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다이브 chapter3
정수리에 내리쬐는 햇볕이 따스했다. 2월임에도 불구하고 훈기가 가득한 공기에, 다른 나라에 온 게 실감이 났다. 앉으라고 만든 것 같지는 않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듯 반질반질한 돌덩이에 엉덩이를 붙이자 열기가 전해졌다. 삼 분도 채 앉아있지 않았는데 해가 있는 방향으로 머리가 뜨끈뜨끈해지는 게 느껴졌다. 생각했던 것만큼의 에메랄드빛은 아니었지만 바다가 예뻤다. 아름다운 바다를 보고 고작 예쁘다는 말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비천한 어휘력이 안타까웠다.
이동하는데 꼬박 이틀을 할애했다. 발끝까지 따스하게 감싸주는 듯한 온기가 반가웠지만 아직도 구겨져 있던 온 몸이 으스러질 것 같았다. 특히 카이로 공항에서의 열 시간 경유는 말 그대로 고역이었다. 돈 내고 고생한다는 생각을 애써 떨쳐내며 긴 이동 시간을 버텼다. 한 번의 비행기 경유와 한 시간의 택시 이동을 통해서 겨우 다합에 도착했다. 호텔 간판을 달고 있는 구식 숙소에 커다란 캐리어를 놓자 산더미 같은 일을 끝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사람들이 많이 걷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길은 모르지만 직진을 하고 있으니 반대로 돌아오면 되겠지. 반바지에 발목 양말, 샌들을 신은 키 큰 서양인 아저씨의 뒤를 따라 붙었다. 긴 기둥에 노란색과 파란색 천이 번갈아 걸려 있는 거리를 지나며, 나풀거리는 천을 따라 바닥으로 떨어진 그림자가 춤추듯 움직이는 걸 구경했다. 아직 여행을 왔다는 게 완전히 실감나지 않았다. 이동하느라 고생한 시간이 무색하게 순간이동을 한 느낌이 들었다.
‘라이트 하우스’라고 적힌 표지판을 지나자 스쿠버 다이빙 샵들이 즐비해 있었다. 산책을 한 뒤 지도를 켜 다이빙 샵을 찾아가려던 계획이 이르게 실현된 셈이었다. 한국인 강사가 있다는 곳을 제쳐두고, 걷다가 괜찮아 보이는 곳에 문의하기로 결심했다. 다합은 세계에서 스쿠버 다이빙 프로그램 비용이 가장 저렴하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한국인들이 많은 곳이었고, 그만큼 커뮤니티도 활성화되어 있는 곳 같았다. 이 주의 황금 같은 휴가를 이집트 여행에 쓰는 데에는 다이빙만큼 큰 결심이 필요했다. 어렵게 낸 소중한 휴가인만큼 타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현지 다이빙 샵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보석을 촘촘하게 흩뿌려놓은 듯한 해수면이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불규칙적으로 파도 소리를 내는 바다는 아직 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아랍어와 영어가 뒤섞인 입간판들을 찬찬히 구경했다. 라이트하우스에 있는 다이빙 샵은 대개 비슷했다. 풍화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바다 속 사진들을 걸어두고, 한국인인 것을 확인한 뒤 영어로 호객행위를 했다. 나는 그 중 제일 내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샵 내부로 들어갔다.
턱과 코 밑이 수염으로 뒤덮인 이집트인 아저씨가 창문이 뚫려있는 카운터 앞에서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내부에는 교체가 필요해 보이는 천이 덮힌 소파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 카운터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가 있었다. 남자는 내게 수영을 할 줄 아는지 물었다. 수영을 마지막으로 한 건 꽤 오래 전이었으며 바다 수영은 자신이 없었다. 낫 베리 굿. 남자는 대답했다. 댓츠 오케이.
낡은 소파로 나를 안내한 남자가 선풍기 방향을 내 쪽으로 돌려주었다. 가장 기초 프로그램인 오픈 워터 자격증 수강료를 달러로 지불했다. 거스름돈을 가져 오겠다며 자리를 비운 사이 구명 조끼같은 까만 조끼들이 생선구이처럼 줄줄이 걸려있는 것을 구경했다. 벽에는 영어로 써진 자격증, 인증서 따위가 액자에 넣어져 걸려 있었다. 옆에는 폴라로이드 사진들이 줄에 꿰여 걸려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보니 벽 옆면은 트여져 있어 방이 아니라 외부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전신 타이즈 같이 몸에 꼭 달라붙는 수트를 입은 사람 세 명이 물을 뚝뚝 흘리며 가게로 걸어 들어왔다. 세 명 중 두 명이 한국인이었다. 사십대처럼 보이는 여자가 한 명, 다른 한 명은 이십 대 남자였으며 나머지는 이집트 현지인 같았다.
“자파리는요?”
여자가 단번에 내가 한국인임을 알아채고 한국어로 물어왔다. 어떻게 알았을까. 그새 남자와 현지인은 타이즈를 벗고 수영복의 물기를 털고 있었다. 수영복 팬츠만 입은 남자들을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되어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체 하고 싶었지만 느닷없이 시야를 차지한 피부색의 지분이 너무 컸다. 한국인 남자의 딱 벌어진 어깨로 눈이 자꾸만 가는 걸 막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스쿠버 등록하러 오신 거예요?”
고개를 기울여 귀에 들어간 물을 빼면서 남자가 내게 물었다. 머리칼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이 바닥에 고이고 있었다. 세 사람이 들어온 뒤로 어느새 바닥은 물기로 흥건해져있었다. 바닥을 흘긋 보더니 현지인 남자가 벽면 외부로 향하자 여자가 그 뒤를 따랐다.
“등록하셨으면 내일 아침 아홉 시까지 오세요.”
내일은 이론 수업 위주이니 부담 없이 오라는 말을 덧붙인 남자가 일행이 간 곳으로 향했다. 소파에서 어정쩡하게 반쯤 일어 선 상태로 남자의 뒷모습을 봤다. 피부가 잔뜩 그을려 있었지만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맨발로 가게를 활보하는 모양새가 더없이 자유분방해 보였다. 나도 스쿠버를 시작하고 저 무리에 합류하게 된다면 남에게 그렇게 보일 수 있을까.
호텔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숙소로 돌아오니 아직 이른 저녁이었다. 방음이 잘 되지 않는 방 건너 이해할 수 없는 언어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창문을 닫았는데도 온종일 바닷소리를 들었던 귀에는 파도가 치고 있었다. 솨,솨하고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환청이 들렸다. 환청인지 실제인지 잘 분간할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