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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혈청년 훈 Feb 05. 2023

더 글로리 - 문동은이 법으로 복수하려 했다면, 가능?

우리나라 사법현실의 문제점


최근 송혜교씨가 주연한 더 글로리가 적잖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와이프가 푹 빠져서 추천해서 옆에서 같이 좀 보았는데 보는 사람이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지는 학교폭력에 대한 복수를 주제로 굉장히 흡입력 있게 전개되는 것이 곧 공개된다는 시즌2가 기다려지는 드라마였습니다.


그런데 문득 든 생각이 있습니다.

'문동은이 법으로 복수를 하려고 했다면?'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불가능하거나 내가 처벌받을 것을 각오해도 복수가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의외로 이 주제를 생각하다보니 대한민국 사법현실의 문제점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부터는 어려운 법얘기(최대한 쉽게 쓰겠습니다만), 우울한 얘기는 보기 싫다는 분들은 스킵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민사, 형사, 여론전의 3가지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1. 민사소송 - 소멸시효 완성


글로리 박연진 등 가해자와 피해자 문동은(송혜교 분)은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으니 채무불이행에 관한 민법 제390조가 아닌 불법행위에 관한 제750조가 문제됩니다.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박연진의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면 법은 필요없을 것이고 문동은의 피해를 손해가 아니라고 할 판사는 업을 것입니다.


문제는 소멸시효입니다.

민법은 제766조는 제750의 불법행위 소멸시효를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있었던 날로부터 10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가해자는 피해 당시 당연히 알았던 것이고 작중 문동은은 17년만에 복수에 나선 것으로 나옵니다.

그렇다면...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멸시효 기간은 이미 경과했습니다.


특별한 사정이란, 소멸시효의 진행이 언제나 절대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고 청구, 압류, 승인 등 민법 제166조의 내용 또는 판례가 인정하는 법률상/사실상 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중단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작중에 묘사되는 문동은 모친의 태도(곧 설명하겠습니다만), 당시의 경제상황, 조력자 부재 등을 고려할 때 시효중단 조치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2020.10.20. 민법 제766조제3항이 신설되어 미성년자의 성적침해에 대한 소멸시효는 성년이 되기까지는 진행되지 않습니다.

문동은은 작중 전재준에게 성적피해를 당한 것처럼 묘사되는데 일단 이런 사실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두 가지 문제가 걸려서 전재준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첫째는 해당 민법 개정안의 부칙 제2조는 개정 이전에 피해가 발생하였고 법 시행 당시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것을 대상으로 하는데 살펴본 바와 같이 이미 10년이 지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둘째로 설령 개정 조항이 적용된다고 할지라도 문동은이 성년이 되고 다시 10년이 경과한 것은 명백하므로 민사적으로는 어떻게 해도 책임을 묻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참고로 소멸시효란 해당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함을 정한 것인데, 이런 규정을 두는 이유는 반대로 소멸시효가 없다면 100년 전의 손해에 대해서도 청구가 들어올 수 있고 이를 입증할 증거, 증인 등이 사라진 상태에서 제대로 된 재판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사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2. 형사 - 공소시효와 처벌불원의사표시


폭행, 특수폭행, 상해, 절도, 강도, 감금치상, 강간, 강제추행, 모욕 -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이 당한 행위 중 걸어볼만한 것들을 생각내는대로 열거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장 공소시효가 긴 강간등 상해치상죄가 15년으로 이미 공소제기 기간을 도과했다는 데 있습니다.

한 마디로 처벌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작중에는 박연진 모친이 문동은 모친과 변호사의 조력을 얻은 합의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았으나 민사적으로는 부제소합의, 형사적으로는 처벌불윈의 의사표시 등을 받아놓았을 것입니다.

설령 문동은이 단독으로 고소를 제기했더라도 처벌불원의 의사표시로 상당수 범죄는 역시 공소가 제기되지 않았거나 제기되더라도 처벌에 이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작중 고소가 제기되었거나 고소가 제기된 이후 박연진 등 가해자들이 외국으로 도주한 정황도 없어 공소시효의 진행이 지장받을 어떠한 사정도 없으니 17년이 지나 문동은이 형사적으로 가해자들을 처벌할 방법은 없어보입니다.


  

3. 여론전 - 언론인터뷰, 가해자 인터넷 신상유포 등


가. 언론인터뷰


우선 문동은이 언론에 본인의 피해사실을 알리며 기사화를 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때 문제되는 것은 진실한 피해자가 본인의 피해사실을 언론에 제보한 것에 대하여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는지가 주된 논점이 될 것입니다.


판례는 기사의 취재, 작성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자에게 허위의 제보를 한 것이 기사화된 사안에서 제보자가 기사화 되도록 특별히 부탁하거나 기사화될 사실을 예견하기 어려웠다는 이유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를 부정하였습니다.([대법원 2002. 6. 28., 선고, 2000도3045, 판결])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사람의 상식, 법감정과 달리 대한민국은 사실의 적시를 통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처벌대상이 됩니다.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은 사실적시에 비해 형량이 더 강할 뿐, 사실적시를 했다고 해서 죄 자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위 2000도3045 판결도 피고인(제보자)의 고의 또는 명예훼손의 전파성 이론을 부정한 것으로 보일 뿐, 언론에 대한 제보행위가 진실하다면 공익성이 인정된다는 취지의 판례는 아니므로 안심할 수 없다고 봅니다.(물론 공익성을 따지는 것은 일단 명예훼손이 성립한다는 전제 하의 것이므로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만)


결론적으로 언론제보를 통한 피해사실 폭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될 위험을 감수하여야 합니다.



나. 인터넷 신상유포


우선 의외의 사실 하나 알려드리면^^;;;

개인정보처리자가 아닌 순수한 개인 홍길동이 다른 개인 김철수에 대한 개인정보를 인터넷 게시판 등에 무단으로 게재하였다고 하면 처벌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을 잘 보시면 대다수 주어가 "누구든지"보다 "개인정보처리자"임을 확인하실 수 있을겁니다.


이 말은 예를 들어 홍길동이 어느 카페, 커뮤니티 게시판에 "여기서 활동하는 id abc1234를 쓰는 사람은 김철수다"라는 글을 남겼다고 하면, 김철수가 열받거나 게시판 관리자에 따로 연락해서 글을 내리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개인정보보호법으로 홍길동을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말입니다.


각설하고 문동은의 경우에는 인터넷 게시판에 단순히 박연진의 실명만을 거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건 폭로가 아니고 복수도 아니죠...

무미건조하게일지언정 피해사실의 기재가 당연히 전제되어야겠죠.


이 경우 속칭 인터넷 명예훼손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제1항의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학교폭력 가해자란 사실이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박연진 등은 돈이 많으니 전관을 사서 고소를 해온다고 봐야겠죠.

또 정보통신망법의 조항들을 이용해서 게시글을 순식간에 삭제, 블라인드 처리할 것이고 댓글다는 이들도 명예훼손, 모욕죄로 사정없이 걸어버릴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인터넷 게시판을 통한 피해사실 폭로는 큰 효과가 없거나 효과가 있더라도 문동은 역시 법적인 처벌이 걸릴 위험성을 감수해야 합니다.

물론 공익성의 인정으로 빠질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4. 결론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다시 한 번 절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하지만, 현실은 '법은 배움이 있거나 돈이 있는 사람에게 유리'하다는 점 말입니다.


그럼 오랫만의 생활법률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더 글로리 시즌2도 빨리 나왔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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