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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Jan 01. 2019

#1. 어쩌다 시작한 영업

'의료 영업'이라는 첫 단추

2016-2017 수원, 안산, 평택 대학병원 영업

2017-2018 스타트업 상품 기획 및 '영업'


내 이력서가 영업 경력으로 채워지고 있다. 솔직히 태어나 영업 사원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 내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혹시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


내게 영업은 정말이지 잠깐 원해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원치 않음에도 해내야 했던 일이다. 매출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역시 난 영업에 맞는 사람이야!' 하다가도, 눈물 콧물 범벅된 얼굴로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다짐한 순간도 있었다. <뚜벅이가 말하는 영업 이야기>에서는 외국계 의료기기 회사와 스타트업 영업 담당자로서의 경험과 '대단하진 않지만 누군가에게 쓸모 있을 영업 기밀'을 공유하려 한다.


#1. 욕심이 많던 신입


'귀하의 뛰어난 역량을...... 지원자가 많아......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승하세요......'

대기업 서류 전형에 계속해서 낙방하던 2015년. 한 외국계 의료기기 회사 외과 사업부 마케팅 부서 최종 면접에 합격했다. 생각했던 산업, 꿈꾸던 직무는 아니었지만 어렵게 얻은 자리인 만큼 잘 해내고 싶었다. 군기가 바짝 든 신입 사원이었던 나는 실수하고 싶지 않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업무 리스트를 체크했고, 회식 자리에서는 분위기를 맞춰가며 열심히 술을 마셨다. 주어지는 일들에 익숙해질수록 입사 1년 후쯤부터는 '이 조직에서 더욱 인정받고 빨리 승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 영업이었다. 의료기기 회사에서는 많은 경우 필드 영업 경험이 곧 성공의 지름길이자 필수 요건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경험이 부족한 25살 직원을 필드에 투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그럴수록 영업이 하고 싶어 졌다. 직접 상무님께 찾아가 성과로 보여드리겠다 설득했고, 결과적으로 5개 대학병원을 담당하는 영업 사원이 됐다.


#2. 의료 영업이라는 첫 단추


나는 영업팀 배치 후 바로 실전에 투입됐다.

오전에는 회사에서 의학 용어, 수술 과정에 대해 교육받고, 담당 제품과 경 제에 대한 내용을  암기했다. 영어로 의학 용어를 외우고 인체 구조와 수술 단계를 이해하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이틀에 한 번 보는 시험 점수가 항상 상무님께 공유가 됐는데, 한 번은 내 점수가 너무 낮아 팀장님이 몰래 재시험 기회를 주시기도 했다.


오후에는 정장을 잘 차려입고 수원에서 안산, 안산에서 평택을 돌아다니며 고객과 첫인사를 했다. 주로 50~60대의 대학병원 교수님이었던 내 고객들 중에는 정중히 나를 맞아주시는 분도 있었지만, 초면이었던 내게 '바쁜데 왜 귀찮게 하느냐'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쓱 지나가버리는 분도 꽤 많았다. 당황스러웠지만 '이건 내 일이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자' 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의료 영업의 시작이었다.


#3.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어느 정도 제품과 시장에 대한 내용을 숙지하자 얼른 고객들에게 내 담당 제품이 얼마나 좋은지 전달하고 싶었다. 내가 판매하는 제품이 어떤 수술을 할 때 좋은지, 이에 대해 어떤 연구 결과가 있는지 알리고 싶었다. 고객들이 내 담당 제품이 얼마나 좋은지 알면, 많이 사용해 줄 것 같다는 '느낌' 이 들었다.


아침 7시부터 교수님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대기했다.

운 좋게 지난번 내 첫인사에 방긋 웃어주셨던 교수님을 발견했다.


'교수님 좋은 아침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방실거리는 얼굴이었다. 반대로 그의 반응은 싸늘했다.


- 뭐죠?


'다름이 아니라 저희 신제품이 나왔는데, 유방암 수술 시..... 에 좋고'


- 지금 좀 바쁜데요. 그리고 한 번 써봤는데 아니던데요?


'죄송합니다. 다음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온몸에 전기가 오르는 것 같았고 얼굴은 뜨거워졌다. 그는 피곤했고, 나는 그에게 특별할 것 없이 귀찮은 영업 사원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심지어 아직 친해지지도 않았는데 제품 이야기부터 늘어놓는 실수를 범했다. 영업은 제품력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적절한 행동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영업에 정답은 없다지만, 적어도 어떤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배웠던 소중한 아침이었다.


#4.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


그 날 이후 나는 우선 고객과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아침에 잠을 줄이고 매일 오전 7시 30분에 병원에 도착해 같은 자리에서 교수님들을 기다렸다. 고객들이 내가 어디 회사에서 무엇을 판매하는 직원인지 딱히 궁금해하지 않더라도 웃는 얼굴을 보여주고, 기분 좋게 인사했다. 솔직히 당시에 내가 일방적으로 구애하는 느낌이 들어 지치기도 했고, '이게 영업인가?'라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한 달만에 포기할 수 없었다. 영업이 뭔지도 모르고 하겠다고 선택한 것은 나였으니, 책임지고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나갈 수밖에.


초반에는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인사를 해도 그냥 지나치고 웃어주는 이도 거의 없었다. 사실 몇몇은 내가 본인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고객들은 왜 본인에게 인사를 하는지 궁금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지나쳤다. 그다음에는 그들도 나에게 가벼운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한 달이 되어갈 무렵 비로소 고객이 내게 우리 회사와 제품에 대해 물어왔다.


굳이 급할수록 돌아갈 필요는 없지만, 지름길을 모를 때는 가끔 돌아가는 법도 방법이 되는 것 같다.


초반에는 고객들의 얼굴보다 나를 지나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경우가 더 많았다.


'관계'가 형성되자 고객의 목소리를 통해 고민과 요구를 들을 수 있었고,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다음 단계의 영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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