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숫자는 흉터다. 모든 숫자는 잔인함이나 슬픈 감정을 일으키는 구체적인 사례와 연관된다. 그래서 손을 씻을 때도 걸음을 걸을 때도 가장 날 안심시키는 숫자만큼 반복해야 그 순간을 지나갈 수 있다. 세 걸음에 갈 거리를 폴짝 뛰어 한 걸음에 가거나, 이미 깨끗히 씻은 손을 다섯 번 더 씻고야 마는 것도 같은 이유다. 10년 전 강박 장애, 불안 장애 진단을 받았다. 우울과 편집으로 뒤엉킨 시간도 있었다. 길고 긴 상담 치료와 내 옆에서 온기를 더해준 소중한 사람들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증상으로부터 자유로울 만큼 다 극복했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적어도 한 발 치 물러서서 지난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불안에 사로잡힐 때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했다. 얼마나 후회스럽고 내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순간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적어보기로 했다. 지난 나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점을 스스로 발견하고, 내가 겪어온 증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난 심리 전문가가 아니다. 내 글은 치료 방법을 알려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지극히 내 인생의 이야기인 만큼 조금 특별한 에세이를 읽는 마음으로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 만약 여러분 주위에 같은 이유로 힘들어하는 아이나 친구가 있다면, 내 글을 통해 그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이 홀로 전전긍긍하기보다 도움받을 수 있는 전문가와 만날 수 있도록 다리가 되어주면 좋겠다.
증상의 시작과 지금까지 인생에서 내가 만났고 헤어졌던 사람들. 이를 통해 내가 얻었던 것과 잃었던 것들을 최대한 초연한 마음으로 되돌아보려 한다. 기대되고 두렵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