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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그렇구나

고속도로가 무서워요

by 김작가입니다

공황이 생긴 이후로 하지 못하는 것 혹은 어려워진 것이 몇 가지 생겼다. 그것은 대부분 과도한 긴장에서 오는 것들이다. 적당한 긴장은 삶을 살아가는 필수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그 '적당함'이 되지 않아서 공황으로 이어지게 된다. 후각이 발달된 사람이 미세한 냄새에도 크게 반응하듯 공황이 생기면 같은 상황에서도 몇 배의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긴장이 시작되면 어떤 경우는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어떤 상황들이 생기거나 생길 것만 같은 긴장이 다시 시작된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이 마구 흔들려버리면 어떤 경우는 단순한 마음컨트롤 만으로 해결이 안 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단순히 사람이 많은 곳 보단 폐쇄된 공간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기차, 비행기, 영화관, 뮤지컬 등의 공연장이 증상을 확연하게 느끼는 곳이 된다. 대부분은 갑작스럽게 가게 되는 곳은 아니기에 이런 경우는 멀미약을 먹듯 약을 미리 먹고는 이용을 한다. 약을 먹지 않고도 내가 괜찮은지 아닌지 시도를 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굳이 도전을 하지 않고 있다.


내가 하기 어려워진 것 중에 하나는 고속도로 운전이다. 국도라 하더라고 고속도로 특성과 비슷한 도로를 운전하는 것은 어려운 게 되었다. 처음 가보는 낯선 도로, 저기 앞에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도로, 난간이 낮은 1차선 고가도로와 같은 곳들은 나에게 과도한 긴장감을 주는 곳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공황이 오고 나서 한참은 아무런 무리 없이 잘 다녔다. 고속도로 운전이 어려워진 것은 고속도로 위에서 공황증상을 한번 겪은 후부터이다.


작년 여름이다. 3시간 거리의 타 지역에 살고 있는 언니네 식구들이 해외를 길게 다녀오면서 반려견을 집에 맡기고 갔다. 언니네 식구가 집으로 돌아왔고 반려견은 다시 집으로 가야 했다. 일주일 뒤 언니가 오겠다고 했지만 나는 아무런 거림 낌 없이 내가 데리고 가겠다고 자신 있게 얘기했다. 이전에도 혼자서 운전해서 언니집을 가본 적이 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변수는 날씨에 있었다.


일요일 저녁이었고 일기예보에 비소식이 있다는 걸 봤다. 장마기간도 아니었고 비가 와봤자 얼마나 오겠나 싶어서 길을 나섰다. 1시간 반쯤 갔을 때 속리산이 가까이 있는 고속도로 어딘가를 지나가는데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왔다. 하늘에서 물을 퍼부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차선도 앞차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국도면 옆으로 빠진다거나 어떤 방법들이 있었을 텐데 빠질 만한 길도 없었고 휴게소나 졸음쉼터 말고는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시간이 이미 해가 져버린 저녁시간이었고 휴게소에 잠시 쉬었다가 간들 비가 멈춘다는 보장도 없었다. 자칫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휴게소에서 날밤을 새야 했을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약을 먹으며 혹여나 졸릴 까 싶어 약도 바로 먹지도 못했다. 그러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급하게 졸음쉼터에 차를 세운 뒤 약을 먹고는 출발을 했다. 이때의 느낌은 마치 내 손과 발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힘이 빠져 핸들과 엑셀을 놔버릴 것만 같은, 정신과 몸이 분리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조금만 가면 된다. 조금만 가면 된다.'


마인트컨트롤을 하며 운전대로 제대로 붙잡고 끝까지 운전을 해서 언니 집에 겨우겨우 도착했다. 도착해서는 오는 데 날씨가 이랬고 고속도로가 이랬고 저랬고 무용담처럼 얘기를 했지만 사실 마음은 언니 집에 도착한 순간 서러움에 울고 싶기까지 했다. 어떻게 겨우 언니 집에 도착했지만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혼자서 다시 운전해서 3시간 넘어 거리에 있는 집으로 가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고는 언니가 운전을 해서 우리 집까지 왔다가 언니는 다시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나에게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공황을 겪은 후로 그 기억이 각인이 되어 고속도로는 나에게 무서운 곳이 되었다. 누군가와 함께 가면 일이 생겨도 수습해 줄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긴장이 아주 조금 덜 하기 하지만 선제적으로 오는 긴장감은 무시할 수 있을 만큼이 아닌 듯하다.


얼마 전 일 때문에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안동을 가야 할 일이 생겼다. 고속도로는 엄두도 내지 않고 국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있었다. 고속도로보다 30분은 시간이 더 걸리지만 그래도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며칠을 고민을 하다 중요한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으니 괜한 도전은 하지 말자 싶어서 그냥 버스를 타고 다녀왔다. 그리곤 몇 주 뒤, 고속도로는 아니었지만 그 비슷한 도로를 혼자서 운전을 하면서 공황이 살짝 올라왔었다. 이전에 수도 없이 다녔던 도로였는데 그 길의 특성을 알아서 공황이 온 것도 같다. 그때 알았다. '이제 안되는구나.' 무리한 도전(?!)은 하지 말자 싶고, 긴장이 따라오는 상황에 나 스스로를 괜히 던지지 말자는 결심을 했다.


내가 충분히 해내던 무언가를 하루아침에 못하게 된 것에 상실감, 자괴감이 제법 크게 들었었다. 내가 공황이 있는 것도 그로 인해 무언가를 못하게 된 것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었다.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했고 용납하지 못했다. 그 생각이 나를 좀 더 위축되게 하고 건강하지 못하게 만든 것 같기도 하다.


안동을 가야 할 일이 또 생겼다. 요전에는 차를 가져갈지 버스를 탈지 며칠을 고민했지만 이번에는 바로 버스 시간을 알아봤다. 운전을 해서 갈 일은 없기에 선택지도 정해져 있고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인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오히려 편해진 듯하다. 나이를 먹는 것도, 관계가 변하는 것도, 공황으로 인해 무언가를 못하게 되는 것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쉬워지고 더 편해진 다는 것을 느끼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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