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물러가니 달리는 일이 더 좋아집니다. 아침저녁으론 특히 더 달리기 좋은, 선선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요. 덕분에 비가 오는 날도 달리러 나갑니다. '오히려 좋아'의 마음으로요. 여름과 가을 사이, 적당한 비, 달릴 수 있는 시간. 이 세 가지가 겹치는 행운은 아무 때나 오는 것이 아니니까요.
부슬부슬 비가 오는 어린이대공원을 달렸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록빛이던 메타세콰이아 나무는 어느새 붉어졌고, 커다란 플라타너스의 이파리는 이미 낙엽이 되어 흠뻑 젖었더라고요. 길을 따라 조로록 심긴 가을 풀꽃도 빗방울을 머금어 아름다웠어요. 평소 같았으면 사진을 찍었을 텐데 달리는 중이라 그럴 수가 없었어요.
몇 분 달리고 몇 분을 걷는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데다, 달릴 때는 허리에 차는 러닝벨트에 핸드폰을 넣어두는데요. 꺼내려면 굉장히 번거롭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거든요. (사실 두번째 이유가 큽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풍경을 달리면서 바라봤습니다. 같은 나무인데도 어떤 이파리는 부지런히 노랗고 빨간 빛깔로 물들었고, 어떤 이파리는 여전히 초록빛으로 반짝이며 게으름을 피우고 있더라고요.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드는 순간, 빗방울 섞인 바람이 불었습니다. 나뭇잎 냄새, 풀 냄새, 흙 냄새가 가득한 바람이었어요. 사진을 잊은 채 벌게진 얼굴로 킁킁거리며 신나게 달렸습니다. 가을이 제게로 마구 쏟아져 오는 것 같았어요.
오늘 달린 것은 공원이 아니라 가을이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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