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 않은 자리
판도라의 상자처럼 단 하나의 감정만이 상자 안에 남아있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이 지속성이라면 좋겠다.
재작년에 예쁘다고 소중하다고 하나하나 고이 집까지 모셔와 책 사이사이에 넣어둔 단풍잎이 오늘은 아무런 감흥이 없다.
이 셔츠에 저 재킷을 매치해서 열심히 레이어드를 했던 3년 전의 나는 바지에 달랑 티셔츠 하나를 걸친 오늘의 나와 대비된다.
이것도 저것도 다 해보고 싶던 에너지와 활기로 가득 찬 5년 전의 나는 하루가 길게만 느껴지는 오늘의 나와는 다르다.
세 남매가 함께 오손도손 살았던 우리 집에 더 이상 막내는 같이 살지 않는다.
중학생 때 우리 집에 오셔서 우리를 돌봐주시고 자장면을 사주셨던 할아버지가 오늘은 안 계신다.
할아버지가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우리 가족이 어렸을 때처럼 계속 함께 같이 살았다면,
내가 아쉬워하는 모든 게
조금은 더 오래 지속되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으려나
조금은 위로가 됐으려나
아니면
변화를 찾아 떠났으려나
여러분은 어떤가요.
사라진 것들의 자리를,
아직도 마음속에서 느끼고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