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로스트 May 26. 2024

내가 만난 커리어 “ 빌런들”을 회고해 본다 (2)

내 커리어에서 만난 두 번째 빌런은 첫 번째 보다 더 강력했고 나를 더욱 크게 변화시켰다.   


테크 회사 전문의 국내 최초 홍보 대행사에 5명의 초창기 멤버로 열심히 일했다.  당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들을 하느라 좌충우돌 실수도 많았다.  나를 믿고 일을 맡긴 사장님의 기대의 부응하고자 했고 일다운 일을 처음 해보는 정말 잘하고 싶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건  영어 실력이었다.  미국 회사가 클라이언트였기에 영어로 모든 문서를 작성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공이 영어 영문학과라는 말을 어디 나가서 하기도 부끄럽게 나의 영어 실력을 형편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 또래 친구들이 유난히 결혼을 많이 하던 해에 나는 영어와 마케팅을 배우러 캐나다 유학길에 올랐다.  2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나는 같은 회사로 돌아왔을 때 다양한 반응 중에 하나는 왜 더 좋은 회사로 옮기지 않고 같은 회사로 돌아왔느냐는 것이었다.   내 이유는 간단했다.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난 의리를 지킨 것뿐이다.  내가 유학을 간 2년 사이에 회사는 더 성장했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새로 들어온 인원 중에 김 땡땡 이사도 그중 한 명이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조직은 더 수직적으로 변했고 새로운 김 땡땡 이사로 인해서 회사 문화는 많이 변했다.   별로 좋지 않게…  


창단 멤버 중 한 명인 나에게 조직 문화를  제자리로 돌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김 이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당시 팀장 정도 위치였고 아무리 창단 멤버라 해도 조직 서열에 밀리는 바라 나에게 힘은 없었다.   김 땡땡 이사와 같이 일을 하면서  자주 부딪혔고 나와도 맞지 않음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든 직원들 앞에서 나에게 “ 야 너 일어서” 하면서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장이 중간에 말리지 않았다면 그녀는 미친 여자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더 심한 욕을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무슨 잘못을 한지 모른다.   


사장님께 면담을 요청했고 난 사직을 표명했다.  사장님은 물었다. “ 혹시 김이사 때문인가요? 그렇다면 1년만 더 기다려 주세요.  그때 다시 얘기해 봅시다”.   사장과의 그동안의 의리가 있었기어 정확히 1년을 더 기다렸다. 하지만 상황은 더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악화되었다.  김이사의 편애는 심해지고 회사에서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를 싫어하는지 너무 극명했다.  내가 어쩌다가 그녀의 미움받는 그룹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창단 멤버이고 사장님과 다른 직원들의 신뢰를 받아서일까?   그녀의 만행은 더 해갔고 당시 아버지가 재혼해서 집에 들어선 새엄마 보다 더 나를 힘들게 하였다.     


난 인생이 괴로웠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어떤 조치가 팔요했다.  나에게는 휴식이 필요했고 내가 처헤진 모든 상항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해 7월에 제2의 고향과 같은 나의 유학의 나라 캐나다에 휴가를 떠났다.  나에게는 너무나 필요했던 시간들이었다.  캐나다 유학 시절에 만난 절친을 만나 나의 힘든 회사 생활을 얘기하며 같이 손잡고 마구 울었고 기도를 하였다.  그때 난 하나님의 작지만 너무 분명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켈리 포니아 산호세에 본사가 있는 호프만 에어전시에 연락해서 바로 다음날 CEO를 만나러 갔다.  그 자리에서 미국 회사에 취업이 된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 그 CEO는 그 시간을 회고를 하며 내가 미국에 취업하려는 의지가 너무나 확고해 보였다고 했다.    



어느덧 미국에서 산지 25년이 넘었다.  미국에 있는 회사에 어떻게 취업이 되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고 지금까지도 받는다.  마귀할멈 같은 김 땡땡 이사의 괴롭힘으로 한국을 떠났고 미국에 까지 오게 되었다고 설명하기에는 너무 극단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리고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이 된 해외 취업을 내가 만난 커리어 빌런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그의 존재가 너무 대단하게 되었다.    


나는 아는 사람 한 명도 없고 한 번도 살아 본 적도 없는 낯선 땅에 혼자 올 정도로 용감한 사람이 아니었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내가 가장 일찍 결혼해서 현모양처로 살 줄 알았다는 예기도 많이 들었으니.  

회사에서 괴롭히는 사람이  있을 때 특히 그가 상사 폈을 때 직장을 옮기는 가장 큰 이유이다.   나는 직장을 옮기는 것에서 더욱 확장되어 해외 취업을 결심하게 할 정도로 직장에서의 언어폭력과 부조리는 나 같은 겁쟁이를 가장 용기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결심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고 그리고 그것은 최상의 변화이고 인생의 혁신이 되었다.    


빌런은 늘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초인간적인 용기를 내게 해주는 커다란 동기를 주는 걸 보면.  그래서 내 커리어의 두 번째 빌런에게 더 큰 감사를 보낸다.   


나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준 김 땡땡 이사님 잘 지내고 계시나요?      

작가의 이전글 내가 만난  커리어 “빌런들”을 회고해 본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