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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향 Apr 20. 2024

너무 열심히 살지는 말자

뒤로 한 발자국

텔레비전을 보시던 아버지가 얘기를 꺼내셨다.      


“경차 있는 거 팔까?”     


집에 있는 두 대의 차 중에 하나를 팔자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오토바이를 사고 싶다는 아빠의 말이었다. 운동 길에 오며 가며 봐둔 오토바이가 있었고 가격이 어떻고 이런저런 설명을 하셨다. 아빠가 저렇게 말을 꺼낼 때는 이미 사전조사를 다 한 후에 이미 살 마음을 먹고 얘기를 꺼내신 거다. 오토바이 얘기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하셨다. 원래 아빠의 계획은 건강해진 엄마와 함께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으니 혼자서라도 다니시는 것을 노년의 작은 취미로 삼기로 했다. 


“아빠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딸로서 안전에 대한 걱정은 당연한 건데 아빠가 조심해서 탈거고 아빠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내가 아빠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게 다였다. 아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라는 건 진심이었다. 언니와 남동생의 생각도 다를 게 없었다. 기꺼이 아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라고 응원해 주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이 되고, 시간과 건강이 허락하니 문제 될 건 없었다. 아빠가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아빠는 무엇을 해야 자신의 삶이 좀 더 평화로워지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 늘 잘 알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이 늘 있었고 또 매번 그걸 해내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엔 아빠의 취미생활이 우리 집 경제적인 상황에 과하다는 생각을 했었다.(어린 시절 늘 돈에 쪼들려했던 엄마의 모습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듯하다.) 막상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 아빠의 삶을 보니 아빠는 아빠를 위해 최선을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가 취미생활을 조금 줄이고 돈을 덜 썼다고 한들, 땅이 생기거나 집이 생길 것도 아니었다. 아빠의 어깨를 누르고 있던 수많은 상황들로부터 숨 쉴 수 있는 구멍을 아빠 스스로 찾아갔던 것이다.  




요즘의 후배 A를 보고 있자면 졸음운전을 하듯 아슬아슬해 보인다. 잠시 눈을 붙이고 가도 될 거 같은데, 애써 졸음을 이겨가며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느낌이다. 그의 삶에는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만 가득 차 보였다. 해야 하는 것들은 실제로 주어진 역할에서 온 의무적인 것들도 있겠지만, 어떤 부분은 스스로가 부여한 역할의 비중과 높은 목표치에서 오는 것이기도 했다. 


후배는 '무기력, 무의욕'이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이라고 표현을 했었다. 물론 의식주에 대한 자잘한 욕구들은 존재하겠지만 그보다 더 고차원적인 영역에서의 욕구는 그다지 높지 않아 보였다. 마음속에 욕구가 있는데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자신의 삶에 원하는 바가 있고 현재의 자신에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힘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해야 하는 것들에 삶이 집중되어 있었고, 그 역할들 속에서 허우적대는 듯 보였다. 그런 후배를 보고 있으니 선배가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뒤로 물러날 수 있도록 공간을 둬라."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한 것 마냥 압박감에 눌린 채로 살 던 나에게 선배가 던진 한마디였다. 앞만 보고 있었다. 나의 역할에만 집중되어 있는 삶이었다. 직장에서 받는 인정과 일에서 보이는 성과들이 보상이라 여겼고 실제로 그런 것들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었다. 가정에서도 다를 게 없었다. 내가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으니, 투병 중인 엄마 옆에 내가 있으니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려고 했었다. 그 역할은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바리케이드였고, 심지어 자물쇠로 단단히 잠가 놓기까지 했다. 숨 쉴 구멍 하나, 뒤로 한 두 발자국 물러나 공간쯤은 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나가떨어진 것이다. 선배가 나에게 그런 말을 것은 당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되었다고 다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를 가둬두지 않고 작은 여유를 누리면서, 깊은숨 쉬어가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 담긴 말이었다.


유달리 빈틈이 없었던 어떤 하루를 보내고 나면 선배가 했던 말이 자주 떠오른다. 지금의 나는 괜찮은 것인 지, 내 뒤에 얼마만큼의 여유가 있는지, 내 몸 하나 누일 공간이 있는가 하고 말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너무 애쓰면서 열심히 살지는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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