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20년 여름, 스트레스가 더하고 더하여져 며칠간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출근을 하려면 머라도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꾸역꾸역 식탁 앞에 앉았다가 별안간 과호흡이 왔다. 119를 불러 응급실을 갔고, 위장장애 말고는 눈에 보이는 다른 증상은 없었기에 수액을 맞고 약을 처방받아서 돌아왔다. 괜찮아지려나 했던 몸은 여전히 음식을 넘기기가 힘이 들어 결국엔 입원을 하게 됐다. 위내시경을 포함한 필요한 검사들을 진행했다. 결과상으로 몸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몸만 조금 추스르고 퇴원을 했다. 나의 증상에 대해서 지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공황장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출근을 해서는 호흡이 어려워지는 순간이 찾아왔고 그 길로 바로 정신의학과를 찾아갔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선생님의 한마디에 물풍선을 바늘로 콕 찌른 거 마냥 눈물이 쏟아졌다.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에도 한참을 울었던 적이 있다. 수면 위내시경을 하곤 슬슬 정신이 들려는 순간, 깊은 속에서부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비몽사몽 간이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너무 서럽게, 많이 오랜동안 울었던 거 같다(정신이 들고나니 간호사분들이 괜찮냐고 물어왔다). 몇 년 동안 삼키고 삼킨 눈물이 이제야 나오는 듯했다. 정신의학과에서는 공황발작이 온 거 같다고 했다. 무방비상태로 몸과 마음에 스트레스가 쌓여있었고 제때 비워내지 못한 스트레스가 결국엔 터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3개월은 꼬박 힘이 들었다. 새벽 5시만 되면 의지와 상관없이 잠에서 깨는 날이 많았고, 내 마음은 아무런 보호막이 없이 수많은 생각들에 노출되었다.
지난 몇 년 간 울어야 할 때 울지 않고, 말을 해야 할 때 하지 않고 지나간 날이 많았다. 눈물을 삼키면 그대로 말라 없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배가 되어 차오르기만 했다. 비워낼 곳이 필요했다. SNS에 짧게 짧게 올리는 글로는 택도 없었다. 그러던 중 동네 작은 책방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지런히 끝까지 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었지만, 일단은 머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고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가 이제 일 년이 되었다. 1년 반 전(글쓰기 모임을 시작하기 전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지만 낙방(?!)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일 년 동안 글을 배우고 적다 보니 다시 욕심이 생겼나 보다. 큰 기대는 가지지 않은 채로 브런치 작가에 다시 도전했다. ‘지금 안되면 또 도전하고 계속 도전하지머.’라는 마음으로 신청했는데 덜컥 브런치로부터 축하 메일을 받았다.
글을 쓰는 것, 나의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읽힌 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해야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어디까지 얼마나 오픈할지 쉽지 않은 숙제들이었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는 건 아닌지, 내 얘기가 공감을 받고 있긴 한 건지, 문법은 띄어쓰기는 단어 선택은 적절한 것인지 신경을 써야 할 것들도 많았다. 지난 일 년간 길고 짧게 40편이 넘는 글을 적었다. 분량만 채우자는 마음으로 글을 쓴 날도 많았지만 점차 진짜 나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글은 마음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떠다니던 나를 만나게 해 주었다.
내 삶에 작은 숨구멍 하나 뚫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글쓰기가 여기까지 왔고 새로운 길을 시작점에 서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손끝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에 거짓이 없기를 기대한다. 목적을 가진 이야기보다는 그저 삶을 담아내는 글을 적고 싶다. 마음에서 잘 숙성된 이야기가 손끝을 통해 선하고 따뜻하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박완서 작가님의 글처럼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그 진실과 진심이 누군가의 삶에 닿아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추운 겨울 우연히 만난 포장마차에서 마시는 어묵 국물처럼 지나가는 글 속에서 조금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