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성냥팔이 소녀 '브런치 x 저작권위원회'
호야는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었어. 아빠가 빨리 잠들기만 기도했지.
쪽창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이 깜박거렸어. 아빠가 코를 골며 잠이 들었어. 호야는 그제야 참았던 오줌을 누려고 몸을 일으켰어. 그런데 너무 오래 쪼그리고 앉아있었나 봐. 일어나다가 방바닥에 널브러진 술병 하나를 건들고 말았어. 그 술병이 굴러 다른 술병을 건들었지. 술병 부딪히는 소리가 방안에 울렸어. 호야는 일어 나려다 얼음이 되었어. 아빠가 움직였거든. 호야는 마렵던 오줌이 쏙 들어가 버렸어. 아빠는 이리저리 팔을 휘두르곤 다시 코를 골아댔어.
“후유.”
호야는 긴 한숨을 내 쉬며 다리를 펼 때였어.
“장 씨 들어왔나? 신발이 있는 거 보니 방에 있나 보네.”
2층 주인아저씨가 방문을 덜컥 열었어. 호야는 아저씨를 보며 얼른 입술에 손가락 하나를 갖다 대었지. 그러자 아저씨가 나오라는 손짓을 했어. 호야는 조용히 방을 나갔어.
밤바람이 찼어. 아저씨가 작은 상자 하나를 호야에게 주었어.
“동에서 나온 거다. 크리스마스라고 주는가 보더라.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르지만, 그냥 감사합니다 하면 된다. 그나저나 네 아빠 저리 술만 먹어서 큰일이다. 마누라 죽은 사람이 어디 이 세상에 제 혼잔가. 불쌍한 우리 호야를 생각해야지.”
아저씨가 호야 머리를 마구 헝클었어. 호야는 가만히 상자만 꼭 안고 있었지.
“호야 몇 살이고?”
“일곱 살입니다.”
“세월 참 빠르다. 호야, 아빠 아파서 저런 거다. 마음에 병이 든 거야. 병을 술로 치료하려니 큰일이지. 네 학교 들어가기 전에 병이 나야 할 건데. 다른 약을 찾아야지. 쯧쯧. 춥다. 호야 얼른 들어가라.”
호야는 인사를 꾸벅하고 방으로 들어갔어. 호야는 상자를 열었어. 상자 안에는 스케치북, 크레파스, 색연필, 공책, 동화책, 그리고 맨 아래에 초콜릿이 들어 있었어. 달콤한 초콜릿이. 호야는 침이 꼴딱 넘어갔어. 저녁에 라면만 몇 젓가락 먹었거든.
호야는 초콜릿을 상자에서 꺼냈어. 플라스틱 안에 하나하나 금박지로 포장이 되어 있는 비싼 초콜릿이었어. 호야 눈이 반짝거리고 심장이 팔딱팔딱 뛰었어. 호야는 초콜릿 하나를 꺼냈어. 조심조심 금박지를 뜯으려는데 아빠가 신음을 내며 몸을 뒤척였어. 그러더니 자면서 눈물을 흘렸어.
“호야 아빠가 미안…….”
호야는 좀 전에 아빠가 세게 잡았던 오른팔을 주물렀어.
‘괜찮아요. 오늘은 때리지 않았잖아요. 아빠.’
“아빠가 아파서 저런 거다. 다른 약을 찾아야지.”
2층 아저씨 말에 호야는 뜯으려던 초콜릿을 플라스틱 안에 다시 넣었어. 호야는 초콜릿을 안고 집을 나섰어.
눈이 내렸어. 호야는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를 내려다보았어. 그리고 품에 안은 초콜릿을 쳐다보았지.
“아빠는 아파. 2층 아저씨가 술 말고 다른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어. 아빠 약을 사야 해.”
길게 이어진 고불고불한 골목길을 호야는 눈을 맞으며 걸었지. 전봇대에 매달린 가로등이 호야 걸음을 밝혀 주었어. 큰길을 따라 음악이 들리는 곳으로 향했어.
-징글벨, 징글벨. 기쁘다 구주 오셨네.
신나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는 곳에서 호야는 걸음을 멈췄어. 호야는 플라스틱 상자를 열어 금박지 초콜릿 하나를 꺼냈어.
‘초콜릿 사세요.’
호야는 초콜릿을 들고 가만히 외쳤어. 속으로.
‘초콜릿 사세요.’
호야가 들고 있는 초콜릿에 눈 송이 하나가 내려 앉았어. 호야는 눈을 얼른 집었어. 눈은 사라지고 없었어.
“엄마, 저 형아 좀 봐. 춥겠다.”
엄마랑 손을 잡고 걸어가던 꼬마가 호야를 보고 말했어.
“신경 쓰지 말고 빨리 가. 너도 엄마 말 안 듣고 게임만 하면 저렇게 돼.”
꼬마 엄마가 호야를 쌩 지나쳐 갔어.
“어머 꼬마야, 이렇게 추운데 외투도 안 입고, 슬리퍼 차림으로 뭐 하는 거니?”
얼굴이 예쁜 누나가 걸음을 멈췄어.
호야가 금박지 초콜릿 하나를 얼굴 예쁜 누나에게 내밀었어.
“더럽게.”
얼굴 예쁜 누나랑 같이 있던 남자가 호야 손을 '탁' 쳤어. 그 바람에 초콜릿이 땅에 톡 떨어졌어. 호야는 얼른 초콜릿을 주웠어.
하얀 눈이 펑펑 내렸어, 호야 머리에도 호야 어깨 위에도 호야 슬리퍼 위에도.
호야는 너무 추워 들고 있던 초콜릿 금박지를 뜯었어. 손이 얼어 잘 뜯기지 않았지. 호야는 동그란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었어. 호야 볼이 불룩 튀어나왔어. 호야는 초콜릿을 깨물었어.
달콤한 초콜릿이 호야 입안에 퍼졌어. 그때였어.
“호야, 호야. 어딨어? 아이 그렇게 꼭 숨어 버리면 어떡해. 호야 미워.”
노란 유치원복을 입은 여자아이 하나가 호야를 찾으려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어. 호야는 창문 커튼 뒤에서 입을 손으로 꼭 막고 숨어 있었어.
호야가 눈을 비비며 커튼을 열려고 하니 사라졌어.
호야는 초콜릿 하나를 꺼내 뜯었어. 입에 쏙 넣었어. 이번엔 쌉쌀한 맛이 느껴졌어.
벽난로에 장작이 활활 타고 있는 따뜻한 집이 나타났어.
“우리 예쁜 호야 이리 온, 옳지, 옳지. 천천히. 넘어지지 않게.”
긴 드레스를 입은 아줌마가 다정하게 호야를 부르며 손짓하고 있었어.
호야는 당장이라도 그 벽난로가 있는 따뜻한 집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 그래서 오른발을 내디뎠지. 벽난로 집은 사라지고 없었어.
“엄마야?”
호야는 어릴 때 하늘나라로 간 엄마를 알아볼 수가 없었어. 아빠가 엄마 사진을 모두 태웠기 때문이지. 호야는 좀 전에 본 아줌마가 분명 엄마 같았어. 그래서 초콜릿을 하나 더 먹었지. 초콜릿의 쓴맛이 호야 입안 가득했어.
“왜 울어. 왜 우냐고? 너 때문에 엄마가 죽은 거잖아! 네가 울지만 않았어도 엄마는 죽지 않았다고.”
아빠가 호야를 때리고 있었어, 호야는 아팠어, 하지만 울음소리를 낼 수가 없었어, 호야는 속으로 엉엉 울었지. 우는 호야가 초콜릿을 들고 있는 호야를 보고 아주 작은 소리로 말을 했어. 호야는 우는 호야의 입 모양을 가만 따라 해 보았어.
“도망가, 소리쳐. 도와 달라고.”
호야가 말을 다 따라 하는 순간 우는 호야가 사라졌어.
호야는 초콜릿을 하나만 남겨 놓고 다 먹었어. 하지만 유치원 친구도, 엄마도, 우는 호야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어. 호야는 마지막 남은 초콜릿을 입에 넣었어. 달콤 쌉쌀 쓴맛을 느끼며 호야는 한발 한발 내디뎠어. 캐럴이 흘러나왔어.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
“아프면 울어야지, 왜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 데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산타 할아버지 바보.”
호야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어. 호야 손에는 초콜릿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