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형광색에 대한 고찰

형광은 촌스러워

by 수리


형광색은 촌스러워.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는 형광은 비 오는 날 교통경찰들의 몸을 밝게 비추어 오고 가는 운전자들을 지킨다.

심해 깊숙이 사는 심해어들에게도 형광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형광색을 피하는가.

왜 형광색을 촌스럽다고 생각할까.


아 ! 주변과는 다르게 눈에 띄기 때문에 싫어하는 걸까.

그렇다면 왜 나는 눈에 띄고 싶지 않을까.


나는 누군가의 눈에 띄는 형광이 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림자의 품에 안겨 회색이 되고 싶다.


그러나 그전에 형광이란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 알아야 싫어하는 명분이 생길 것 같은데.

빛을 받으면 그 빛을 흡수하고, 빛이 제거 됐을 때, 흡수했던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을 야광이라고 한단다.

빛을 받을 때 자극에 의해서 발광하지만 빛을 제거하면 바로 소멸해 버리는 것을 형광이라고 한단다.


형광은 지속성이 없다. 형광은 어느 것도 빼앗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대로 발산한다.

어찌 보면 형광은 양심적이다. 빼앗지도 더 보여주지도 않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받은 모든 걸 내보인다. 형광은 솔직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심해의 생물들에게 관심이 많다. 심해의 어두운 곳에서도 밝은 그 생물을 왜 좋아할까 생각해 보면 심해 생물들은 몸통 한가운데서 빛을 내는 형광 물질에 의해 빛이 난단다.

심해 생물들이 화학반응을 통해 빛을 내는 현상을 생물 발광 현상이라고 한다는데, 빛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란다.


그렇다면 나는 빛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걸까.

그림자 같은 회색이 되고 싶다면 빛이 존재해야 하는데, 그러면 빛에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형광은 스스로 빛을 낼 수 있으니 스스로가 빛이 될 수도 스스로가 중심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형광을 싫어했던 이유는 내 안의 빛을 아직 찾지 못해서 그런 걸까.

나 스스로가 빛이 될 수 있을까. 빛 없이도 스스로 빛날 수 있을까. 발광할 수 있을까.


형광색 옷은 입기 싫지만

형광은 좋아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서평]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