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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서기 Mar 14. 2024

내 공간을 가져보려고 7

나는 그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HUG에서 받은 문자


이 문자 한 통을 받기 위해 근 1년간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보냈었다. 

잠들었다가도 벌떡 일어나 씩씩 거리기도 했었고, 

회사에서 업무를 하다가도 밖으로 나가 담배를 폈다. 


그리고 친구들과 웃으며 술을 마시다가도 

알 수 없는 갑갑증에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다. 


나는 집주인에게 전세계약 일자가 종료되면 

계약을 바로 종료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발송했었고, 

집주인은 아무래도 실수인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보낸 내용증명을 수령했다. 


내용증명이 오고간 것은  

우체국 홈페이지를 통해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당 증명서와 1년간 준비해 온 서류들을 HUG에 제출하고 

대략 2주 정도의 피말리는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위와 같은 문자를 받을 수 있었다. 


전세보증금을 수령 받은 과정과 

그와 동시에 새로운 집을 구해서 이사를 나간 과정을 이야기하자면

또다시 연재를 시작해야 하기에 

그 과정은 간단하게 생략하고자 한다. 


모든 짐이 빠지고, 나는 깡통전세의 거실에 널부러져 냉장고 밑바닥에 굴러다니던 캔맥주를 마셨다.


우선 전세보증금이 들어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사 갈 집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면 계약금을 지불하고 계약을 진행한다. 

계약서를 근거로(꼭 계약서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HUG에 집을 비우는 일자를 말하면, 당일에 직원이 집으로 방문한다. 

당일까지 사용한 다양한 공과금에 대한 납부 확인이 완료되면 


그날 오후에 전세보증금이 나에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대출을 받은 은행으로 바로 입금된다. 

이는 은행을 통해 내가 확인하면 된다. 


나는 이와 동시에 집 매매 대출을 진행했기에 

전세 대출금이 갚아지자, 

집 매매 대출금이 이사가는 집의 집주인에게 전달되었다.

(전세 대출과 집 매매대출을 같은 은행에서 진행했다) 

 

단 한 번도 내 통장에 들어온 적이 없었던 억단위 돈들은 

문서와 숫자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오고갔다. 



그리고 나는 작은 집이 생겼다. 


사실 작은 빌라의 경우, 

전세값이나 매매값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기에 

또다시 무서운 깡통의 늪에 빠지고 싶지 않았던 나는 

대출을 받아 빌라를 사버렸다. 


비록 은행에 매달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지만 

적어도 만날 수 없는 집주인 때문에 

고통 받는 일은 없을 것이란 편안함. 

그리고 벽에 못질을 마구마구하는 패기까지. 

비록 나의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집일뿐일지라도 


나는 지금을 만족한다. 

깡통전세로부터 탈출한 후, 부산에서의 가벼운 몸놀림


내가 깡통전세로 고통 받는 동안 

그리고 해결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집주인을 본 적이 없다. 


나에게 고통을 주었던 이는 어딘가로 주소지를 계속 옮기며

내용증명을 받기를 거부했었고, 

단 한 번도 나에게 전화나 문자를 하지 않았다. 


나를 위로하고, 포기하지 않게 힘을 준 이들은 

언제나 나에게 웃음을 주는 친구들이었으며, 

처음 만나는 상담사와 HUG의 직원들이었다. 


깡통전세를 나가는 날, 

법적으로 집주인에게 문자를 남겨야 한다고 했다. 

집을 나간다는 내용과 집의 비밀번호를 문자로 보내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하는 마지막 절차라고 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 씻고 침대에 누우면 

까마득한 어둠 아래로 끌려 내려가는 느낌. 

내 방이 집이 아니라, 

커다란 괴물의 입속처럼 느껴지는 공포. 

그리고 내가 진정 모자르고 바보같고 

심지어 병신같다고 자책하게 되는 자학까지. 


이것들이

깡통전세로 받는 고통이다. 



나는 그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조금 더 편하고, 조금 더 안정될 수 있는 시간

그렇게 오롯한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자 

용기내어 한 걸음을 내딛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한 걸음이 거짓과 배신, 

그리고 단 한 번도 만져본적 없는 빚으로 돌아올 때 


삶은 무게를 잃고 흩어져버린다.



그 흩어짐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옆에 있어 준 다정한 친구들 덕분이었다. 


혹시라도 주변에 나와 같이 깡통전세로 고통받는 이가 있다면

반나절 정도 시간을 내어 함께 차를 마셔주고 있어준다면 좋겠다.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있어 

그 사람이 흩어지지 않을 수 있다.  


함께 가는 전시회는 참, 좋잖아.


여기까지가 

재단 뉴스레터와 내 브런치로 발행되는

깡통전세 탈출기의 마지막이다. 


더 일찍 끝냈어야 했는데, 

마지막화를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보니 

이제서야 끝내게 되었다. 


새롭게 시작된 2024년도 3월이 지나고 있다. 

혹시라도 올해 뭔가 무척이나 좋은 일이 생긴다면, 

그것을 소재로 다시금 브런치를 통해 

누간가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모두가 행복해지도록, 

모두가 건강해지도록, 

모두가 웃음가득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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