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3년 차이다. 맞벌이 부부이며 초등학생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어릴 적 전업주부 엄마 밑에서 삼 남매 중 막내로 자라 라면도 끓이기 싫어 사발면을 먹고 자랐다. 신랑도 비슷하긴 마찬가지다. 서른 평생 설거지를 해 본 것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래서 결혼하기 직전 어머님이 며느리에게 미안해 설거지를 실습으로 시켜 보았다고 하셨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살림에 준비 안 되어 있던 우리가 결혼을 했으니 어땠을까?
당장 먹고는 살아야 한다. 요리책이 오글오글 해지도록 열심히 보고 따라 했으나 요리는 나에게 흥미롭지 않았다. 퇴근 후 재료 손질과 요리를 해서 한식 밥상을 차리는 것 까지 기본이 1시간 반 이상이며 그렇게 서 있다가 요리를 끝내고 밥상에 앉아 먹을라 치면 지쳐서 밥맛이 없기(실제로 별로 맛도 없고) 일쑤였다. 우리 한식은 왜 이렇게 반찬도 여러 가지이며 거기에 국까지 끓여야 하는지 조상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집들이 때 끓였던 미역국은 남편 친구들이 서로 더 먹기를 거부하였다. 그것이 농담인 줄 알고 같이 웃었으나 맛을 보고 진담이 반이상임을 알았다.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니 다행이었다. 한두 시간을 열심히 서서 요리한 음식을 먹고도 선뜻 맛있다고 빈말 따위 해주지 않는 솔직한 남편에게 마음이 늘 상했다. 또한 요리 후 엉망인 싱크대는 남편과 함께 정리한다고 해도 괴로움과 짜증을 안겨주었다. 끼니때마다 밥상 차리기는 나에게 고통이었으며 퇴근시간쯤 '외식하자', '치킨 시켜 먹을까?'라는 남편의 문자는 기쁨과 환희를 가져다주었다.
점점 밥상 차리기에 흥미를 잃었다. 주말마다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신선하지 않지만 간편하게 꺼내 먹을 수 있는 냉동음식을 냉장고에 가득 채워 넣었고, 끓이기만 하면 되고 유통기한은 긴 봉지 국 찌개류를 싱크대에 종류별로 채워두어야 마음이 든든했다. 그리고 이렇게 사둔 간편식들을 버리지 않기 위해 흡사 미션을 클리어하듯 하나씩 비워갔다. 냉동실을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맛으로 먹는다기 보단 그냥 살기 위해 먹는 냉장고 털이식 밥상 차리기였다. 가족들이 내가 차린 밥상을 맛있게 먹으면 죄책감이 느껴질 때도 있었으니 내가 차린 밥상에 어떤 긍정적 에너지도 없음이 확실했다. 하면서도 너무나 하기 싫은 방학 직전 일기 같은 밥상 차리기였던 것이다.
엄마를 떠올렸다. 30년 동안 엄마의 밥상을 받고 살아왔는데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우리의 밥상을 차려주었을까. 참으로 고단했을 것이다. 하루에도 3번씩 찾아오는 그 밥상 차리기가 죽을 만큼 싫었던 적도 있었겠지. 내색 없이 30년을 묵묵히 차려준 엄마의 밥상이 숭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엄마의 솜씨를 조금도 닮지 않은 나를 보고 절망했다.
그러던 중 변화는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대학가였던 번잡한 동네를 떠나며 새로운 동네에 정착을 했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지만 아파트가 많고 학령기 아이들이 많은 동네였다. 유치원 하원 시간이 될라치면 유모차를 끈 엄마들과 아이들이 길을 막을 정도였다. 아이들 키우기에 편안한 동네였다. 새로운 동네는 대단지 아파트 촌이라 가게들이 참 많다. 야채와 과일이 신선한 로컬푸드 매장, 다양한 행사를 하는 프랜차이즈 슈퍼, 아이 입맛인 나에게 딱 맞는 단짠단짠 한 반찬집이 무려 3개, 단팥빵이 맛있고 소시지 빵이 맛있는 빵집, 스콘이 맛있는 작은 카페, 갓 튀긴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기는 닭강정집, 늘 인사를 하며 친근한 요구르트 아줌마, 손이 빠른 사장님의 오징어회 트럭, 무뚝뚝하지만 묵묵한 붕어빵 트럭, 수요일마다 오는 닭꼬치 트럭과 가끔씩 선물처럼 오는 꽃 트럭까지.
늘 차를 타고 먼 직장을 출퇴근을 하며 유치원 차에서 아이를 받기 위해 서둘러 퇴근하던 날들을 뒤로하고, 막내가 초등학교에 가며 아이 둘이서 스스로 등하교하는 시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나도 그 동네의 직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 인 직장을 걸어 다니게 되었다.
마음의 여유 때문일까. 이제는 퇴근시간이 가까워오면 오늘 저녁은 어떤 밥상을 차릴지를 즐겁게(놀랍게도) 상상한다. 한식 밥상 차리기는 가짓수가 많기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내가 잘하는 종류의 국을 요리하기로 결정하면 반찬 한 가지 정도는 좋아하는 반찬가게에서 산다. 로컬푸드에서 값싸고 신선한 야채를 사고 자주 들르는 식육점에서 고기를 사서 한 두 가지 요리만 집중해 요리한다. 또한 로컬푸드에서 신선한 과일을 사거나 맛있는 빵집에서 스콘을 사서 디저트로 먹을 즐거운 상상을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즐겁게 요리하되 가짓수가 많은 한식 밥상 차리기가 스트레스가 되지 않도록 가게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퇴근하면 동네를 걸어 다니며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린다. 걸어서 퇴근하며 참새가 방앗간 찾아가듯 내가 좋아하는 가게들을 들린다. 친근한 가게 점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소소하며 즐겁다.
퇴근 후 걷기와 쇼핑의 기분 좋은 컬래버레이션은 밥상까지 이어진다. 아버님이 시골에서 갓 찧어 보내주신 하얗고 맑은 쌀로 밥솥에 밥을 안치고, 식육점에서 방금 산 냉동되지 않은 소고기 양지를 고소한 참기름에 볶는다. 얼려둔 다진 마늘이 아니라 생마늘을 직접 다져 소고기와 함께 볶는다. 소고기가 듬뿍 든 고소한 미역국이 된다. 단짠단짠 반찬집에서 산 고등어조림을 예쁜 접시에 담고, 친정엄마가 만들어진 쥐포 무침과 시어머님이 만들어 주신 열무김치를 정갈하게 담는다. 신선한 오이를 생으로 썰어 견과류를 넣은 쌈장과 함께 내어 놓는다. 반찬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운이 좋다면 기분 좋게 만난 꽃 트럭에서 산 꽃을 식탁에 함께 놓는다. 기분 좋게 차린 밥상은 나의 손길이 다 담겨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나의 즐거움이 요리에 조미료처럼 쳐져있다. 나의 즐거움은 전염성을 가져 밥상을 같이 나누는 가족들에게 이어진다. 밥상을 받으며 하루를 보낸 이야기를 아이들과 남편과 즐겁게 쏟아낸다. 요즘은 내가 차린 밥상에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그렇게 행복하다. 저 신선한 자연으로 만든 음식이 내 가족에게 피와 살이 되겠구나. 나는 이렇게 밥상 차리기에 빠졌다.
과거 내가 차린 밥상의 음식이 맛이 없었다고 기억되는 것은 결국 나의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고역 같았던 밥상 차리기에 대한 나의 마음이 실은 요리에 담겼을 거다. 그 부정적인 마음이. 그래서 먹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고되기는 마찬가지였을 거다. 내가 요리하며 즐겁기에 그 음식도 그 긍정적인 에너지를 조미료 삼아 맛있고 즐거운 밥상이 되는 것이다. 요리도 행복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닮은 구석은 별로 없지만 우리 동네가 꼭 영화 노팅힐 속 포토벨 마켓 같다. 오늘도 그 길을 걸으러 나가야겠다. 우리 가족을 위한 건강한 밥 한 상 차리기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