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과 긍정심리학의 그늘

긍정만능주의 파헤치기

by 수수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꼭 이 칼럼을 떠오르게 한다.

리처드 도킨스가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회의주의자를 위한 잡지 <Skeptic 스켑틱>의 2015년 1권에 기고된 칼럼 "긍정심리학의 그늘"은 낙관적인 사고, 긍정적인 사고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세태를 꼬집는다. 맞다. 어딜가도 '긍정적으로!', 'Be positive'라는 글귀가 널려있고, 덕담으로 건네는 말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며 긍정을 권유하다 못해 강요하는 현실이다.

물론 좋지 않은 상황이 닥쳤을 때 상황을 타개하고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게 나쁜 것도 아니고 때로는 다음 단계를 위한 디딤돌이 되므로 이것에 대해 나쁘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긍정제일주의가 항상 비관주의나 다른 무심한 태도, 회의주의적 태도 보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지적하는 것이 이 칼럼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한 예시가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라고 무심결에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호주의 연구진이 8년간 폐암환자를 추적한 결과, 낙관주의가 환자의 생존이나 회복, 수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왤까?


생각만 낙관주의자라서?가 아닐까 싶다.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이 '조이'가 그랬듯, 걱정과 슬픔을 배제한 채, 낙관적이고 즐거움만 꿈꾸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다소 아프더라도 아픔을 더듬어 발견하고, 충분히 슬퍼하고, 해소하고,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시간도 필요한 법인데 낙관적인 상상, 낙관적인 말로 그 시간들을 채우는 것은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실제, 영화에서도 '조이'는 라일리의 상상 속의 친구 '빙봉'의 희생을 말미암아 강한 슬픔을 느끼고 재도약하지 않나.

결국 위험에 빠진 라일리를 구하는 것은 '슬픔'이었다. 슬퍼할 일은 슬퍼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두 감정은 상대적인 것이라 어느 한 가지 감정만이 옳다고 다른 한 쪽을 배제할 수는 없다. 긍정만능주의도 부정만능주의도 아닌 기쁠 땐 열광적으로 기뻐하고, 슬플 땐 충분히 슬퍼하면서 시소처럼 감정의 균형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