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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경 Oct 07. 2024

사랑 사랑 사랑

chapter14

  과열되어가던 대화의 흐름이 뚝 끊겼다. 이러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닌데. 이미 왔던 곳을 시간 내서 따라와 준 태형에게 금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괜히 겉옷을 여미며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이었다.

 “내 말은, 그러니까 자꾸 유죄 멘트 하지 말라고요.”

 해가 완전히 지고 조명이 켜지자 도착했을 때와는 분위기가 딴 판이었다. 중앙의 메인 광장에서는 기타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 모닥불을 중간에 놓고 사람들이 둘러앉아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수련회를 연상시켰다. 유행이 십 년은 지난 것 같은 팝송의 코러스를 다 같이 따라 부르는 게 흥겨웠다.

 태형과 나는 말없이 맥주를 들이켰다. 태형은 너무 익어서 겉면이 딱딱해진 고구마를 나무젓가락으로 찔러 해체시키면서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눈을 깜빡이는 속도가 느려지는 데에서 티가 났다. 

 “그냥 내가 진로 상담이나 해줄게. 저번에 정전됐을 때 하던 얘기나 마저 하든지···.”

 시끌벅적한 와중에 다 타버린 고구마만 찌르고 있는 걸 견디지 못하고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너 잘 하는 거 뭔데. 특기. 아님 좋아하는 거.”

 한 손으로 턱을 괴고 팔꿈치를 무릎에 올린 태형이 나를 바라봤다.

 “좋아하는 거, 잘하는 거, 사랑.”

 “너 진짜 장난하냐.” 

 나 간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늉을 하자 태형이 팔을 붙잡았다.

 “진짜야. 내 특기는 사랑이야.”

 “그럼 내가 뭐가 돼.”

 태형이 장난기 없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근데 지금은 못해. 못하게 됐어.”

 “못하는 게 어디 있어.”

 “실패했어. 실패했는데, 너무 아프고 힘들었어서 이제 안하고 싶어.”

 “사랑에 실패했다는 게 무슨 말이야. 헤어진 게 실패라고 생각하는 거야?”

 생각에 잠긴 듯한 태형이 답지 않게 말을 아꼈다. 

 “결혼을 못하면 사랑에 실패한 거야? 난 모르겠어···.”

 어떤 식으로 얼마나 만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타인의 이별의 아픔이 가벼워 보여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태형을 회유해서 꼬드기려고 하는 말도 아니었다. 짝사랑을 했다한들 사랑에 실패했다는 말이 성립할 수가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 사람이 내 인생의 성취였어. 나침반 같았어. 그 사람 가는대로 갔어. 사라지니까 갈 길을 모르겠더라.”

 “그래서 지구 반대편을 헤매고 있는 거고?”

 남아 있는 맥주를 끝까지 비운 태형이 텅 빈 캔을 흔들었다.

 “최선을 다 해서 사랑했으면 그 시간은 남는다고 생각해 나는. 뭔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건 언제나 무서운 일이지만.”

 “모든 시간이 남는 건 아니잖아.”

 “결혼을 하면 남는 거야? 사랑에 성공하는 게 뭔데?”

 사랑과 성공이라는 단어는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성공적인 사랑, 실패한 사랑. 나름대로 사랑을 담뿍 받은 적도 있고 똥차에 탑승하다 못해 치인 적도 있었다. 망하기를 바란 적도, 다시는 마주치지 않기를 소원한 적도 있다. 왜 좋아했지, 저런 놈. 후회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사랑에 실패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사랑에 성패를 가늠하는 기준을 세운 적이 있던가. 생각은 자연히 재현에게로 이어졌다. 만일 성패를 따진다면 재현과의 사랑은 어떤 사랑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아쉬웠다. 어땠을까. 나 사실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야. 네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계속 널 기다렸어. 누군가 내 곁에 와주길 소원하고 있었어. 이 말을 했더라면 그 때의 재현은 어떻게 반응했을지 지금에 와서는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연락한다고 해도 당시의 감정은 계속 해서 미궁에 빠져있을 것이었다. 연애 초반, 혼자 잘 있는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했던 재현에게 그 담은 끝내 허물지 못한 보루였다. 하지 못한 말들이 뒤늦게 입에 맴돌고 있었다. 다 마신 맥주 캔의 뚜껑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태형이 말을 꺼냈다. 

 “연애하는 거 좋지. 근데 누구를 만나도, 그 사람 만났을 때처럼 온 마음 다해서 좋아하게 될 것 같지가 않아.”

 안 해봤는데 어떻게 알아. 목 끝까지 나오려던 말이 멈췄다. 두려움을 학습한 사람에게는 소용없는 말이라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단단한 알 속에 갇힌 태형을 밖에서 구해줄  수는 없었다. 스스로 깨고 나와야 했다. 

 “그러기가 싫은 건 아니고?”

 중앙의 메인 광장에는 아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에 따라 기타 운율 위로 얹힌 노래 소리도 점점 커졌다. 

 “사랑에 깊게 빠져든 네 상태로 돌아가는 게 무서운 거 아닐까 싶어서. 넌 사랑이 특기라고 했지만, 오래 잘 해왔던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떨 땐 제일 힘들 수도 있으니까···.”

 해왔던 일을 계속 하는 것,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내가 잘하는 것이었다. 

 “난 모르는 일을 하는 게 무서워. 눈에 빤히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 그래서 뭔지도 모르면서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것들이 있어.”

 태형은 깊게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일어나서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었다. 러시아어와 영어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난 사랑을 하는 상태가 좋아. 근데 누나 말이 맞는 것 같아. 어쩌면 내가 잘 했던 건 사랑이 아니라 연애였나 싶기도 하네.”

 “그러게, 사랑이랑 연애는 같은 게 아니니까.”

 “어렵다. 뭐가 이렇게 다 어렵지.”

 제일 묻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데, 다른 얘기만 하려니까 좀이 쑤셨다. 용기를 필요로 하는 말이었다.

 “그럼, 안 어려운 거 물어볼게. 나 거절한 거, 네가 사랑 두려워하는 마음이랑 관련 있어? 아니면 그냥 나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어?”

 말해버렸다. 해냈다. 평소 태형이 말하듯 툭툭 내뱉으려고 했지만 문장의 끝 음이 올라가면서 말하는 목소리가 발발 떨리는 게 느껴졌다. 긴장한 손바닥 위로 땀이 올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홍지연 씨, 처음 왔을 때보다 많이 적극적으로 변했네.”

 사람들이 춤을 추는 광경을 바라보며 태형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피하지 말고 대답해줘.”

 “어떻게 아무 감정이 없겠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태형이 말을 이어갔다. 

 “아무런 감정이 없으면 여기를 너 따라서 왔을 것 같아?”

 설레서 심장이 내려앉을 수가 있을까. 순진한거야, 뭐야. 툴툴거리며 다 식은 감자를 괜히 한 번 더 뒤집어보는 태형에게서 감출 수 없이 쑥스러운 기색이 보였다.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방망이질처럼 울렸다.

 “그럼 그 때 나 깐 건 뭔데.”

 좀 더 로맨틱하게 말할 수는 없었을까. 정제되지 않은 단어가 산발적으로 튀어나갔다. 

 “누나.”

 태형이 감자를 뒤적거리던 나무젓가락을 내려놓고 한숨을 푹 쉬었다.

 “나 사실 겁이 많아. 두려워서 그런 거 맞으니까 나 욕해도 돼.”

 “욕 안 할테니까 알아듣게 얘기해봐.”

 장작의 불길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파란빛의 불꽃이 일렁였다. 

 “우린 사실 완전히 다른 사람일지도 몰라···. 예전처럼 그렇게 불타는 사랑을 하고 싶은데, 또 그렇게 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한다면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어. 서로 잘 모르는데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 꼼짝도 할 수 없는 기분이 들어.”

 두서없이 말을 내뱉는 태형은 조금 취해보였지만 취한 김에 내뱉는 말 같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서울에서는 누나가 보기에 난 완전히 다른 사람일지도 몰라. 여기서야 스쿠버도 잘 하고, 또 여행자 신분이지만 서울에선 다르다고.”

 이마를 매만지면서 말을 잇는 태형이 다이빙 샵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문득 정전이 됐던 날 옥상에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대화의 조각들이 머릿속에서 퍼즐이 기워지듯 맞춰지고 있었다. 서울에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던 그 마음이 어쩌면 깊은 바다 속에서 태형의 발목을 옭아매고 있는 밧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말이 맞아. 우린 한국에서라면 어쩜 아예 만나지 못할 인연이었을지도 모르지. 또 막상 닿을 줄 알고 손을 뻗었더니 닿지 않을지도 몰라.”

태형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무릎에 팔꿈치를 받친 채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안 해보고싶어? 나도 한 겁쟁이 하는데, 난 그래도 한 번쯤은 손 뻗어보고 싶어.”

 결국 두 가지 다였다. 나에 대한 감정은 있지만,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 병존한다는 거였다. 지치고 데이고 굴러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이성에게 간이며 쓸개까지 빼줄 것처럼 구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어떤 추억들이 태형을 그토록 붙잡고 있는 걸까. 어쩌면 아까 얘기한대로 붙잡고 있는 건 추억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연민과 쓸데없는 확신인지도 몰랐다. 

 이제 노랫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있었다. 장작불 옆에 모여서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이 자리를 뜨자, 안쪽 돌 더미 옆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자리를 정리하는 분위기였다. 부산스러운 배경을 뒤로 하고 세상에 단 둘만 남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태형도 지금 이런 느낌일까. 결론이 없는 대화를 나눴지만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태형의 밑바닥에 고여 있는 심해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게 해 주었으니. 다만 그 곳에 들어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이제는 거의 꺼져버린 불씨에 장작이 툭툭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이런 걸 한 게 언제더라. 아마 대학생 때였던 것 같았다. 스물한 살, 대학교 이학년 때 갔던 엠티에서 캠프파이어 같은 행사를 한답시고 한동안 소란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그 행사에 가는 걸 반대해서 많이도 싸웠더랬다. 거기 남자애들이랑 같이 술 먹고 진실게임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안 가면 안 돼? 당시에는 행사에 가니 마니 헤어지니 마니 중차대한 사건이었음에도 지금 생각해보면 하등 쓸모없는 다툼이었다. 불과 십 년도 지나지 않은 일의 의미가 이렇게도 축소될 수 있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당시 남자친구의 얼굴이 가물가물했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이 지나면 지금의 고민과 분투들도 그저 우스워지는 날이 올지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스물 한 살의 홍지연은 스스로가 다 컸다고 생각했었다. 오히려 서른 살의 홍지연은 다 컸다는 말이 반 정도만 맞다고 여겨졌다. 카드 요금을 스스로 내고 해마다 연말정산을 했지만, 바로 옆의 두 살 어린 남자에게 꼭 맞는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 그거 내가 다시 알려줄게. 자신 있게 말 하며 손 내밀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닿은 적이 있는 거면, 도달했었더라면.”

 침묵을 깬 태형이 말을 이었다.

 “다시 다른 사람에게 손을 뻗는 게 두렵지 않아?”

 “두려워.”

 조명이 하나 둘씩 꺼져가고 있었다. 사람이 남아있는 테이블이 거의 없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

 태형이 유심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게 느껴졌다.

 “너랑 있으면 내가 등신 같이 느껴져. 네가 한 말, 두 번 세 번 생각하게 돼. 그러면서 또 무서워. 결국 상처로 끝나면 어떡하지. 그러다 돌아서면 또 말 걸어볼까 싶고.”

 “나도 그래.”

 “그럼 넌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건데.”

 태형이 잠시 말을 멈추고 이미 불빛이 사라진 장작불을 바라보았다.

 “내가 무서워. 결국 또 안됐네, 하고 실망할까봐.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왜 꼭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

 태형의 모습이 꼭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머뭇머뭇, 내면에 담긴 욕망을 인지하면서도 자꾸만 뒷걸음질쳤다. 

 “돌아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곳으로 가는 거지. 난 아프고 힘들어도 사랑이 좋아. 주고받을 때 살아있음을 느껴.” 

 장작불이 꺼져 사위가 어둑해져 태형의 표정을 알 수 없었다. 

 “어렵다. 너무 어려워. 바다에 들어가는 게 더 쉽겠어.”

 느닷없는 말에 웃음이 터졌다.

 “그래도 바다가 더 어렵다 나는. 스쿠버 알면 알수록 어려워.”

 “모레 펀 다이빙 같이 가자.”

 좋아. 우리는 자파리의 일취월장하는 한국어 실력에 대해 얘기하고, 무스타파의 나이를 추측했다. 태형은 삼십대 후반, 나는 사십대 초반을 주장했다. 재희 언니는 언제쯤 한국으로 돌아가려나, 모닥불은 남은 불씨조차 다 사그라져 재만 날렸다. 

 “여기도 마무리해야겠다. 이제 우리밖에 없는 것 같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별 다른 수가 없었다. 태형도 이 밤을 끝내기가 아깝다는 생각을 할까.

 “우리 집에 고양이 보러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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