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가 되고 싶은 거북이

by 황수빈



궁금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되는 특별한 순간이 있는지


나는 30이 된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몇 장면들이 있다.

대부분은 타의든 자의든 내가 속했던 집단 안에서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를 정의하는 경우였다.


- 친오빠는 내가 어렸을 적 걸음마를 늦게 떼어 보행기에 앉아 입만 동동 살아있었다며 놀리곤 했다.

- 초등학교 1학년 때는 구구단을 잘 외우지 못했다.

- 초등학교 2학년때까지 시계를 잘 볼 줄 몰랐다.

-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두 자릿수 곱셈을 못해서 방과 후에 선생님께서 따로 보충 수업을 해주셨다.
(‘머리가 나쁘면 손이 고생인 거야'라고 선생님께서 나지막이 말씀하시던 게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 중,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함께 학원을 가거나 과외를 받으면 친구들은 ‘아~’하고 탄성을 내뱉는 순간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 아버지의 반 강제 권유로(?) 초등학교에 한 해 빨리 입학한 나는 (그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늘 학교 수업 따라가기를 벅차했다. 결국 대학 입학 후 정신을 차리고 3학년을 두 번 할 결심으로 편입을 했다. 제 나이를 찾아간 게 아닐까 싶다.




중고등학교 때는 모든 친구들이 관심 있어하는 유행에 나는 큰 흥미가 없었다.


옷도 음악도 전자기기도 엄마를 졸라 그런 걸 따라 사기는 했지만 내가 정말 관심이 있어서 그렇다기보다는 대부분 뒤처지기 싫어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했던 행동이었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나는 나 스스로를 조금 특이한 사람 또는 ‘느린 사람'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다.


대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 20대 청춘 사이에 오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겉으로는 장단을 맞추는 듯했지만 그 많은 변화들을 알아차리기에는 좀 버겁다고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그게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변하는 것보다는 변하지 않는 게 뭔지 찾고 싶었다. 그게 뭔지는 정확히는 몰랐지만, 빠른 걸 좇기보다는 늘 변하지 않는 가치를 알고 싶어 하는 갈증이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런 사람이겠거니 생각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나의 완벽주의 기질이 내 안에서 커져가면서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자주 마음에 괴로움이 찾아왔다.


이상의 ‘나'는 늘 현실의 ‘나'를 비웃고 질타하고 느리다며 핀잔을 줬다. 겉은 고요했지만 속은 단 하루도 평온한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 종종 삶을 살아가는 건 무서운 일이라고 느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느리고 나약한 내 모습을 보며 울타리 밖에서의 내 모습을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들, 예를 들면 매일 같이 학교를 가고 새로운 환경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들, 그렇게 흔한 것조차 나는 버거웠다.


나는 공부든 인간관계든 새로 배우고 소화하는 데는 남들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많은 친구들이 공부로 힘들어했던 10대 때, 나는 그것 보다 내 속도와 세상의 속도가 너무 다르다는 사실 자체에 더 힘들어했었고, 내가 남들처럼 나를 책임지고 먹여 살릴 수 있을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을까, 미리 걱정하며 종종 겁이 났다. 사회인이 되는 것은 마다하고 교복을 벗고 더 큰 세상인 대학교로 가는 것조차 무서웠다.




하지만 예상외로 나는 대학교를 진학하고 내 안의 의외의 모습을 많이 발견했다.


날개를 단 것 같기도 했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땐 어디서 용기가 생겼는지는 몰라도 교복에 가려졌던 진짜 ‘나'의 모습이 싹트기 시작했다. 나의 영역을 넓히고 주체성을 키우고 싶어 교내 활동, 대외활동,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20대 초반까지 정신없이 살다 중반쯤 머리가 멍 해지는 경험이 있었다.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게 생각난다.


대학교 3학년, 편입 직후 대외활동에 알바까지 정말 바쁘게 살던 시기였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곧 있을 이벤트 준비를 하고 밤 12시가 다된 시간에 자취방에 들어오는데 손하나 까딱할 힘이 없을 정도로 허기 가졌다. 그냥 많은 날 들 중에 하루였다. 있는 대로 어질러져있는 컴컴하고 값싼 자취방, 익숙한 광경이었지만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그 현실이 너무 싫었지만 그 굴레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가방을 던져놓고 침대 끝에 걸터앉았는데 내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마음에도 정말 큰 허기가 몰려왔다.


다른 대학생 친구들은 척척 해내는 일들이 나는 유독 에너지가 많이 필요했고 그래서 나에게는 늘 별일이었다. 혹시나 내가 자기 몫을 잘 챙기는 얍삽 빠른 토끼가 아닐까 기대를 걸며 살았는데 사실은 토끼 탈을 쓴, 토끼의 흉내를 내고 싶은 거북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아 나는 이러나저러나 거북이 일 수밖에 없구나 싶었다.





그렇게 10대와 20대를 지나고 보니 나는 거북이 인 게 명확해졌다.


나의 20대를 열심히 살게 해 준 열정과 동기가 그동안 가려졌던 나의 기질적인 면도 있지만 과거의 놓친 시간을 보상하고 싶어 하는 심리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보니 나는 기질적으로 인정 욕구가 정말 강한 사람이었는데, 흔한 자기 효능감도 잘 느끼지 못하고 오랜 시간 주눅이 들어있었다. 성인이 되고 손에 주어진 결정권에, 내가 가질 수 있는 인정 욕구는 다 채워보겠다는 마음으로 산 것 같다. 그 덕분에 많은 경험과 사람을 통해 인간적 성숙을 이룬 건 맞지만 그게 건강한 동기부여였다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그래서 깨달음 후에 무엇이 달라졌나? 사실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아직도 내 속도를 인정하지 못하고 껑충껑충 지나가는 토끼들을 보고 부러워한다.


‘나이에 비해’ 또는 ‘비전공자 백그라운드에 비해’ 지금 속한 곳에서 뭔가를 이뤄냈다는 타이틀에 아직도 집착하는 듯하다. 남들보다 뭔가를 빨리 이룰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또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세상에는 멋진 토끼가 정말 많다.


우여곡절의 노력으로 나는 과거의 내가 바라던 삶에 다가가고 있다. 그렇게 잠깐 만족을 하는 듯했으나 다시금 더 큰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나는 토끼 굴 속에 사는 거북이임을 자각한다. 이 대로 살다 간 평생 나는 토끼가 될 수도, 거북이로서 성장하지도 못하는 게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토끼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더 단단한 멋진 거북이가 되는 것.


쉽지 않겠지만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연습에 공을 들여본다. 속도보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