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모든 관계는 층위가 있다.

by 수리
샤갈 (Marc Chagall), 생일 (Birthday), 1915, MoMA


젊고 잘생긴 남자와,

늙고 배 나온 남자 중 한 명을 골라야 한다면 ?


혹은 이렇게도 바꿔볼 수 있다.

열정적이지만 게으른 남자,

독립적이지만 성실한 남자.


혹은 파트너에 대한 자세로 두 남자를 알아볼 수도 있다.

파트너에게 모든 걸 다 쏟아붓는 듯한 기대는 성향의 남자,

외롭게 하지만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고 자신의 어깨를 파트너를 위해 내어 주는 남자.



- 서지사항

책제목: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 (Françoise Sagan)

출판사: 민음사

출판연도: 2008.05.02

(Original text published in 1959 /

entitled Aimez-vous Brahms...)

쪽수/무게: 160쪽, 252g



폴은 실내장식 일을 하는 서른아홉의 여성이다. 폴에게는 오랫동안 만나온 로제라는 자신보다 약간 더 나이가 많은 남자와 사귀고 있다. 폴은 반 덴 베시라는 미국 여성의 집에 실내장식 일을 하러 갔다가, 그 집의 아들인 시몽을 만나게 된다. 스물다섯의 시몽은 폴에게 반하게 되고,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는데, 폴은 시몽에게 끌리면서도 로제와의 관계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에 당황해하고 어쩔 줄 몰라한다.


흔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는 전형적인 삼각관계의 연애소설로 소개된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서로 다른 세대와 성별의 사람들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외로움과 고독을 경험하는 이야기로 읽었다. 연인도 있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직업도 있으며 패션센스도 있고 얼굴도 몸매도 예쁜 은 로제와의 관계에서 끝없는 외로움을 느낀다.



침대에 길게 누워 두 눈을 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시간, 긴장을 풀 시간, 휴식을 취할 시간, 하지만 저녁마다 반드시 휴식을 취해야 할 만큼 고단하게, 낮 동안 자신이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몰두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 창문에서 저 창문으로 배회하게 만드는 이 불안정한 무기력이 어떤 것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이면 느끼곤 했던 무기력이었다. (10)


정맥이 드러나 손가락 쪽에서 돌출되기 시작하면서 이리저리 뒤얽혀 있었다. ‘내 삶을 반영하는 것 같군.’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다음 순간 그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녀에게는 마음에 드는 직업이 있었고, 그다지 후회스럽지 않은 과거와 좋은 친구들도 있었다. 그리고 지속적인 이성 관계도 있었다. 그녀는 로제에게 고개를 돌렸다. (14)


그녀는 한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녀는 완벽한 안정감과 더불어 자신이 그에게 완전히 익숙해져 있음을 느꼈다. 로제 이외의 누군가를 사귀는 일 같은 건 결코 할 수 없으리라. 그녀는 그런 안정감에서 서글픈 행복을 끌어냈다. (17)



폴은 시몽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시몽의 잘생긴 얼굴 그리고 자신보다 어린 그 젊음 자체인 시몽에게 매료되지만, 동시에 자신의 현재와 비교하며 절망한다. 결국 시몽을 밀어내고, 스스로 다시 고독 속으로 들어간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작가는 폴의 외로움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폴은 그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 번이고 용기를 내어 로제에게 말하려 하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한다. 그 외로움을 벗어나게 해 줄 시몽이라는 존재가 나타났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폴은 다시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즉 타인에 의해 경험했던 외로움을 스스로 자신에게 돌려 고독하게 만든다.


반면에 시몽은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젊고 잘생기긴 했지만, 왠지 무료해 보이고 일이나 그 어떤 것에도 성실하지 않다. 시몽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고독의 상태에 있지만, 폴을 만나 자신의 열정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존재를 찾아낸다. 폴과는 달리 시몽에게 그녀의 나이 그리고 모습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조건을 따지지 않고 폴이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데, 결국 이런 거침없는 걸러지지 않은 맹목적인 사랑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시몽을 떠나게 하는 이유가 된다. 시몽은 폴에 의해 외로운 상태가 되지만, 이전의 고독과는 다른 상태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경험하는 외로움이기 때문에 죄책감과 무료함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다면 폴의 오래된 연인인 로제는 어떨까 ?

로제는 폴이라는 연인이 있지만, 끊임없이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는 소위 말해 바람둥이이다. 하지만 문제는 폴도 그걸 알고 있고, 로제도 폴이 그 사실을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서 프랑스의 문화에 꽤나 놀랐는데, 1959년에 출간된 소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이때 한국은 1945년 해방 이후 독재 정권이 있던 시대에 있을 수도 없는 꽤나 충격적인 소재이다.

로제는 폴이라는 안정적인 연인이 있으면서도, 그녀의 집에는 올라오지 않고, 규칙적으로 만남도 피한다.



하지만 그는 걷고 싶었고, 거리를 가로지르고 싶었고, 이리저리 배회하고 싶었다. 보도 위에 울리는 자신의 발소리를 듣고 싶었고,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이 도시를 살펴보고 싶었으며, 그러다가 어쩌면 늦은 밤의 어떤 기회를 포착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19)


혹시 그 말은, 그녀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는 순간, 그들의 사랑이 더 이상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중요하고 명백하게 여겨지는 순간, 사랑이, 그리고 밤이 그에게서 끌어낸 충동적인 약속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로제가 그녀의 집을 나서는 순간, 보도 위에서 그 자신이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존재라는 강한 자유의 냄새를 맡는 순간, 그녀는 또다시 그를 잃고 말리라. (49)



로제는 폴을 만나면서 동시에 젊은 애인인 메지도 만나는데, 두 여자 사이에서 그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로제의 이 자유에 대한 갈망은 두 여자를 만나면서도 해소되지 않는다. 메지와 함께 간 여행지에서 로제는 메지에게서 벗어나 차라리 혼자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로제가 혼자라는 것은 절대적인 혼자가 아니다. 로제는 자유를 원하면서도 절대적으로 혼자가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저 여자가 화가 난 나머지 튕겨지듯 자리에서 일어나 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가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함께 다닐 만한 길 잃은 개를 한 마리 찾아내 하루 종일 들판을 돌아다닐 텐데.’ 그는 완전히 혼자가 되는 것은 두려웠던 것이다. (125)


혼자가 되고 싶지만 완전한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운 로제는 이기적으로 폴을 붙잡고 되찾으려 한다.


이것은 어쩌면 외로움 그리고 고독에 대한 글로서, 사강은 각기 다른 세 사람의 입장에서 외로움과 고독이 만났을 때,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지만 언제나 그 가능성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마치 잠시 흩어졌던 자성이 있는 금속처럼, 이 세 인물은 서로의 존재에 이끌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 자리가 꼭 맞지 않더라도, 너무나 익숙해지고 나태해져 그곳이 자신의 자리라고 믿게 된다.


이 책의 장르를 로맨스로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의 감정을 깊게 탐색하는 심리학에 가까운 것 같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혹은 이 책을 독서모임에서 선택한 나에게 “로맨스 장르를 좋아하시나 봐요.”라고 물으면 곧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그 이유가 나조차도 계속 궁금했었다. 분명 세 사람의 관계가 이야기의 주제이고 사랑에 관한 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왜 나는 그 부분에 공감하지 못할까 하고 말이다. 그 이유는 세 사람의 연애 그리고 사랑에 관한 표면적인 이야기 아래에 각기 다른 사람들의 외로움, 고독, 그리고 우울에 관한 이야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


이번으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를 세 번째 읽었는데, 처음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우선은 민음사에서 나온 책 중에 꽤 얇은 책에 속해서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고, 그다음은 이전 버전의 책 표지에 있었단 샤갈의 그림 때문이다. 그 당시 마르크 샤갈을 좋아하기도 했고, 처음 책을 다 읽은 후에 표지의 그림인 “생일”이 이 소설과 정말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20대 후반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폴에 대한 답답함과, 폴의 최종적인 결정에 대해 울화가 치밀었다. 왜 굳이 그런 선택을 해야 했을까, 원래대로 돌아갈 거라면 왜 그런 소동을 일으켰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고 30대 중반이 되어 다시 이 책을 읽어보니, 폴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안타깝기도 하면서 나라도 폴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과는 달라진 나에게 놀랐다.


시몽이냐 로제냐 하는 문제는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엄청난 관심과 토론을 불러올 수 있는 주제인데, 특히 최근 독서모임에서 나왔던 의견들이 흥미로웠다.

남자들은 모두 로제를 선택했다. 여자들은 대부분 시몽을 선택했고, 단 한 명만이 로제를 택했다.

꽤나 흥미로운 결과였는데, 로제를 선택한 사람은 그가 바람둥이이고 폴을 외롭게 만들지만, 그래도 언젠가 폴에게 다시 돌아오고 직업도 있는 데다가 현실적인 남자라고 말했다. 로제의 행동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메지를 만나는 과정이 로제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익을 위한 행동이기 때문에 로제를 나쁘게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시몽을 선택한 경우에는 그의 외모가 우선은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고, 로제와는 달리 그는 폴을 외롭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시몽도 로제처럼 나이가 들 텐데, 그러면 조금이라도 어리고 폴을 위해서 살아가는 파트너가 좋다고 했다.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를 처음 읽었을 때는 무조건 시몽을 선택했다. 두 번째도 비슷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약간 폴에 대한 답답함과 시몽의 어리광이 지겹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시몽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단편소설을 쓸 때 시몽을 상상하며 쓴 글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세 번째 정독을 했을 때 나는 로제를 선택한다. 로제가 시몽보다 더 낫다기보다는 나에게 초점을 맞춘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내가 만약 이 상황에 있었다면, 나보다 어린 시몽에게 끊임없는 질투와 열등감을 느꼈을 것 같다. 뒤로 느껴지는 사람들의 시선과 구설수, 나이가 들어가는 나의 모습과 대비되어 젊음을 즐기는 나보다는 조금 더 우위에 있는 것 같은 시몽을 보며 분명 언젠가는 이 만남을 끝냈을 것이다. 시몽의 잘못이 아니라, 오히려 나 스스로가 자격지심을 느껴서 이 관계를 포기할 것이다. 반면에 로제와의 관계는 사실 내가 조금 더 우위에 있을 것 같다. 로제는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을 테고 외모가 그리 좋은 사람도 아니다. 직업이 있기는 하지만, 나와 비슷한 혹은 조금 더 못한 직업일 것 같고, 나에게 완벽하게 집중하거나 맞춰주지는 않지만 내가 기분이 나쁠 때는 나의 눈치를 보며 나의 기분을 맞춰주려 한다.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로제와의 관계에서는 내가 어느 정도는 한 계단 위에서 그를 대할 수 있다.



어쩌면 모든 관계는 평등하지 않다.

모든 관계는 층위가 있다.

그리고 누가 위에 서 있느냐는 결국

모든 걸 바꿔버린다.



2025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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