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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Hwang Nov 05. 2023

나에게 글쓰기란


나에게 글쓰기란
스스로에게 공감을 해주는 일이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생기면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모든 걸 털어놔야 그제야 그 일이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그게 나의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친구들도 나도 20대 초반에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참 많이 했었으니까. 전화를 건다는 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거였고, 전화가 온다는 건 내가 들을 차례라는 신호였다. 20대 후반이 된 지금은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친구들과 전화로 시시콜콜 떠드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 역시도 친구들을 보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후로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아도 각자 안고 있는 삶의 문제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해가 갈수록 그 생각이 더 명확해졌고 그 이후로는 '내 이야기 좀 들어줘' 식의 이야기를 하기가 꺼려졌다.


내가 이 이야기를 털어놔서 그 사람과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게 무엇일까? 내가 후련함을 얻게 되는 것 말고 또 다른 게 있을까? 이게 상대방에게 흥미로운 주제이긴 할까 하는 질문들이 꼬리를 물다가 결국은 입을 다물게 되었다. '사는 이야기 하는 게 다 그렇지 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에너지와 시간이 중요해질수록 다른 사람의 것도 존중하고 싶은 마음에 더 조심스러웠다. 내가 혹시 듣고 싶은 답을 정해놓고 상대방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생각의 방향이 밖이 아닌 안으로 향하게 되었다.


내 안에 작은 대나무숲을 만들어 나 스스로 대화하고 또 대화하다 자연스럽게 글로 옮기게 되었다. 타고나기를 생각 회로가 쉽게 꺼지지 않는 사람이라 일단 어딘가에 비워둬야만 생각의 방에서 불을 끄고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무슨 자신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글에 내가 위로받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도 위로해주고 싶다는, 귀엽게 도를 넘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대체 왜 어떤 고민이 그렇게 많았던 걸까


많은 20대가 그렇겠지만 내가 유독 고민 덩어리였던 이유는 나의 20대는 ‘현실의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 둘 사이에는 일정 거리가 있어 아무리 갭을 좁혀보려고 해도 '현실의 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하면 '되고 싶은 나‘는 두 단계를 앞서 나가있었다. 그렇게 현실의 나는 좌절과 희망 사이를 자주 왔다 갔다 하며 아주 조금씩 나아갔다. 그래도 다행이고 감사한 건 쉽게 포기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의 나를 조금씩 다독이고 일으켰던 게 글쓰기였다.


마음이 어지러우니 방도 어지럽혀져 있고 무엇하나 명료하게 보이는 게 없었을 때,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힘이 돼주었다. 노트북이나 일기장을 챙겨 카페에서 몇 자라도 끄적이고 오면 어두워진 자취방에 불을 켜고 옷가지를 정리하고 밥을 챙겨 먹을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나의 성장 과정에는 거창하진 않지만 꾸준했던 글쓰기가 함께해 왔다.


한편으로는 내가 시답지 않은 ‘위로와 공감'의 명목으로 내 삶의 못난 순간들을 보기 좋게 포장하는 건 아닐까, 남들 다 겪고 사는 일들을 나는 힘들었다고 알아달라고 징징대는 건 아닐지 스스로에 대해 검열을 많이 했었다. 그렇게 근거 없는 의심은 아니었다. 나는 비슷한 일을 겪고도 유독 더 힘들어하고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래도 마음이 시키는 일이니까 멈추지 않고 계속해보고 싶다. 앞으로 더 성장하는 나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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