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모자에 눌러진 젖은 머리카락, 홀쭉한 볼, 앙다문 입술. 축 처진 어깨. 오늘도 10바퀴를 돌고야 말았다. 엘리베이터가 5층에 멈췄다. 나는 익숙하게 차례를 기다렸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빠를 보기 위해서. 벌써 석 달째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회용 장갑을 끼고 보호복도 입었다. 아빠는 입구에서 쭉 들어가 왼쪽으로 돌면 유리방에 누워있다. 나는 한 번 더 손 소독을 하고 유리방으로 들어갔다. 올 때마다 간호사 언니가 눈치를 준다. 학생이 이런 병실에 오는 게 안 좋다고 하면서. 나도 알지만, 아빠가 보고 싶은 걸 어떡하란 말인가.
“아빠. 나 왔어. 좀 어때? 아직도 많이 아파?”
아빠는 나를 보곤 눈웃음을 지었다. 목에 호수가 꽂혀 있어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입 모양으로 아빠 말을 알아듣는다.
'우리 딸 왔구나. 수영장 갔다 왔네? 오늘은 몇 바쿠 돌았어? 시간은 얼마나 걸렸고?’
아빠는 쉬지 않고 나에게 말을 했다.
“아빠 말대로 10바퀴 돌았어. 시간도 최고 찍었고. 내 걱정은 하지 마. 나도 이젠 5학년이야. 아파 누워서도 잔소리할 거야? 그럼 내일부터 안 올 거야.”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아이코 우리 딸 화가 났구나. 미안.’
아빠 눈이 나에게서 떨어지질 않는다.
“그만 말해. 목에 안 좋아. 엄마가 아빠한테 자꾸 말 시키지 말라고 했단 말이야.”
‘알았어. 엄마 보고 싶다…….’
아빠 눈이 젖었다.
“엄마 요즘 많이 바쁜가 봐. 휴가철이라 일손이 모자라 맨날 늦게 집에 와. 이번 주말에 아빠 보러 온 데.”
‘인아야, 아빠가 들려주던 인어 왕자 얘기 기억나?'
"갑자기 웬 인어 왕자 얘기?"
아빠는 내가 들어 온 후 처음으로 눈을 천장으로 돌렸다. 멍하니 생각에 젖었다.
‘인아야, 저번에 얘기한 그다음 얘기를 해 줄게. 잘 들어.’
“지금? 하지 마. 나중에 퇴원하면 해 줘.”
‘아냐. 지금 해야 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싫어. 안 들을래."
나는 두 손으로 양쪽 귀를 막았다. 어차피 아빠 말은 들리지 않는데 바보같이……. 아빠는 내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천천히 했다.
'사실 그 인어 왕자 얘기 아빠 얘기야. 아빠가 그 인어 왕자야.'
나는 손으로 귀를 막았다 뗐다를 반복하면서도 내 눈은 아빠 입을 보고 있었다.
"뭐?"
나는 귀를 막고 있던 손을 내리고 아빠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였다.
"면회 시간 끝났어요. 나가 주세요"
간호사 언니가 문 앞에서 버티고 있었다.
'인아야 잘 가.'
나는 나오면서 여태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아빠 다리를 쳐다봤다. 하얀 병원 천으로 덮어져 있었지만 뭔가 텅 빈 것 같았다. 아빠는 지금 목소리도 두 다리도 잃어버렸다.
아빠는 틈만 나면 인어왕자 얘기를 들려주었었다. 세상에 인어 공주 얘기만 알려졌지 인어 왕자 얘기는 아무도 모른다고 투덜거리면서. 처음엔 동화책에서 읽은 첫눈에 뻑 간 가슴 아픈 사랑 얘기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의 인어 왕자 얘기는 조금 달랐다. 인어 공주와 다르게 인어 왕자는 사람으로 변해 공주와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바닷속 마녀와 사람이 될 때 했던 약속이 있었다. 결혼생활이 그리 길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마지막은 인어 공주처럼 물거품이 된다는 얘기였다. 아빠는 인어 왕자 얘기를 할 때는 정말 바닷속에서 살 다 나온 사람처럼 리얼 그 자체였다. 아빠 눈빛도 반짝거렸다.
아빠는 수영을 잘했다. 물속의 아빠는 정말 한 마리 인어 같았다. 수영장을 들락거렸지만, 이상하게 바닷가는 절대 가지 않았다. 아빠는 바다에 가면 안 된다고 했다. 그때마다 내가 왜 안 되느냐고 물으면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이상한 말을 하곤 했었다. 여름만 되면 매번 다퉜다. 나는 바닷가로 가자고 하면 아빠는 산으로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매미가 요란하게 울어대던 여름 끝자락에 결국 엄마와 나의 곁을 떠났다.
"죽으면 꼭 바다에 뿌려줘."
아빠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우리는 아빠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엄마와 나는 하얀 보자기에 싸인 아빠를 안고 가까운 바닷가로 갔다. 아빠는 이 세상의 혼자였다. 어렸을 때 왜 친할아버지 할머니가 없냐고 물으면 아빠는 슬픈 표정만 지었었다.
우리는 바위가 둘러싸인 한적한 곳에서 보자기를 풀었다. 상자 뚜껑을 열자마자 엄마가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당신이 인어 왕자라는 거 믿어. 내가 뭐라고 바보 같은 나 때문에……."
엄마는 아빠를 한 줌 쥐고 울음을 토해냈다. 아빠는 출렁이는 바람을 타고 바닷물로 내려앉았다.
나는 하얀 장갑을 벗었다. 손이 떨렸다. 이게 아빠를 만질 수 있는 마지막인데. 옆에서 엄마는 울먹이며 아빠를 보내고 있었다. 나도 아빠를 한 줌 쥐어 살며시 바다로 보내주었다.
바람이 불었다. 엄마와 나는 한참 바위에 앉아 있었다. 바람이 불자 파도도 더 세게 일었다.
-첨벙.
저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바다를 쳐다보았다.
-첨벙.
뭔가가 첨벙거리며 바다를 헤엄쳤다.
"엄마. 저기 봐."
내 말에 엄마도 고개를 들어 바다를 쳐다봤다.
하얀 햇살에 바다가 반짝거렸다.
"비늘이 반짝여."
"아빤가 봐. 분명 아빠……."
나는 첨벙거리는 뭔가가 비늘이 반짝이는 뭔가가 아빠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첨벙거리다가 잠깐 멈추는가 싶었다.
엄마가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아빠도 손을 흔들었다. 아빠는 곧 깊고 푸른 바닷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