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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Mar 10. 2019

03 : 딤섬과 필름하우스 그리고 각자도생(1)

잔잔한 듯 뜨겁게, 타이베이

눈 비비고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 물음표가 떠올랐다. 

‘오늘은 뭘 할까?’


계획한 일은 없었다. 원래 계획주의자들과 다니지 않는 한, 여행할 때 스케줄을 짜고 다니지 않는 편이다. 가고 싶은 곳은 꼭 가지만, 혼자 다니면 꼭 길을 잃거나 옆길로 새기 때문에 한두 곳만 생각해두고 나머지는 여백으로 남긴다.


그날도 천천히 챙기고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면서 아무 계획이나 이야기했다. 나는 언니에게 딘타이펑에 가자고 했고 언니는 예쁜 카페에 가자고 했다. 딘타이펑에 갔다가 카페를 가기로 했다.


내가 물었다. “그 다음은?”

언니가 답했다. “글쎄?”


결론은 이랬다. 금강산도 식후경. 밥 먹고 생각하자.


한국에도 들어와 있는 대만의 프랜차이즈 딤섬 식당 딘타이펑은 타이베이시 전역에 체인점이 있지만 숙소와 가까운 중산역 백화점 지하 지점으로 향했다. 사람들로 붐볐다. 대기표를 끊어놓고 백화점을 구경했다. 윈도우 쇼핑은 좋아하지만 주머니는 한없이 가벼울 때였고 살 일 없는 브랜드를 보는 일은 금방 지루해졌다.


옷은 안 보고 수다만 떨었다. 이야기하면서 한 층을 천천히 걸어서 돌고 나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윗 층으로 갔고, 그 층을 다 돌면 또 위로 올라갔다. 6층인가까지 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그렇게 두어 번 반복하자 딘타이펑 대기열이 다 줄어 있었다.


먼저, 주문서에 시킬 메뉴를 표시했다. 한자라 표기된 메뉴는 그냥 종이였다. 영어로도 표기가 되어 있긴 하지만 뭐가 맛있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별 딱지가 붙은 추천 메뉴 위주로 막 체크했다.


“샤오롱바오 하나랑… 새우 샤오마이? 새우는 당연히 맛있겠지?”

“그럼그럼.”

“이건 어때? 수세미 샤오롱바오? 별표야! 먹어보자.”

“음… 네 맘대로 해.”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가 하나씩 나왔다. 한 판을 클리어하면 다음 판이 나오는 식이었다. 코스 요리 같았다.

(좌) 새우 샤오마이, (우) 수세미 샤오롱바오...

딘타이펑의 딤섬을 무어라 표현할까. 딤섬은 사실 만두류를 포함하는 굉장히 포괄적인 요리류란다. 롤, 떡 등 오만 가지 요리가 다 딤섬류에 포함된단다. 그렇지만 멋모르고 샤오롱바오와 샤오마이 종류만 시킨 내겐 다 맛있는 만두일 뿐이었다. 난 만두를 사랑하고, 만두면 그냥 된다.


다만, 수세미 샤오롱바오는 예외였다. 먼저 한 입 먹은 언니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그리고 말했다.

“먹어봐.”


먹자고 한 건 나였으니 빼도 박도 못하고 미소를 지으며 입에 넣었다. 넣자마자 바로 언니의 마음을 알았다. 수세미 맛을 기억하지 못해 저지른 실수였다. 수세미는 오이와 숙주를 같이 먹는 맛이었고, 아무리 고운 만두피 속에 넣어서 쪘어도 피와 따로 놀았다. 너무 화하고 상쾌했다. 음식 잘 안 가리는 나지만 수세미는 빼고 먹었다.

천장에는 대만 감독의 영화 <해상화>가 프린트된 필름하우스.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걸어 닿은 곳은 타이베이 필름하우스였다. 푸른 녹음이 짙은 정원이 딸려 있고 1층엔 단정한 분위기의 ‘카페 뤼미에르’가 있는 타이베이 필름하우스는 미국 대사관 건물을 개조한 곳.

미국과 수교가 끊어진 후 방치되던 대사관 안에 작은 상영실을 만들고 예술영화를 상영하게 되었다. 인포데스크에서 영화 상영 스케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우리가 방문한 시간에는 예정된 상영이 없어서 둘러보기만 했다.


2층은 전시 공간이었는데, 영화적인 분위기가 나는 소품 몇 개가 비치되어 있을 뿐 휑해서 금방 내려와 굿즈를 구경했다. 필름하우스지만 영화와 관련된 것보다 타이베이 관광 상품과 디자인 편집샵에서 팔 것 같은 아이디어 상품들이 더 많았다. 영화 굿즈는 DVD 정도였다. 그럼에도 누군가 타이베이에 간다면 여길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유는 바로 1층의 카페 뤼미에르 때문이다.


짙은 정원을 구경하며 커피를 마시는 게 더 이 공간을 멋지게 즐기는 방법인 듯했다. 언니가 시킨 밀크티가 예쁜 잔에 담겨 나왔고 내가 시킨 아이스커피도 거품 가득한 비주얼로 나타났다. 예상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니었다.

대만의 다른 카페에서 마신 커피도 그랬다. 공통적으로 커피 맛은 조금 신 편이었고. 신맛 커피보단 진한 맛 커피를 좋아하는 나지만 그것도 나름 괜찮았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기분이 좋아서였다. 기분파의 취향은 이렇게 갈대처럼 흔들리곤 한다.

타이베이 필름하우스에 딸린 멋진 정원.
커피와 디저트. 완벽한 오후.

다시 질문할 시간이었다.

"뭐할까, 이제?"

나에겐 전과 달리 생각해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각자도생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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