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모태신앙인이면서 정신적 가나안 성도이고 MZ세대입니다.
감히 저 스스로를 신앙심이 깊은 기독교인이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믿고 있으며 하나님이 유일신이고 예수님은 그분의 독생자로서 이 땅에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오셨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믿음이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 긍정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다른 기독교인들이 들으면 입에 거품을 물 수 있는 얘기겠지만, 불교를 믿는 사람에게는 부처님이 유일신인 것이고 불교를 믿는 사람이 선하게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도는 저를 비롯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의 종교적 가르침과 삶이 일치되는 모습을 먼저 보이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다면 자연히 이뤄지는 것이지, 그 사람을 강권하여 교회로 데려가거나 가르치거나 계몽해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서론이 조금 길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결론부터 얘기하고 시작하겠습니다.
또한 오늘 글은 교회를 다니고 계시거나, 과거에라도 다녀본 분 등 어느 정도 기독교에 대한 지식, 경험이 있는 분들이 어쩔 수 없이 독자층으로서 기본적인 기독교에 대한 경험, 지식이 있다는 가정하에 글을 진행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1.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며 고령화가 붕괴의 트리거가 될 것이란 점도 같다.
2. 가나안 성도와 MZ세대는 공통적 특성이 있으며, 한국교회와 한국사회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유사하다.
3. 힌국교회는 문제를 바로 인식하고 있지 못해 쇠락하겠으나 건물로서의 교회는 사라질지언정 기독교인은 남을 것이다.
최근 교회를 나가셨다면, 주위를 한 번 휙 둘러봐주십시오.
'어? 어느 새 어르신들이 이렇게 많아졌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여러 기독교 티비를 통해 방송되는 대형교회라고 하여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몇 년 전 부산에서 근무할 때 일이 있어 휴가를 쓰고 평일에 부산시내를 다니면 지하철에 어르신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 객차 내 승객 중 1/4~1/3 정도는 어르신들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에서 지하철을 탈 때도 1/5~1/4, 때로는 그 이상 어르신들의 비중이 있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 사회가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는 것처럼, 한국교회 또한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이 점은 비단 개인의 경험이나 체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21년 5월 한국갤럽의 조사를 보면 의미있는 통계수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생시기별로 이후 나이를 먹어가며 종교인이 되는 비율이 386(현 586)에 비하면 급격히 낮아지고 있습니다.
1984년 19~29세 중 종교를 믿는 비율은 36%에 그쳤으나 이후 이 비율은 꾸준히 상승하여 이들이 60대가 된 2014년에는 68%로 거의 2배 가까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흐름은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약화됩니다.
1989년 19~29세는 종교를 믿는 비율이 39%로 시작점은 더 높았으나 32년이 흘러 이들이 50대가 된 2021년에는 43%로 겨우 4%만 높아지는데 그쳤습니다.
1997년 19~29세는 종교를 믿는 비율이 36%였으나 24년이 흘러 이들이 40대가 된 2021년에는 32%로 오히려 시작점보다도 4%P 낮아져버렸습니다.
http://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1208
이에 대해 해당 기간 기독교인구만 따로 추적한 것도 아니고 신뢰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런 조사결과까지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같은 기간 종교인 중 기독교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1984년 17%에서 2014년 21%까지 늘어났다가 2021년 17%로 줄어든 것을 볼 때 큰 틀에서의 경향성이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언급한 갤럽조사와 함께 2022 종교인식조사(여론속의 여론)를 통해서도 기독교 신자 내 연령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연령이 60대 이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https://hrcopinion.co.kr/archives/25186
보시면 대체적으로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기독교인이라고 답한 사람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한국교회와 한국사회는 젊은인구의 감소와 이들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라는 점에서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성결신문의 사설 중 한 구절이 한국교회가 가나안 성도를 바라보는 시선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생각되어 인용해봅니다.
"목회자들로서는 불만일지도 모른다.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교인들이 목회자 탓만 한다고 하소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께서 맡기신 목양의 사명이 아니던가. 한국교회에 있어 목회자의 책임과 비중은 절대적이다. 보다 더 신실하게 사명을 감당함으로, ‘가나안 성도’라는 웃지 못할 상황이 한국교회에 더는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 ‘가나안 성도’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을 넘어 그 같은 신앙 양태를 지나치게 정당화하는 것은 금물이다. 현 한국교회가 지닌 비리와 모순이 심각하므로 순수한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떠난 것은 당연한 결과이고, 오히려 그들 가운데서 이 시대 교회의 대안과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식의 궤변은 안 된다는 의미다."
https://www.keh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5379
저 사설은 논리모순이 보여집니다.
가나안 성도가 교회를 떠난 이유 중 큰 부분은 기성 한국교회, 목사, 같은 성도들로부터 실망하고 상처받고 지쳤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과 교회, 목사, 성도를 구분했기에 신앙은 유지하되 괜찮은 교회가 아니라면 나가기를 거부하고 가나안 광야로 나가는 것을 자청했던 것입니다.
http://mhdata.or.kr/bbs/board.php?bo_table=gugnae&wr_id=30
따라서 가나안 성도에 대한 이해는 필연적으로 기성 한국교회의 문제점 특히 인적요소에 대한 부분을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성도에 대한 이해를 넘어 정당화해서는 안 되며, 한국교회의 비리와 모순이 심각하다는 궤변은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런 주장은 결국 가나안 성도를 이해할 마음이 없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성도를 주제로 사설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추정치기는 하나 가나안 성도가 200만이라는 무시못할 숫자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내색은 못해도 교회 주일 예배를 가보면 60대 이상,노년층이 60~70%를 차지하는 현실에 더는 눈을 돌릴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는 한국사회가 MZ세대를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합니다.
골치아프고 이해하기 어렵고 까탈스러워서 은근히 짜증나지만 이들이 결국은 다음세대니 구슬르고 데려가야한다.
이게 기성세대의 솔직한 마음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기성세대 또는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을 너무 폄하하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전능한 신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드러난 결과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출산 정책 하나만 보더라도 궁극적인 출산율 증가 정책은 외면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진짜로 출산율을 올리고 싶다면 구조적인 개혁이 불가피하고, 구조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기득권의 일부 포기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그런 정책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대학입시에서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 재력과 정보력이 본인의 노력보다 더 크게 작용할 우려가 있는 각종 학생부 종합전형을 만들고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암기형 인간을 만든다는 비판은 받았을지언정 과거 학력고사 시절인 1980년대 서울대 입학생 중 서울 출신은 35~45%였다고 합니다.
(출처 : 입시제도의 변화:누가 서울대학교에 들어오는가?*, 한국사회과학 제25권 제12호(2003): 3~187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62p 참조)
그럼 지금은 어떨까요?
2020~2022년의 3년간 통계를 보면 서울대 신입생 중 수도권 출신은 무려 64.6%에 이르고, 이 중 강남3구 출신은 11.9%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23.5월 기준 강남 3구 인구는 159.6만명으로 대한민국 인구 5,140만명 중 3.1%에 불과 합니다.
지난 40년간 수도권은 천재들만 태어난 것일까요?
그런 비현실적인 가정을 하기보다 현재의 입시제도가 수도권 학생에게 무엇인가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는 것은 아닐지 의심하는게 합리적일 것입니다.
https://biz.chosun.com/topics/topics_social/2022/10/04/AKDKEB2X7ZBJPHQL43SELRD764/?outputType=amp
이처럼 부정하기 어려운 통계적인 결과가 30년 넘는 데이터로 입증되고 있고 이같은 소수의 기득권만이 유리한 입시환경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허들과 부담을 크게 높여놓고 있음이 명백함에도 한국사회는 이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려고 하고 있지 않습니다.
MZ세대가 연애를 하지 않고 결혼을 회피하고 아이를 포기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나름의 의사표시이고, 가나안 성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미 통계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가나안 성도의 상당수는 MZ일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최근 교권의 추락문제가 심각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이는 보통문제가 아니며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걸림돌이 있습니다.
바로 쌍팔년도에 교사를 한 선배 교사들의 존재입니다.
딱 제 위아래 세대까지는 과거 교사가 어떠했는지 뼈저리게 알고 있으며 기억하고 있습니다.
촌지는 차라리 귀여운 축에 속하고 본인의 기분 여하에 따라 행해지는 불합리한 체벌과 가혹행위를 당해보지 않은 80년대생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극소수의 참된 교사로 그 시대, 그 교사들 모두를 정당화하고 미화하며 넘어가기엔 일부의 규모가 너무 크고 피해기억을 생생히 갖고 있는 세대가 두 눈 부릎뜨고 살아 있습니다.
저는 안타깝게도 한국교회, 목사가 교사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아직까지는 괜찮을 것입니다.
향후 5년 정도까지도 문제없을 것입니다.
왜냐구요?
586의 은퇴가 대략 5년 정도 뒤면 끝나기 때문입니다.
인구 코호트적으로 우리나라 최대 집단이자, 1984년 36%에 불과했으나 60대가 된 현재 68%나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세대가 586입니다.
그들이 은퇴하는 날, 그 때도 교회에 지금처럼 헌금이 들어올까요?
그 때가 되어 교회가 다급하게 전도를 한들 잘 될까요?
가나안 성도조차 품어내지 못했는데?
203040이 그때도 없지는 않겠지만, 교회에 남아있는 2040들이 586 이상 세대가 하던 것처럼 봉사, 헌금을 할까요?
그런 것을 바라고 요구할수록 그나마 남아있는 2040의 이탈만 부를 것입니다.
그렇다고 기독교의 본질적인 교리로 승부를 하려고 해도 해본 적이 없으니 잘 되지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이 사람으로조차 취급하기를 꺼려한 사마리아 여인, 바리새인을 차별하지 않으셨고 베드로 또한 무두장이 시몬과 백부장을 차별없이 대하셨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어떠합니까?
차별금지법에 죽자고 반대합니다.
동성애를 금한 것과 동성애를 박해하란 말을 같은 말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해력의 일천함은 차치하고서라도 돌에 맞아죽을 위기에 처한 간음한 여인조차 모세의 율법에 앞서 사랑과 관용으로 구해주신 예수님의 가르침은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길게 쓴 글이지만 누군가는 제목을 보고 혀를 차며 읽지조차 않거나 스크롤을 내려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잘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끝까지 쓰는 까닭은 200만에 달하는 가나안 성도에게 쓰는 것이고, 훗날 이 200만이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데 아주 작은 거름 중 한 톨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긴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