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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경 Oct 07. 2024

편도 티켓

chapter15

  이건 또 무슨 수작인가. 요즘은 ‘우리 집에 라면 먹으러 갈래’라는 말 대신에 ‘고양이 보러 갈래’라는 말을 하는 게 밈처럼 쓰인다는 말을 들어 알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고양이는 없으며, 단지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표현일 뿐이다. 유행하는 말이나 줄임말을 잘 모르는 태형이 이런 말을, 그것도 ‘고양이 수법’을 쓰다니. 

 “이건 또 무슨 스킬이야?”

 “스킬은 뭐가 스킬이야?”

 태형과 나는 서로 의문에 가득한 목소리로 질문을 주고받았다.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 두 마리나 있어. 치즈냥이랑 얼룩무늬 고양이. 너 동물 좋아하는 것 같길래 말 한건데, 별로면 말고.”

 진짜 고양이를 말한 거구나···. 순간 밀려오는 머쓱함에 괜히 태형을 탓했다. 알아듣게 말해야지.

 “오늘은 늦었고, 내일 밝을 때 와. 집에 사람이 없어서.”

 “집에 사람이 없는데 왜 가면 안 돼?”

 “누나 네가 부담스럽지 않겠어?”

 겨우 제 궤도를 찾았던 심장이 다시 빠르게 쿵쿵 뛰기 시작하는 느껴졌다. 이런 멘트는 어디서 배워 오는 건가. 탕탕탕. 유죄입니다. 

 “갈래. 근데 자고 간다는 거 아니야.”

 “자고 가라 한 적 없어.”

 너 진짜, 장난스럽게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두건을 쓴 직원이 가게의 마감을 알렸다. 마을까지는 택시로 십오 분 남짓한 거리였다. 우리는 쿠션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택시의 뒷 자석에 앉아서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문득 사랑에 대해 이렇게 밀도 높은 이야기를 나눈 게 실로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인지도 몰랐다. 친구들을 만나면 늘 연애 얘기를 했지만, 태형과 나눈 대화와는 달랐다. 주로 친구들의 소개팅 상대들을 품평했고, 지나간 똥차들을 욕했으며, 앞으로 만나고 싶은 이상형 얘기를 했다. 

 사랑, 어떻게 하는 건지 알겠다, 이런 순간이 오기는 할까. 자신의 마음을 가늠하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태형이 조금은 답답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같은 감정을 느꼈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태형과 나는 연애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사랑을 하고 싶은 거였다. 연애는 할 수 있지. 연애란 건 오히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을수록 더 잘하게 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사랑은···. 

 “팔라펠 사 가자.”

 우리는 감자튀김, 생선튀김을 파는 가판대 앞에서 내렸다. 태형은 동글동글하게 생긴 갈색 튀김을 주문했는데, 병아리 콩을 갈아서 튀긴 것이라고 했다. 할랄 푸드가 은근 입에 잘 맞는다는 태형이 씩 웃으며 팔라펠 한 개를 손으로 집어 내 입 앞에 댔다.

 “너무 큰데. 그리고 난 병아리 콩 별로야.”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어봐.”

 한 입 작게 베어물자 나머지 부분을 태형이 자신의 입 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쟤는 저번부터 내가 먹다 남긴 걸 잘도 먹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팔라펠은 겉 부분은 바삭하고 안은 부드러웠다. 두어 번 씹자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입 안으로 퍼졌다. 

 “하나 더 먹을래.”

 “꼭 그런다니까. 진짜 웃겨. 어이없어.”

 태형의 집은 마당이 있는, 다합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에어비앤비 주택이었다. 원래 같이 살던 남자 둘이 요 며칠 각자 다른 여행지로 떠나는 바람에 사흘 후 새로운 사람이 올 때까지 태형 혼자 빈 집을 지키게 되었다고 했다. 펜스를 쳐 둔 마당 안 쪽으로 들어서자 과연 노란빛깔의 고양이가 빵을 굽듯이 웅크리고 있었다.

 “한 마리는 어디 있어? 얘네들 이름이 뭐야?”

 “치즈랑 얼룩이. 한 마리는 집 안에.”

 “이름 진짜 성의 없다. 좀 예쁜 걸로 지어주지.”

 낯을 가리지 않는 듯 통통통 걸어와 종아리에 얼굴을 부비는 치즈는 꼬리가 통통했다. 어두운 밤 오묘한 초록빛의 눈동자가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발 부분만 흰 색으로 물들어 있는 게 꼭 흰 색 장화를 신은 것 같았다. 콧잔등을 긁어주자 엉덩이를 내미는 치즈는 사람 손을 많이 탄 티가 났다. 미야오, 미야오, 소리를 내는 치즈를 내버려두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평소 태형에게서 나던 체취가 짙어졌다. 식탁 의자 위에 걸려 있는 수영복 팬츠를 제외하면 집은 깨끗한 편이었다. 

 “얼룩이는 숨었는데, 시간 좀 지나면 나올거야.”

 이게 다야, 소개할 것도 없다며 팔을 휘휘 젓는 태형의 모습이 어쩐지 조금 민망해보였다. 

 “내가 있어서 불편해? 나 갈까?”

 “아니, 누나가 불편할까봐 신경 쓰여서 그렇지. 가지 말고, 사람을 더 부르자.”

재희 누나네에 연락해보겠다며 핸드폰을 집어든 태형의 얼굴은 조금 상기되어 보였다. 

 “재희 누나만 온다는데. 상용이는 고양이 털 알러지 있고, 서율이는 잔대.”

해는 졌지만 잠들기엔 이른 시각이었다. 서율이가 정말 자고 있는 게 맞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토를 달지 않았다. 빙 둘러서나마 거절을 당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와서 수다를 떨기엔 어렵겠지. 아마 태형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누나가 자기 진짜 가도 되는 거 맞냐고 해서 그냥 무시했어.”

 “언니 은근 주책이야. 웃겨.”

 재희 언니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태형과 나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베두인 카페에서보다 서로 간의 거리는 더 넓었지만, 왠지 얼굴이 홧홧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한 명하고만 연애한거야?”

 손가락을 뚝뚝 꺾고 있던 태형이 고개를 갸웃했다.

 “중학생 때 연애는 빼도 되면. 고2부터 만났으니까.”

어림잡아 8 년, 많게는 9년이었다. 재현과 만난 삼 년이 최장기간의 연애였던 나는 8 년이라는 숫자 앞에서 얼핏 무력함을 느꼈다. 

 “둘 다 좋은 사람이었나보네. 그렇게 오래 만난 거 보면.”

 “오래 만난다고 해서 다 좋은 사람인건 아니야. 나 좋은 사람 같아?”

짐짓 과장되게 태형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는 시늉을 했다. 

 “글쎄, 첫인상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 솔직히 말하자면 좀 날라리 같았어.”

 그다지 놀라지 않은 듯한 태형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런 얘기 많이 들어. 장난도 많이 치고. 생긴 것도 그렇고.”

 “난 어땠어. 처음 느낌이.”

 방 안에서 작게 고양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얼룩이가 나오려나. 동물을 대체로 다 좋아하긴 하지만 사실 고양이를 특별하게 좋아하진 않았다. 태형이 고양이를 보여준다고 하니 따라왔을 뿐. 

 “샵에 있다보면 온갖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보겠어. 하루에도 몇 명씩은 왔다 갔다 하니까. 그런데 누나는 딱 보니까···.”

 “보니까?”

 “외강내유 같았어. 나쁜 의미는 아니고.”

 외유내강이 아니라 외강내유라니.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읽힐 정도로 그렇게 티가 났던가.

 “어떻게 알았대. 너 인류학 박사야? 혹시 신기 있어?”

 “그걸 사람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게 포인트야. 귀여워.”

 또 끼부리네, 어이없어. 말을 잇지 못하고 당황해 있는 사이에 재희 언니가 도착했다. 손목에 부스럭거리는 비닐봉지를 달고 온 언니가 식탁 위로 납작한 빵을 올려 두었다. 

 “가게 문은 닫았고, 집에서 가져올 게 없어서 걸레빵이라도 가져왔어.”

 “이거 인도 커리에 찍어 먹는 난 같은건가? 이름이 걸레빵이야?”

 납작하고 길쭉한 빵의 귀퉁이를 뜯어서 씹어보았지만 별다른 맛이 나지 않았다. 미미한 밀가루 맛만이 입안에 남았다.

 “원래 이름이 뭔지 모르겠다. 다들 걸레빵이라고 부르던데. 둘이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무슨 얘기하고 있었더라. 시장에서부터 베두인 카페로, 그리고 집으로 이어진 대화들이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연애 얘기, 사랑 얘기.”

 걸레빵을 가로로 죽 찢으며 태형이 무심하게 말했다. 건수를 물었다는 듯 재희 언니가 말끝을 낚아챘다.

 “웬일이래. 맨날 그런 얘기 꺼내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면서. 진짜 둘이 잘 되는 거 아냐?”

 “안 그래도 노력하고 있어.”

 어머 어머, 쟤 좀 봐,를 연발하는 재희 언니를 두고 할 말을 잃은 나는 그저 아무 맛이 나지 않는 걸레빵을 씹을 뿐이었다. 노력하고 있는 거 맞냐고요. 

 “좋겠다 얘들아. 좋을 때다.”

 “왜 언니, 언니도 하면 되지.”

 “나 법적으론 싱글 라이프로 돌아온 지 얼마 안됐어. 이제부터 천천히 즐겨야지.”

돌싱이었구나. 40대 초반의 나이에 퇴사를 하고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재희 언니의 사연이 궁금하긴 했었다. 결혼을 했었다니, 어느덧 하나 둘 결혼을 하거나 계획을 세우는 동갑내기 친구들을 보면서도 결혼은 너무나 남의 일 같았다. 

 “그럼 누나, 새로 누구를 만날 생각이 있어?”

 “있기야 하지. 그런데 난 결혼하고 이혼하면서 이제야 나를 좀 알게 된 것 같아. 사람들이 말하잖아. 뭘 몰라야 결혼을 한다고. 그 말이 딱 맞아. 뭘 몰라서 결혼을 했어. 살면서 그제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더라.”

 술도 없이 이런 얘기를 하네, 너스레를 떠는 재희 언니는 씁쓸하면서도 후련해 보였다.

 “뭘 몰랐다는 거, 무슨 말이야?” 

 “스스로에 대해 너무 무지했어. 그래서 더 알고 싶었고. 너네 같은 어린애들한테는 웃기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 혼자 여행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야. 엄청 용기 낸 거다 이것도.”

 “누가 웃기대.”

 태형이 담백하게 받아치자 재희 언니가 부스스 미소를 지었다. 다듬지 않은 곱슬머리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언니 그럼, 결혼이라는 제도에 반대해?”

 결혼에 대한 조급함은 없었다. 다만 어떤 결심이 있어야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건지, 또 어떤 결심으로 그 마음이 깨지게 되는지 알고 싶었다. 결혼하는 사람들은 전부 사랑에 대해 안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걸까. 재희 언니 말대로 뭘 몰라서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난 결국에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 어떤 식으로든 파트너가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근데 그게 꼭 평생 효력을 갖는 약속이어야 하는 지에는 생각이 많지.”

 얼룩이는 있기는 한 걸까. 분명히 작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태형은 얼룩이가 빈 방 이층침대 위에 웅크리고 있을 거라고 했다. 스스로 나오기 전에 방으로 찾아가면 하악질을 할 거라고 해서 가지 못했다. 아무 맛이 나지 않는다고 불평했던 것과 달리 걸레빵은 동이 났다. 

 태형이 우리를 차례차례 숙소로 데려다준다는 것을 거절했다. 재희 언니와 얘기를 더 하면서 걷고 싶었다. 우리는 일부러 동선을 꼬아서 언니네 집에 먼저 가기로 했다. 가로등이 많지 않아 길이 어두컴컴했지만 불빛이 없는 거리가 외려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언니는 반 년 넘게 여행하면서 원했던 걸 찾은 것 같아?”

재희 언니는 대답을 고민할 때 눈을 가늘게 떴고, 그럴 때마다 눈가의 주름이 잘게 늘어났다. 

 “뭘 원했는지도 몰랐던 것 같은데, 떠났을 땐.”

 “그럼 어떻게 왔어, 여길. 언니가 처음에 나한테 물었었잖아.”

 “난 제정신이 아니었지. 그냥 막연하게 아주 먼 곳으로 떠나면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어쩌면 나도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서.”

 상용이는 삼 일 뒤에 튀르키예로 떠난다고 했다. 서율이도 머지않아 예정되어 있던 한국행을 앞당길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모두 다합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있던 사람들이라, 마치 영원히 이 곳에 머무를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다들 자기 갈 길을 간다는 당연한 사실에도 묘한 서운함이 느껴졌다.

 “언니는 언제까지 있을 거야?”

 “그걸 안 정한 게 내 인생 최대 반항이야.”

 편도 티켓을 끊는 순간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며 자세하게 묘사하는 재희 언니의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조용한 골목길에 신이 난 언니의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밤 기온은 제법 서늘했지만, 돌려주는 걸 잊어 그대로 입고 온 태형의 셔츠가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었다. 

 “지연이 너는 원래 카이로 간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카이로 가기로 했었지. 그런데 모르겠어. 이집트 있는 동안은 계속 다합에 있을까 싶기도 하고.”

 “너 그거 혹시 태형이 때문이니? 이제 가면 못 볼까봐?”

 아직 정해진 건 아니고, 꼭 그래서는 아니야, 이 말 저 말을 갖다 붙여 봤지만 이미 정곡을 찔린 후였다. 

 “펀 다이빙이야 나중에 동남아 가서 또 하면 되지. 가까운 데 양양 가면 되고.”

언니 말이 맞았다. 스쿠버 다이빙을 더 많이 하고 싶어서 남는 게 아니었다. 태형과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든 정의내린 뒤에 다합을 떠나고 싶었다. 시간을 더 끈다고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떠난 뒤에 다시는 태형을 보지 못할까 두려웠다. 이런 마음 때문에 카이로를 구경하지 못한다면 이 결정을 훗날 후회하게 될까.

 “지연아. 이건 내가 주제 넘는 거 인정하는데, 그거 다 욕심이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하고도 한참 남을 시간동안 주변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잘 도착했지? 태형이 보내온 메시지 알림이 어둠을 환하게 밝혔다.

 “근데 언니, 나 욕심부려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생각해보니까 그래. 무리해서 결정을 내린 적이 없어.”

 단어를 내뱉으면서 비로소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조각조각 찢어진 언어가 고르게 배열되면서 마음이 차분해짐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버해보려고. 무리해서 기다리고, 욕심내서 다가가보고 싶어.”

어쩌면 재희 언니처럼 나도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먼 곳으로 떠나 왔을지도 몰랐다. 태형은 내가 동경하는 부류였다. 반대로 태형이 나의 입장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한국행 티켓을 변경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고 싶었다. 한국의 홍지연과 다른 사람이 되려면 욕심을 내고 무리를 해야 했다. 

 “언니 먼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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