다는 의미) 등에 집착하고 잔소리를 했다면, 나 또한 고객을 분석하고 유효한 영업 활동을 하기보다는 불필요한 미팅까지 끌어모아 고객 미팅 횟수를 늘리고, 자동차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 옮겨 다니느라 시간을 다 써버렸을 것이다. 팀장님은 내가 제대로 알려주면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사람이라 말했고 나는 그 기대와 신뢰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어떤 제품, 어떤 서비스를 판매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업 사원은 외로울 때가 많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보다 불특정 다수의 고객과 더 긴 시간을 보낸다. 나를 모르거나 싫어하는 사람을 찾고 설득하는 일은 항상 내 편인 팀원과 나를 믿어주는 팀장이 없다면 더없이 힘든 직무라고 생각한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협력을 강조하는 조직에서 나와 내 매출이 함께 성장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기 매출로 동료와 나를 비교하면 할수록 내 고객이 아닌 동료의 성과에 집착했다. 동료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보다 내 고객을 설득하려면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곁눈질을 멈출 수 없었다. 동료의 영업 활동, 전략은 내 영업에 적용할 수 있는 조미료일 뿐이다. 물론 경쟁만 부추기는 조직에서는 그마저도 공유가 안 되지만 말이다.
진짜 경쟁 상대는 경쟁사이지 함께 일하는 내 옆의 동료가 아니다. 팀원과 팀장과 회사가 이에 공감해야 함께 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신뢰받는 팀장과 일할 때 나는 더욱 성실하게 일했고 가이드를 준수했다. 팀장이 나를 믿어줄수록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팀장은 내가 실수를 해도 충분한 기회를 주었고, 제대로 리드하지 못한 본인의 탓이라 안심시켰다. 영업 사원이 마음껏 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 만큼 200%의 성과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일을 하면 적어도 110~120%의 성과 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
최전방에서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마음으로 일하는 것. 함께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내 모습을 보는 것.
내가 영업 직무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결국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